꽃들의향기 811

초롱꽃

도감을 들고서 산과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 한강변 분원마을 부근 야산에서 초롱꽃을 처음 보았다. 그러나 첫 인상은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예쁘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꽃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고, 모양이나 색깔 또한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화단이나 정원같은 데서 이 초롱꽃을 가끔씩 만나지만 첫 인상이 결코 바꿔지지는 않는다. 초롱은 옛날에 밤길을 갈 때나 밖을 비출 때 등불을 넣어두던 것이다. 생김새에서 필히 이 꽃이름이 유래되었겠지만 그러나 초롱같이 생겼다기보다는 내 눈에는 종을 연상시킨다. 마치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날 것도 같다. 실제 이 꽃에 얽힌 전설도 종과 연관되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초롱꽃에는 자주초롱꽃, 섬초롱꽃, 금강초롱꽃 등이 있다는데앞으로 내가 꼭 만나고 싶은..

꽃들의향기 2005.12.10

패랭이꽃

남한의 국화는 무궁화이고,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이다. 둘 다 나무꽃인데 만약 풀꽃 중에서 우리나라 국화로 적당한 것을 고르라면 개인적으로는 이 패랭이꽃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패랭이꽃은 제주도로부터 백두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꽃이다. 산이나 들, 길가 등 어떤 곳에서도 잘 자란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도 강하다. 키가 작아 사람들 발길에 짓밟혀도 바로 줄기를 곧세운다. 작지만 강인한 꽃이다. 패랭이꽃은 수줍은듯 볼을 붉히고 있는 청순한 소녀를 연상시킨다. 꽃잎은 다섯장이고 끝은 톱니마냥 갈라져 있다. 그러나 작고 가녀린 모습 뒤에는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것 같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패랭이는 옛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쓰던 모자였다. 양..

꽃들의향기 2005.12.05

서양등골나물

초겨울에 접어든 이맘때에는 들이나 산에서 볼 수 있는 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남산에 갔을 때 산책로를 따라 무리지어 피어있는서양등골나물을 보았다. 대부분의 풀들은 시들고 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려 겨울 준비를 하는 이 때, 홀로 환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이 풀의 강인한 생명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이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이 풀은 우리 고유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번식력이 좋아 환경부에서는 위해 식물로 분류를 해놓고 있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인 셈이다. 전에 자주 다녔던 대모산에서도 이 풀을많이 보았다. 어떤 곳에서는 계곡 전체가 서양등골나물에 점령되어 있었다. 그러나 흰색의 작은 송이들이 모여 피는 꽃은 밝고도 환하다...

꽃들의향기 2005.11.29

익모초

익모초는 높이 1m 정도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여름이면 작은 붉은색 꽃이 층층으로 핀다. 그런데 꽃 보다는 두 갈래로 길게 갈라진 잎에 더 눈길이 간다. 활짝 양 팔을 뻗은 자태가 멋지다. 익모초(益母草)는 이름 그대로 부인들에게 유용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한방보다는 민간요법으로 부인병을 다스리는데 이용된다고 한다. 풀 전체를 찧어서 즙을 낸 후 불에 달여서 엿처럼 만들어 먹거나, 환(丸)을 만들어 먹는다. 특히 유둣날(음력 6월 6일)에 익모초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또 더위에 입맛이 떨어졌을 때 쓴 익모초 생즙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는 말도 있다. 익모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중국에 있는 대고산 아래에 수랑이라는 마음씨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수랑은 나이가 ..

꽃들의향기 2005.11.18

요강나물

수도 없이 자주 만나게 되는 꽃도 있지만, 어떤 꽃은 한 번 본 뒤로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꽃이 귀하거나 아니면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때문이겠지만 이 요강나물이 그러하다. 약 10년 전 광덕산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뒤로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때 찍은 이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면 꽃을 본 기억조차 사라졌을지 모른다. 요강나물은 색깔이 특이하다. 검은 색의 꽃은 이놈이 유일할 것 같다. 물론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진한 갈색에 가깝지만 그래도 거의 검게 보인다. 다들 화려한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데 요강나물은 왜 이런 어두운 색깔을 택했는지 궁금해진다. 이름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먹는 나물에 하필 요강이라는말을 갖다 붙이다니. 그런데 이 요강나물은 유독성 식물로 식용으로 하기에..

