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811

앉은부채

산 속 그늘진 골짜기에는 아직 눈이 남아있다. 눈을 뚫고 피어나는 봄꽃들 중에서 특이한 것이 앉은부채이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데 그꽃의 생김새도 특이하거니와 나중에 돋아난 잎은 마치 열대 식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고도 싱싱하다. 펼쳐진 잎이 마치 부채와 같다고 해서 이름도 앉은부채라고 한다. 그런데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감실 안에 애기부처가 앉아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이 '앉은부처'에서 '앉은부채'로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놈은 주책없이 등산길에도 마구 자라나 애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밟히기도 한다. 아직 대부분의 식물이 싹을 틔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앉은부채는 독야청청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자라고 있다. 특히 앉은부채는 ..

꽃들의향기 2005.03.23

큰개불알풀

이름이 재미있는 이 꽃은 이른 봄에 피어나는데 군락을 지어 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의 크기는 아주 작은데 무더기로 모여서 피면 화사한 봄 분위기를 잘 자아낸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통통 튀는 명랑함도 느껴진다. 가만히 '개불알풀' 하고 불러보면 절로 미소가 도는 귀여운 봄꽃이다. 몇해 전 이맘때 선운사에 갔더니 절 앞 밭에 이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한 개면 겨우 보일듯 말듯한 꽃이 무리를 지어서 피어있으니 그것도 장관이었다. 카메라를 꺼냈지만 꽃이 너무나 많아서 허둥대기만 했었다. 선운사는 나에게 절 보다도 주변의 풍광이 훨씬 좋다. 언제 가도 야생화들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어 맘에 든다. 다음 주말에는 선운사에 다..

꽃들의향기 2005.03.16

동백

내일부터 여수 오동도에서 등백꽃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쯤은 오동도 동백꽃이 활짝 폈을까? 지난 달에 찾아갔을 때는 때가 아니어서인지만개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돌산도 향일암에서 이 동백을 만났다. 바다를 마주한 곳에 백 년은 넘어보이는 아주 오래된 동백나무에 아름다운 자태의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 천 그루씩 자라고 있는 오동도나 거제도에서는 보지 못 한 것을 여행의 마지막 날 향일암에 있는 한 그루 동백나무에서 만난 것이다. 그때의 들뜬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만 생활한 나로서 동백은멀리 떨어진 상상 속의 나무나 꽃이었다. 겨울에 남해안으로 여행할 기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백나무의 육지쪽 북방한계선이 된다는 선운사에는 자주 갔지만 늘..

꽃들의향기 2005.03.11

개불알꽃

개불알꽃. 이름이 민망하다해서 종종 복주머니난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왠일인지 개불알꽃이 더 정감이 가고 또 생긴 모양과도 잘 어울린다. 비슷한 이름의 꽃으로 개불알풀이 있는데 둘 다 이름이 특이해서 쉽게 기억되는 꽃들이다. 몇 해 전 여름, 금대봉에 올랐을 때 그곳은 야생화들의 천국이었다. 그 때 이 꽃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여러 꽃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멸종 위기에 있는 꽃이라고 알고 있어서 더욱 반갑고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꽃 모양이 재미있고 예뻐서 사람들이 마구 남획한 결과라고 하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더구나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난 후 뒤에 오는 사람이 같은 장면을 찍을까봐 꽃대를 꺾어버린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답..

꽃들의향기 2005.02.07

올들어 처음 만난 꽃

남녘 지방에 내려갔다가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다. 작은 농촌 마을 앞 밭둑에 개불알풀꽃 무리가 환하게 피어서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개불알풀은 이른 봄에 꽃이 피는데 자줏빛이 나는 작은 꽃잎이 무척 귀엽고 예쁘다. 이렇게 한겨울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은 나에게는 이색적이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더욱 색다른 풍경이 되었을 텐데 하고 욕심을 부려본다. 하여튼 올해에 자연 상태에서 만나는 첫 꽃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이 귀여운 꽃 이름이 왜 하필 개불알풀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꽃이 지고나서 맺히는 열매 두 개의 모양이 개불알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의 짖궂은 장난끼가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봄까치꽃으로 부르자고도 한다. 예부터 그런 이름으로도 불린 모양..