꽃들의향기 2005.10.29

고마리(2)

가을이 되면 고향의 개울가와 들에는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났다. 고마리는 물을 좋아하는지 특히 물가에서 많이 자랐다. 동네에서 나오는 물이 흐르는 도랑은 이 고마리로 뒤덮였다. 얼마나 번식력이 좋았으면 '이젠 고만 자라거라'는 의미에서 고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풀을 잡초 취급하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흔하디 흔한 고마리가 가을이 되면 작은 꽃을 피운다. 한 송이에 많은 꽃송이가 다닥 다닥 달려있다. 꽃 색깔은 흰 색도 있고, 연한 분홍색도 있다. 군락으로 자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작은 점들로 뒤덮인 꽃밭을 이룬다. 흰색 고마리 군락을 멀리서 보면 마치 메밀밭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고마리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꽃은 마치 보석을 깎아놓은 듯 맑고도 깔..

꽃들의향기 2005.10.25

남한산성의 가을꽃

명성산으로 억새 산행을 가는 동료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남한산성 길을 걷다. 가을산은 한 달쯤 계절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산길에는 벌써 낙엽이 땅을 덮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금속이 닿은 것처럼 서늘하다. 산 위에서 고추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을 사 마신다. 가을 산길은 역시 혼자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전에 남한산성 밑에서 살 때는 거의 매주 한 번씩 이 산을 찾았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산의 구석 구석 모든 길이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만에 찾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더욱 쓸쓸해진다. 여기는 현호색 군락이었고, 저기는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있었었지. 또 산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리고오면 처음에는 투덜대다가 나중에는 얼굴이 밝아지곤 했었다. ..

꽃들의향기 2005.10.14

코스모스(2)

오늘 같은 날은 가을 햇살 화사한 코스모스 꽃길을 걷고 싶다. 눈을 감으면 내 초등학교 시절 마을 앞 신작로에 활짝 핀 그 꽃길이 보인다. 거기에는 우리들 키보다 더 컸던 코스모스가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눈 시리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 사이에서 내보고 싶은 사람이 눈웃음 지으며 나올 것만 같다. 꽃길은 멀리 있는 읍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꽃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장난치며 걷다 보면 벌써 집이 보였다. 학교에 오가는 길은 그렇게 꽃길이었다. 코스모스는 한참 동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스모스(cosmos)에 '질서 있는 우주'라는 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이 꽃이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조형미로 따진다면 더 완벽한 꽃들도 많은데 말이다. 하나의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잠재의..

꽃들의향기 2005.09.21

해바라기

집 앞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해바라기는 북미 원산의 한해살이풀인데 집과 들에 피어서 우리나라 초가을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빨간 고추를 말리는 마당 둘레의 돌담을 따라 피어있는 노란색 해바라기나,곡식이 익어가는 밭둑을 따라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풍경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핀다 하여 향일화(向日花)라고 했다. 어릴 때는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으나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핀다면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꽃이 서쪽이나 북쪽을 향하고 있기도 하고, 해를 바라보기는 커녕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해바라기 / 해님 따라 / 동동 / 하늘 한 바퀴 / 파아란 / 강물 위에 / 물수레 되어 / 빙빙 /온종일 / 돌고만 있다' 아무리 동요의..