꽃들의향기 2005.01.30

수련

기회가 된다면 수련을 키워보고 싶다.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입이 넓은 그릇에 물을 담고 수련을 띄워 거기에 작은 꽃이 피어난대도 좋겠다. 한여름의 물 위에 넓고도 여유롭게 떠있는 잎사귀는 거울처럼 윤기가 있고, 그 사이에 한두 송이 청초하게 피어있는 수련을 보면 온갖 마음의 시름이 다 잠들 것 같다. 그래선지 수련은 한자로 水蓮이 아니라 잠잘 수자로 된 睡蓮이다. 마음의 걱정과 시름을 잠재워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수련을 키워본 사람의 얘기로는 수련의 지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고 한다. 처음 꽃봉우리였을 때처럼 꽃잎을 여미고 나서는 소리도 없이 물 밑으로 자취를 감추는데, 그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단아하고 우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으로만 그려 보는 것이지만 수련이..

꽃들의향기 2005.01.06

구슬봉이

봄 햇살은 따스하지만 산에는 아직 새싹들이 돋아나기 전이다. 땅은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로 덮여있다. 이때 봄꽃들이 얼굴을 내미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구슬봉이'다. 뒷산을 오르다 보면 길을 따라 곱게 피어난 이 꽃을 만날 수 있다. 어떤 것은 길 가운데에서도 자라나 잘못하면 무심결에 밟을 수도 있다. 꽃을 정면에서 보면 별 모양으로 생겼다. 별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있지만, 실제 별 모양에 더 가까운 것은 별꽃이 아니라 구슬봉이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낮에도 별이 그리워 누군가가 하늘의 별을 따다가 산과 들에 뿌려놓았을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이 귀여운 보랏빛 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4.12.13

타래난초

타래난초는 작고 귀여운 꽃이다. 꽃은 꽃대를 따라 피어올라 가는데 이름 그대로 실타래에 감긴 실처럼 나선 모양을 하며 달려있다. 꽃이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눈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꽃의 색깔이나 모양이 너무 예뻐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면 양지 바른 곳에서 피어나는데,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산소의 잔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할미꽃과 생육 환경이 비슷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작으면 작은 대로, 눈에 띄지 않으면 또 그대로, 자신의 주어진 몫을 다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저 작은 꽃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꽃들의향기 2004.12.08

처녀치마

처녀치마는 수줍은 듯 숨어서 피어나는 꽃이다. 이른 봄, 아직 산에는 잔설이 남아있는데 처녀치마는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꽃을 피운다. 이 꽃은 모양도, 이름도 특이하다. 굵은 꽃대 위에 다닥다닥 보라색 꽃이 달려있고, 크고 긴 잎은 땅에 붙어서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꽃이나 잎이 여성의 치마 모습을 닮은 것도 같다. 꽃은 주름이 많아 부풀어오른 풍성한 스커트가 연상이 되고, 잎이 땅에 펼쳐진 모습은 늘씬한 롱스커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이 꽃의 일본명을 잘못 옮긴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꽃의 일본 이름이 猩猩袴(쇼우조우바카마, 성성이치마)인데, '쇼우조우'라는 발음이 소녀(少女)의 '쇼우조'와 비슷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처녀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꽃들의향기 2004.12.01

쥐오줌풀

새벽 4시에 일어나 배낭을 챙겨서 출발한다. 소백산 아래에 도착해서 어두운 산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오르면 연화봉에 이른다. 오르는 도중에 해가 떠오르는 장관도 볼 수 있다.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는 어머니와 만날 시간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어머니는 산나물을 뜯으러 가고, 나는 소백산 능선의 봄꽃을 보기 위해서이다. 5월 초순이 되면 소백산 연화봉 부근 능선은 아름다운 야생화 꽃밭으로 변한다. 바람 세고,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산꼭대기 벌판에 봄이 되면 온갖 야생화들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처음 이 광경을 보고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넋이 나갈 정도여서 이리저리 허둥대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언제나 꽃들에 취해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사실..

꽃들의향기 2004.11.25

말채나무

바람이 차다. 지난 밤에 분 바람으로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느티나무, 느릎나무에 마지막까지 달려있던잎들도 이젠 대부분으로 땅으로 돌아갔다. 말채나무의 노오란 잎들만이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끝까지 남아 '아듀-'의 인사를 보내고 있다. 11월이 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래도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좋은 때이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머리 위의 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되겠다.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같은 말채나무이다. 그런데 이놈은 색깔이 붉다. 이웃해 있는 같은 두 나무가 하나는 노란 잎을, 다른 하나는 붉은 잎을 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꽃들의향기 2004.11.13

산국

이젠 산과 들에서 야생화를 보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 노란 산국이 아닌가 싶다. 산국(山菊)과 감국(甘菊)은 구별하기가 무척 힘들다. 둘의 차이점을 설명 듣기는 했으나 막상 실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둘은 너무 비슷해서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포기하고, 산에서 자주 눈에 띄는 노란 꽃은 그냥 산국이라고 부른다. 감국은 흔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화주나 국화차로 이용하는 것은 감국이라고 한다. 산국은 독성이 있다니 조심해야 되겠다. 이 조락의 계절에 저 산 아래 어딘가에는 노란빛의 산국 한 무더기가 아직 남아있어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4.11.01

토평의 코스모스 꽃밭

서울에서 가까운 토평의 한강변에는 넓은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마침 오늘은 구리 시민의 날과 겹쳐서 강변북로와 한강 둔치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났다. 철 지난 코스모스 꽃밭에는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다니는 바람에 꽃들이 밟혀 죽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타서 온전한 꽃밭을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늦게 씨를 뿌렸는지 싱싱한 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코스모스는 남미 원산의 외래종이지만 이미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된지 오래다. 포플러나무가 도열한 신작로 양편으로 코스모스 꽃길이 환했던 옛날 고향 가을 풍경도 아련하다. 지금은 중부 지방 산들의 단풍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는데 가을이익어가고 있는 우리 산하는 어딜 가도 아름다운 풍..

꽃들의향기 2004.10.10

미국쑥부쟁이

암사동 한강 둔치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자연 생태 보전 지역이 있다.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고 출입 금지된지가 1년이 되는데 지금은 억새, 갈대를 비롯해서 온갖 식물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땅이 되었다. 여기에 가 보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면 땅은 금방 생명으로 가득차서 생태계가 회복되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장자리를 따라 전에는 보지 못했던 흰 꽃이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꽃 모양은 개망초와 비슷한데 크기는 훨씬 작았으며, 올망졸망 무더기로 피어있는 모양이 가을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었다. 이름을 확인해 보니 이 꽃은 '미국쑥부쟁이'였다. 70년대에 꽃다발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들여왔는데 지금은 온 나라 산야에 두루 퍼져있다고 한다. 꽃이름에 '미국'이나 '서..

꽃들의향기 2004.10.09

고마리

오늘도 비가 지나갔다. 올 가을은 유난히 비가 잦은 편이다. 고향에서 가을걷이 하시는 어머님이 비 때문에 더욱 힘드시지나 않으실까 걱정이다. 고향 마을 앞 개울가에는 지금쯤이면 고마리가 무리지어 엄청 많이 피어있을 것이다. 고마리는 멀리서 보면 메밀꽃밭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 가보면아직 덜 핀 것은 윤기나는 쌀알같은 꽃이 탐스럽다. 워낙 작은 꽃이라서 활짝 피어도 조그만하지만 무척 귀엽고 이쁘다. 다가오는 추석에 귀향하면 이 고마리 꽃밭에 찾아가 보고 싶다.