꽃들의향기 2005.09.15

무릇

이른 아침 오솔길에 무릇이 곱게 피어났다. 먼 산은 안개에 잠겨있는데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있는 무릇은 마치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 같다. 키가 늘씬한 청순한 소녀의 웃음은 맑고 깨끗하다. 무릇은 긴 꽃대를 따라 분홍색 작은 꽃들이 달리는 여러해살이 풀로, 늦여름이면 우리 산하 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녹색의 풀들과 어울린 색깔이 무척 곱다. 봄에 나오는 무릇 잎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무릇일까? 세상살이가 고달플지라도 무릇 사람이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고운 꽃 한 송이씩 꼭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라는 뜻이 그 이름 속에는 담겨있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05.08.30

접시꽃

벌써 20년이 되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한 시인이 '접시꽃 당신'이라는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내놓아 사람들을 감동시켰었다. 그때에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와 사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인은 재혼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뭔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전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또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터의 이웃에서 정답게 살아가던 부부가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아내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 온 부부여서 남은 남편의 충격과 슬픔도 컸다. 그런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다. 같이 경운기를 타고 다닌다는 둥, 새 여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예쁘다며 웃는다는 둥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

꽃들의향기 2005.08.25

연꽃

고창에서 해리로 가다 보면 길옆에 작은 연못이 있다. 지금 이곳은 연꽃이 만개하고 있어서 무심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하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안쪽에는 정자도 있고, 더 들어가면 산 아래에는 농촌 마을이 있는데 이 연꽃 연못으로 인하여 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뭔가 예술적인 분위기가 난다. 저 마을에는 연꽃의 운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교의 아름다운 설화인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이야기에 나오는 꽃은 아마 연꽃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 꽃만은 맑고 깨끗해서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정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꽃들의향기 2005.08.05

노랑어리연꽃

노랑어리연꽃은 연꽃 중에서도 귀엽고 화사한 편에 속한다. 보통 연꽃이라고 하면 잎도 꽃도 큼지막하고, 색깔도 흰색이나 붉은색이 많은데 노랑어리연꽃은 작고 샛노란 색이 특이하다. 귀엽게 보이지만 어떤 때는 요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노랑어리연꽃이 연못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으면 사방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같은 모양이지만 흰색 꽃은 어리연꽃이라 부르고, 노란색은 노랑어리연꽃이라 부른다. 최근에 본 노랑어리연꽃으로는 봉선사(奉先寺)에 피어있는 것이 최고였다. 이번 주말에 연꽃 축제가 열린다는데 미리 가 본 봉선사 앞 연못에는 백련, 수련, 노랑어리연꽃이 잘 어울려 피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가 노랑어리연꽃이었다. 수련, 주변 수초들과 어울려 피어있는 광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 감동을 사진으로 옮길..

꽃들의향기 2005.07.20

솔나리

나리는 여름 꽃이다. 나리는 종류가 많은데 다들 예쁜 이름들을 갖고 있다. 참나리, 노랑참나리, 솔나리, 흰솔나리, 검솔나리, 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땅나리, 노랑땅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말나리, 섬말나리, 하늘말나리..... 죽기 전에 이 나리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하겠다.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솔나리를 두 번이나 만났다. 강화도 전등사와 가평에 있는 '꽃무지 풀무지'라는 수목원에서였다. 솔나리는 나리 중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다. 옅은 분홍빛의 작은 꽃은 가여리고 청초한 분위기를 풍긴다. 또 순수하고 귀엽다. 잎이 솔잎처럼 가늘다고 해서 솔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희귀식물로 지정된 종이어서인지 야생 상태로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꽃들의향기 2005.07.12

불두화

불두화(佛頭花)는 이름 그대로 '부처 머리를 닮은 꽃'이다. 흰 꽃이 둥글게 모여있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곱습곱슬한 부처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누군가가 이름을 재미있게 붙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불두화는 무성화라고 한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고, 곤충을 유혹하든 아니면바람이나 다른 자연의 힘을 빌리든 수분을 하고 씨를 맺는다. 꽃의 아름다운 색깔, 향기는 그들 생존의 한 방편인 것이다. 불두화는 꽃은 있지만 이런 생식기능이 없다. 그래서 분주나 삽목으로 번식을 한다. 아마도 사찰에 불두화를 많이 심은 것은 그 명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속세의 연을 끊고 수도의 길을 걸어가려는 마음과 이런 꽃의 성질과 닮아서이지 않을까 싶..