꽃들의향기 2004.09.21

구절초

가을 분위기를 더해주는 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시골의 작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익어가고 있는 해바라기가 있고, 길을 따라가며 청초하게 피어나서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코스모스도 있다. 산에서는 노란 마타리가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고, 들판 어디에서나 자라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쑥부쟁이도 있다. 도시의 베란다에 내놓은 노란 국화 또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이런 가을꽃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구절초이다. 구절초의 하얀 꽃잎만큼 신비감을 주는 색깔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진은 공원에서 군락으로 키워놓은 구절초를 찍은 것이지만 실제 야생 상태에서는 이렇게 조밀하게 피지는 않는다. 가을 산야에 외로이 피어있는 구절초의 모습은 고독하지만 순결함을 잃지 않은 ..

꽃들의향기 2004.09.17

물봉선

이름 그대로 물봉선은 습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터 뒤안의 물기 많은 곳에도 물봉선 군락이 만들어졌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봉선화의 야생종이라 할 수 있는데산야에서 자생하는 탓인지거친 환경에도 거리낌없이 잘 자란다. 꽃의 생김새는 도리어 훨씬 더 이쁘다. 뒤쪽으로 가면서 돌돌 말린 모양이 고깔같기도 하고 무척 앙징스럽다. 특히 노랑물봉선과 흰물봉선은 색깔이 아주 곱다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잘 나오는 꽃이 물봉선이다. 그래서 앨범에 보면이 꽃 사진이 많다. 서양에서는 봉선화 꽃말이 'Touch me not(나를 건드리지 말아요)'이라고 한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이 물봉선은 봉선화보다 더 민감하여 씨앗이 익으면 사람이 손을 갖다댈려고만 해도 터져버린다고 한다. 옛날부터 봉선화는 ..

꽃들의향기 2004.09.10

범부채

범부채는 화려한 색깔에 어울리게 여름에 피는 꽃이다. 범부채라는 이름은 꽃의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범'이라 하고, 잎은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있어서 '부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 꽃과 잎의 특징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꽃이름만은 누구나 잘기억한다. 나의 경우도 다른 꽃들은 이름을 익히는데 여러 번 반복 학습이 필요했지만 범부채는 단번에 기억하게 되었다. 범부채는 극동 지방에서 자라는 꽃이라는데 아직 야생 상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강이나 도로변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화단에서 몇 번인가 보았을 뿐이다. 꽃색깔이나 잎 모양이 일반적인 우리꽃들과는 다르게보여서 처음에는 우리나라 자생화가 아니라고 지레 판단했었다. 사진은 잠실의 한강변에서 본 범부채이다. 꽃이 시원시..

꽃들의향기 2004.09.02

꽃며느리밥풀

산길을 걷다 며느리밥풀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 꽃에 따르는 전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꽃에 '며느리' 자가 붙은 것은 다 그런 것 같다. 며느리밑씻개라는 꽃도 그렇고, 지금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며느리○○라는 꽃도그렇다. 모두다 며느리의 슬픈 신세를 꽃에 이입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 여자들 대부분은혹독한 시집살이를 경험했던 것 같다. 지금 시대에야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이혼하고 뛰쳐나가 버리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여자의 경제적 능력이나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확실히 진보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당연시되던 노예제가 폐지되었듯이 미래의 언젠가는 전쟁도 불법으로 규정되고 사라질 날이 오기를 기대해 ..

꽃들의향기 2004.08.26

각시원추리

작년에 이웃에서 각시원추리 몇 포기를 주길래 집 주변에 심었더니 올 여름에는 노랗게 꽃을 피웠다. 원추리는 각시원추리보다 더 진한 노란색이지만 화초로 감상하기에는 각시원추리의 노란색이 훨씬 밝고 부드러워서 보기에 좋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원추리 종류는 동양이 원산지로서 우리 조상들이 장독대나 뒤뜰에 심어 놓고 사랑해 온 꽃이라고 한다. 원추리는 한자 이름이 훤초(萱草)인데 이것이 발음하기 편하게 변하면서 원추리로 불리게 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노랑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색이다. 따라서 이 꽃을 집 안에 심어 놓고 바라봄으로써 집에 부귀영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고 믿은 일종의 주술 신앙적인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추리를 심은 직접적인 이유는 남아 선호 사상에 있다고 한다. 애를 밴 부인이 이 ..

꽃들의향기 2004.08.21

개망초

'개망초' - 이름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꽃이다. '망초(亡草)'라는 어감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데 거기에 접두어로 '개-'가 붙어 있으니 꽃으로서는 참 답답한 노릇이겠다. 망초는 산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초이다. 키가 멀쑥하게 커 올라가서는 여러 줄기로 갈라져서 아주 작은 꽃을 피운다. 꽃은 사람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패망할 때 곳곳에서 이 식물이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망초로 지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밭이 황폐해지면 맨 먼저 이 식물이 나타나 뒤덮는다고 해서 망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개망초는 한 눈에 보아도 망초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키고 훨씬 작고, 꽃의 크기도 달라 가늘게 방사상으로..

꽃들의향기 2004.08.04

목백일홍

온통 초록 세상에서 환한 분홍빛 꽃을 피우는 나무가 목백일홍이다. 남중국이 원산지인데 정식 이름은 배롱나무이고 백일홍, 또는 나무 백일홍으로도 부른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니 이 나무가 더 많이 눈에 띈다. 한여름과 가을에 걸쳐 피어나는 꽃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불 붙은듯 뜨겁다. 목백일홍은 꽃도 눈에 확 뜨이지만나무 줄기도 특이하다. 매끈한 줄기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나무 줄기만 남았을 때 보이는 조형미가 좋아서 마당에 이 나무를 심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해 주라는 당부를 들었다. 사진은 덕진공원에서 만난 목백일홍이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

꽃들의향기 2004.07.26

덕진 연꽃

전주에 간 길에 덕진공원에 들리다. 공원 안에 있는 넓은 호수에는 마침 연꽃이 만개해서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는 긴 장마에 흐린 날이 계속되어 연꽃의 개체수가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외지인의 눈에는 여전히 장관으로 보인다. 하나가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이렇게 수 많은 무리들이 어울려 만드는 아름다움도 있다. 연꽃이 주는 이미지는 역시 종교적이다. 꼭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어서가 아니라 탁한 물과 짙은 색깔의 연잎을 배경으로 솟아올라 환하게 피어난 연꽃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연꽃에서는 침범할 수 없는 경건함과 고귀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표정들도 아름답고 선한 기운으로 가득한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수녀님과 비구니 스님..

꽃들의향기 2004.07.25

배롱나무에 꽃이 피다

교정에 있는 베롱나무에 꽃이 피었다.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쉼없이 이어지는 장맛비 속에서 꽃봉오리가 맺힌지는 한참되었으나 드디어 몇 몇 줄기에서 연한 붉은 색의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린지는 오래되었다. 지난 달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를 쳐다보며 빨리 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왜냐하면 이 꽃이 피면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꽃을 '방학꽃'이라고 부른다. 앞의 동료가 푸념 섞어 하는 얘기를 들었다. 교사에게 방학이 없으면 모두들 미쳐버릴 것이라고, 그나마 방학이 있어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 새 학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기였는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달 동안 아이들과 또 행정과의 씨..

꽃들의향기 2004.07.15

삼잎국화

젊었던 어느 때 '100m 미남'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미남으로 불려지니 싫진 않았지만 그러나 별로 탐탁치 않은 별명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멀리서 볼 때는 그럴 듯한데 가까이서 보니까 별 볼 일 없더라는 의미일 것인데, 그것이 용모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 됨됨이까지 나타내는 말인 줄을 곧 눈치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인간을 깊이 사귀다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해서 놀랄 때가 있는데 본색이나 밑천이 드러난다고 할까, 멀리서 본 겉모습과는 달리 영 딴판이어서 실망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 우리나라 여기 저기에는 삼잎국화가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가까이 가서 보면 꽃 모양이나 색깔에 실망을 하게 된다. 제멋대로 올..