꽃들의향기 2005.06.28

작약

작약은 늘 모란과 비교되면서 얘기 된다. 그것은 작약과 모란은 겉으로 보기에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작약은 풀이고, 모란은 나무이기 때문에 사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옛 사람들은 둘 중에서 모란을 더 아꼈던 것 같다.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작약에 대해서는 별로 그런 언급이 없다. 작약(芍藥)이라는 이름 그대로 꽃 보다는 약 쪽에서 더 귀히 여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작약이 모란보다 훨씬 더 예쁘고 정감이 간다. 모란이 남성적이라면 작약은 여성적이다. 지난 번 강원도에 갔을 때, 아직도어느 집 뜰에피어 있는 작약을 만났다. 모란이 지고난 후 작약이 피는데, 그 작약도 이미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강원도는 역시 기온이 낮은지 우연히 올해의 마지막 작약..

꽃들의향기 2005.06.21

자주달개비

자주달개비는 미국 원산으로 대개 화단에서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다. 지금 교정에도 군데군데 자주달개비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야생화와 달리 이런 원예종 꽃들은 몇 주 동안 피고 지고 하기 때문에 오래 동안 감상하기에 좋다. 이 꽃의 이름이 자주달개비이지만 어떤 사람은줄여서 달개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닭의장풀을 달개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냥 달개비라고하면 자주달개비를 말하는 것인지, 닭의장풀을 말하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이 꽃 이름을 묻길래 달개비라고 했더니, 달개비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그 사람은 닭의장풀을 연상했을게 틀림 없다. 이렇게 헷갈리는 것이 어디 달개비 뿐이겠는가?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은 하나지만 그 의미는 사용하는 사..

꽃들의향기 2005.06.15

열대수련

터에 가는 길에 세미원(洗美苑)이 있어 가끔씩 들린다. 세미원은 온실 안과 바깥 연못에 여러 종류의 연꽃을 기르고 있는데,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어리연꽃이 피었을까 기대를 했지만 수련 몇 송이만 피어 있어서 썰렁했다. 대신 산책로를 따라 붓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련과에 속하는 연꽃과 수련은 물에 대한 꽃의 위치로 구분한다. 연꽃은 꽃이 크고 물 위로 높게 올라와서 꽃이 핀다. 반면에 수련은 꽃이 작으며 대개 수면에 붙어있다. 세미원의 온실 안에는 기온 탓인지 주로 열대수련을 기르고있다. 아무래도 색깔이 진해 연꽃의 분위기가 잘 전해오지 않는다. 마치 서양난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

꽃들의향기 2005.06.08

바위취

바위취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데번식력이 아주 좋다. 꽃잎 모양이 특이한데 위에 달린 석 장은 크기가 작고, 아래에 있는 두 장은 길게 뻗어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모양이 한자의 큰 대[大]자를 닮았다. 그래서 '대문자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취를 보고 큰 대자를 모른다'는 속담도 생겨날 법 하다. 또 잎의 생김새에서 유래된 듯한 '범의귀'라는 이름도 있다. 터의 집 뒤에 수녀님이 주신 바위취를 10여 포기 심어 놓았는데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아직은 처음 심은 그대로이다. 아마 내년이면 화사한 바위취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꽃들의향기 2005.06.03

천남성

요사이 산에 오르면 심심치 않게 천남성을 만날 수 있다. 천남성은 꽃이 특이하다. 색깔이나 모양이 보통의꽃과는 다르다. 생긴 모양이 꼭 코브라가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 그대로 천남성은 독성이 있다고 한다. 가을에 열리는 열매 또한 특이하다. 빨간 열매들이 뭉쳐있는 모양에서는 예쁘다기 보다는 뭔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왜 이름이 천남성(天南星)일까? '하늘 남쪽의 별' -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별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천남성은 나무 아래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이 그리워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름을 가르쳐주던 친구가 천남성을 '첫남성'으로 기억한다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

꽃들의향기 2005.05.25

모란

모란을 보면 중국이 연상된다. 원산지가 중국이기도 하거니와 꽃의 모양이나 색깔이 왠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옛부터 화중왕(花中王)이라고 꽃 중의 제일로 쳤다지만, 활짝 핀 모란은 그 풍성한 자태가 도리어 부담이 될 정도로 나로서는 예쁘다는 느낌은 별로 갖지 못했다. 선덕여왕이 아직 어렸을 때의 얘기다. 중국에서 얻어 온 모란꽃 그림을 보여주니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물으니 "그림에 벌,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말대로였다.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말해주는 일화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얘기도 조금 비틀어보면 그림에 나비가 없다고 해서 향기가 없다고 단정..

꽃들의향기 2005.05.20

피나물

우리 야생화가 좋아서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밖에만 나가면 처음 보는 꽃들을 몇 개씩 만나곤 했다. 도감을 찾아보며 이름을 확인하고, 예쁜 모습을 눈에 새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손때 묻은 옛 도감을 펼쳐보니 피나물 설명이 나오는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1996/4/28 청평사', 그 날은 피나물을 처음 만난 날이다. 눈을 감으니 9년 전 그때의 정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맑은 봄날이었다. 아내와 같이 멀리 춘천에 있는 청평사로 나들이를 떠났다. 봄나들이 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양호를 배를 타고 건너서 청평사로 가는 길 옆에서 환하게 피어 있는 이 꽃을 처음 만났다. '와-' 하며 뛰어 가서 도감을 통해 피나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즐겁고..

꽃들의향기 2005.05.12

꽃사과나무

이사 온 이곳 동네에는 주변에 꽃사과나무가 많다. 둘레의 화단이나 인근 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주종이 꽃사과나무이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보기 좋더니, 봄이 되니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처음에는 분홍색 봉오리가 맺히더니 꽃이 피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온 나무가 하얗게 덮인다. 이름이 예쁜 꽃사과나무는 관상수로서 아주 좋을 것 같다. 또한 열매는 새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찾아오는 새들이 없어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데, 나무밑에 주차해 있는 차들이 떨어진 열매의 진액으로 지저분해진 것을 자주 보았다. 봄의 하얀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빨간 열매, 마당의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꽃사과나무 한 그루 쯤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의향기 2005.05.05

자주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 꽃 모양이 비슷하다. 대개 괴불주머니는 노란색이고 현호색은 자주색 비슷해서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자주괴불주머니는 색깔 마저 현호색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기나 꽃대에 꽃이 달린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 괴불주머니 쪽이 현호색 보다는 꽃이 크고 꽃대를 따라 총총이 달려있다. 사실 비슷한 종류 사이에는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왠일인지 잎의 모양은 잘 입력이 되지 않는다. 주로 도감을 찾아보며 꽃의 이름을 익힌 터라 어떤 경우에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자주괴불주머니는 군락을 이루며 자라길 좋아하는 것 같다. 봄날 산기슭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자주괴불주머니 꽃밭은 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환하게 해 준다.

꽃들의향기 2005.04.28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지가 발견된 우리의 특산식물이다. 개나리의 친척뻘 되는 나무로 이른 봄에 하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흰개나리'로 불리기도 한다. 꽃은 한 자리에 서너개씩 포개서 달리는데 화사하고 아름다우면서 품격이 높게 보이고 향기도 진해 관상용으로는 최고의 꽃이기도 하다. 미선나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지금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 때는 자생지에 사람들이 몰려와 마구잡이로 남획하는 바람에 멸종의 위기까지 갔으나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번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젠 묘목상에서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니 말이다. 교정의 화단에 미선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키는 1 m 안팎으로 아직 어린 나무들이지만 이른 봄에 피어난 순백의 하얀 꽃은 봄의..