꽃들의향기 2004.07.12

개구리밥

여름이 되면서 시골 논이나 연못에는 초록의 개구리밥이 가득하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풀인데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에서 바람 따라 이리저리 떠다닌다. 부평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름이 더 익숙할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부평초 같아서 저 풀을 보면서 비슷한 연민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지만 정착이란 없다. 한 곳에 머무르는 순간 이미 떠남을 준비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한 삶을 버린다는 것은 고통이 수반된다. 떠남과 고통,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인간의 성숙이 삶의 본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풀의 이름이 왜 개구리밥일까? 개구리는 육식성으로 식물은 먹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풀이 떠있는 논 가운데로 개구리가 신나게 헤엄치며 ..

꽃들의향기 2004.06.16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에 피는 함박꽃은 북한의 국화이다. 김일성이 이 꽃을 유난히 좋아해서 개나리였던 국화가 함박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목란(木蘭)이라고 부른다는데 우리 주위에서는 좀체 보기가 힘든 나무이다. 설마 북쪽의 국화라고 기피하는 건 아닐테고, 정원수로도 좋은 나무건만 보기가 쉽지는 않다. 몇 년전 축령산에 갔다가 등산로에서 함박꽃나무를 보았다. 일부러 심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자연 상태로 자라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숲 속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이 때쯤이었을 것 같은데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함박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꽃은 목련만큼 큰 편이고 순백의 꽃잎에 핏빛같은 붉은 색의 수술대가 눈길을 끈다. 순결과 정열을 동시에 간직한 듯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꽃이다. 올 봄에는 터에 이 ..

꽃들의향기 2004.06.04

이팝나무

우리 민족의 밑바탕 정서에는 한(恨)이 숨어 있다고 한다.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한은 핏줄을 따라 대대로 이어지며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이팝나무를 보면 이상하게도 그런 한이 먼저 떠오른다. 5월에 흰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는 겉으로만 보면 화사하고 화려하다. 마치 함박눈을 뒤집어쓴 듯 온통 하얀색인데 햇빛이라도 비치는 날이면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름 그대로 하얀 쌀알을 나무에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런데 나무 이름 탓일까, 결코마음 편하게 꽃을 감상할 수는 없다. 이팝은 이밥을 뜻하는데, 배 곯은 사람들이 저 꽃을 보며 한 공기 가득 담겨나온 하얀 이밥을 연상하며 이름을 붙였으리라고 충분히 상상이 된다. 집에 양식은 떨어지고 새끼들은 배 고프다고 울 때 풀뿌리라도 캐러 산에 오른 ..

꽃들의향기 2004.05.29

흰씀바귀

터가 위치한 마을은 5월이 되면 마을길을 따라 흰씀바귀가 환하게 피어난다. 대개 노란색의 씀바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마을은 특이하게도 흰씀바귀 세상이다. 6년 전이었던가, 처음 이 마을에서 봄을 맞았을 때 길 양쪽으로 하얗게 흰씀바귀가 피어있는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수녀원이 여럿 들어와 있어서 길을 따라 오가는 수녀님들을 보게 되는데, 봄이면 흰씀바귀가 피어있는 길을 따라 하얀 수녀복의 수녀님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무척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이곳의 흰씀바귀는 꽃이 크고 화사하다. 보통 씀바귀에서 느끼는 작으며 약간은 촌스러운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 꽃을 보면 누구나 시선이 끌리게 되고, 그 순수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씀바귀의 이미지 ..

꽃들의향기 2004.05.19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자운영은 상상 속의 꽃이었다.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꽃의 이름이 고와서일까, 봄이면 남도의 논에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자운영은 내 마음속에서도 곱게 자라고 있었다. 자운영은 고우면서도 왠지 슬픈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름을 불러보면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뭔가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듯한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는데, 몇 해전에 읽었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책의 제목도 그런 느낌을 더해 주었다. 며칠 전에 전북 봉동을 지나다가 논에 피어있는 자운영 꽃밭을 만났다.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와, 자운영이다!"하고 감탄하는 소리에 차를 세우고 논에 내려섰다. 이곳 저곳 논 가득히 마치 가꾼 듯 자운영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자운영을 한꺼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다..

꽃들의향기 200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