꽃들의향기 2005.04.21

작은 풀꽃

교정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가장 먼저 산수유와 목련이 꽃을 피웠다. 매화나무도 한 그루 있지만 이곳 기후에 적응을 못해선지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다. 목련도 자라는 위치에 따라 피는 순서가 다르다. 양지 쪽에 있는 것은 벌써 꽃이 떨어졌는데 음지 쪽에서 자라는 것은 이제야 꽃잎을 열었다. 지금은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이다. 그 사이에서 하얀 앵두나무 꽃도 화사하고 명자나무도 바알간 색깔로 물들고 있다. 살구나무는 이미 꽃이 졌다. 한창일 때는 살구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난 살구꽃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홀리게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풀꽃들이다. 늘 손질을 하는 탓에 꽃이 자라날 여건이 되지 못하지만 ..

꽃들의향기 2005.04.19

수선화

두 조각의 빵을 가진 자는 그 하나는 수선화와 바꾸라. 빵은 육체의 양식이나, 수선화는 마음의 양식이다. 수선화를 바라볼 때면 마호메트가 했다는이 말이 늘 연상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사랑한 꽃이라는데, 그래선지 이 꽃에서는 탈속적이고 종교적인 향기가 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소년 나르시스가 죽어서 변한 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밖에 나간 나르시스는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그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마침내는 너무나 연모하게 되어 물에 빠져 죽게 되는데,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한다. 아마 나르시스는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꽃미남이었는가 보다. 왕자병에 걸린 꽃미남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 같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또는 '자아 도취'..

꽃들의향기 2005.04.14

산수유

산수유는 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나무이다. 남쪽 지방으로부터는 매화의 개화 소식이 가장 먼저 들려오지만, 중부 지방에서 매화는 흔하게 볼 수 있지 않고 산수유가 그나마 가장 먼저 만나는 꽃나무가 아닌가 싶다. 산수유에 이어서는 목련이 화사한 꽃을 피운다. 산수유는 좁쌀만한 노란 꽃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수술이 솟아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듯 멀리서 보다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산수유는 이른 봄의 꽃뿐만 아니라 가을의 빨간 열매도 보기에 좋다. 겨울이 되면 색깔이 퇴색되고 쪼글쪼글해지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산수유 열매는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 준다. 산수유로 유명한 곳은 경남 산동에 있다는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보..

꽃들의향기 2005.04.07

복수초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 초순이면 눈 사이에서 피어나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려 준다. 그러나 서울 지방에서는 3월 하순이 되어야 산에서 피어나는 이 꽃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꽃 이름을 들었을 때는 '복수'를 앙갚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꽃 이름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 뒤에 한자로는 福壽草라고 쓰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이 꽃은 복과 장수를 상징한다.꽃말도 '영원한 행복' 또는 '봄의 미소'라고 한다. 이른 봄이 되면 신문에는 의례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사진이 실린다. 그래서사람들에게는 눈 속에서 피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불운하게도 눈 속에서 핀 복수초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키가 작은..

꽃들의향기 2005.03.31

천마산의 너도바람꽃

봄꽃을 보러 천마산을 찾다. 산 속에 드니 봄은 아직 멀리 있다. 계곡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산길도 녹지 않은 눈으로 미끄럽다. 작년보다도 봄이 늦게 찾아오고 있음을 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맘때 쯤 천마산에서 만날 수 있는 봄꽃은 너도바람꽃, 노루귀, 복수초이다. 나는 이들을 3월의 천마산 3총사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 너도바람꽃이 가장 먼저 핀다. 아마 예년 같으면 지금쯤 너도바람꽃은 졌을 때인데 올해는 지금이 한창이다. 대신에 노루귀는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복수초는 이제 갓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천마산 '꽃의 계곡'의 너도바람꽃 군락지는 정말 대단하다. 너도바람꽃이 쉽사리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유독 여기서는 엄청나게 많이 피어난다. 맑은 눈요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천마산에 오르는 ..

꽃들의향기 200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