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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토요 휴일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셋이서 가까운 산길을 걷기로 했는데 비 때문에 취소되었다. 꽉 차게 되어 있는 하루가 갑자기 텅 비어 버렸다. 비 오는 날의 적적함은 견디기 힘들다.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잠재우려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을 꺼내본다. 마침 비에관한 글이 나온다. 봄비 봄비는 겨우내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을 두드리며 온다. 비들은 오, 저 ‘시체들의 창고’인 땅을 맹인의 지팡이로 두드리듯 두드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얼어붙은 땅은 풀리고 땅 속에 숨은 씨앗들은 싹을 땅거죽 밖으로 밀어낸다. 봄비가 충분히 내리고 난 뒤에야 작약의 붉은 움이 돋고 모란의 묵은 가지들에도 꽃눈이 돋는다. 들창 너머로 혼자 내다보는 봄비는 쓸쓸하다. 곡식이 있으면 밥을 끓이고 곡식이 끊기면 굶는다. 하루도 거르..

읽고본느낌 2010.06.12

추억

서점에 들렀다가 장석주의 을 샀다. 글을 읽으며 역시 장석주라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장석주의 글은 깊으면서도 진솔하다. 글이나 작가도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오가 달라지겠지만 나에게는 장석주의 글이 좋다. 작가가 일으킨 파문이 전해져 공명을 일으키면서 내 마음 깊은 데를 두드린다. ‘어느 날 우유를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 알 수 없는 공허감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이런 평범한 문장도 오늘 같은 날은 나를 울린다. 은 부제가 ‘장석주의 장자 읽기’다. 본인의 삶과 장자가 ‘느림과 비움’을 주제로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책 내용 중에서 추억에 대해 쓴 부분이 있다. 장석주가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직접 옮긴다. ----------------------..

읽고본느낌 2010.05.11

미실

‘그녀의 치마가 펄럭였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김별아의 장편소설 을 읽었다. 에 기록되어 있다는 ‘미실(美室)’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설 내용으로 보면 무척 독특했던 여성이었던 것 같다. 미실은 자신만이 가진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비롯한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쥐고 정치적 야망을 이룬 스케일이 큰 여자였다. 그녀는 총명하고 명민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교활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심리를 기막히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성들의 로망이었지만 동시에 팜므 파탈이기도 했다. 미실은 대원신통이라는 핏줄을 가진 색공지신(色供之臣)이었다. 즉, 운명적으로 왕을 색으로 섬겨야 하는 왕의 여자였..

읽고본느낌 2010.04.26

하악하악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라는데 이외수 님이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힘겹다는 뜻일까,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어쩐지 어울려 보인다. 여백이 많은 책에는 작가의 단상들이 짧은 문장으로 적혀 있다. 괴짜 작가답게 솔직하면서도 유쾌하고 의미심장한데 인생의 경구로 삼아야 할 내용도 많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개의 글을 골라 보았다. - 세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

읽고본느낌 2010.03.26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군사독재가 서슬 푸르던 1970년대 초반에 대학 생활을 했다. 나의 20대는 유신시대와 궤적을 같이 한다. 되돌아보면 데모와 돌멩이, 최루탄 가스 냄새, 그리고 휴강, 휴교로 점철된 대학 생활이었다. 수업 몇 시간 하지 못하고 학기를 마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정치나 사회의식이 부족했었던 탓에 정권의 폭력이나 반민주적인 시국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했다. 그저 수업을 안 하는 게 좋았고 반정부데모에는 대개 방관자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참 부끄러웠던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한승헌 변호사님의 이라는 자서전을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하여 어두웠던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가 얼마나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는지를 정작 그 시대에..

읽고본느낌 2010.02.09

예수전

작년에 샀던 김규항의 을 다시 읽었다. 보통 두 번째 읽게 되면 긴장감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관점에 대한 긴장과 새로운 이해에 대한 설렘이 여전했다. 저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지만 ‘마르코복음’에 대한 강독 형식의 해설서를 썼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성서에 대한 내공이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작년에 이 책을 읽고 맨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언젠가는 이런 신앙 고백서를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좀더 건방지게 말하면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이분이 먼저 써버렸다는 박탈감 같은 것도 있었다. 전부터 마르코복음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견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마 그 소원이 이루어진..

읽고본느낌 2010.02.04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수많은 세대의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받들어 왔지만, 그 예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적다. 더구나 예수가 뜻한 바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더욱 적다. 예수의 말은 별의별 뜻으로 왜곡되어 아무 뜻도 없게까지 되었다.’ 엘벗 놀런(Albert Nolan)의 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내가 성서 모임에 나갔다가 사 가지고 온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시의적절 하게 주어진 좋은 책이었다. 무릇 좋은 책이란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듯 마음속의 고민을 풀어주고 헝클어진 생각들을 하나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당시에 예수가 가졌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에게 이 책은 막힌 속을 뚫어주는 시원한 약수와도 같았다. 라는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이 ..

읽고본느낌 2010.01.30

사랑의 광기

민음사에서 나온 을 읽었다. 두 권으로 되어 1천 페이지에 이르는 완역본이다. 예전에 로 나온 것은 분량이 반밖에 안 되는 다이제스트 판이었다. 그때는 성당 종지기와 집시 처녀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읽으니 도리어 정반대다. 중세 시대 인간 군상들의 사랑의 광기를 그린 내용으로 읽힌다. 소설에서 중심인물은 노트르담의 꼽추인 카지모도라기 보다는 라 에스메랄다이다. 이야기는 노트르담 사원에서 열리는 광인 축제일에서 시작된다. 성당의 부주교인 클로드 프롤로의 명령으로 카지모도는 라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야경대장 페뷔스의 도움으로 아가씨는 구출되고 그녀는 순간에 페뷔스에게 반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이 외골수 사랑이 갈등과 불행의 씨앗이 된다. 부..

읽고본느낌 2010.01.06

아픔이 아픔을 구원한다

집에서 놀다 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제는 공지영의 소설 을 읽었다. 이야기가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불과 한나절이 안 걸려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아픔이 아픔을 구원한다'는 말이불현듯 떠올랐다. 이 책은 인간의 본질과 아픔에 대해서 많이 생각케 해 주는데,특히 주인공인 유정의 케릭터가 마음에 든다. 그녀는 잘 나가는 집안에서 자라 대학 교수가 되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다.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방황과 일탈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그녀가 사형수인 윤수를 만나면서 둘은 내적인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위로받으며 치유되어진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의 내면은 동정이나 연민 이상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아픔에 의한 동질감이 ..

읽고본느낌 2010.01.05

삶은 농담이다

방학이 되어 찾아온 자유시간이 감사하다. 느닷없이 받아든 선물에 어리둥절하는 아이처럼 아직도 들뜬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이 축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마음은 여전히 설렌다. 매일 휴대폰 알람에 억지로 잠이 깨어 출근하고정해진 시간표대로 지내야 하는 일과에서 한 순간에 해방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몸과 마음이 적응하는데는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지난 가을에 허리 쪽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히말라야로의 출발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내가 빠진트레킹 팀은 모레 안나푸르나로 출발한다. 덕분에 올 방학은 길고 온전한 휴식이 주어졌다.이 선물 보따리를 앞에 두고 가능하면 천천히 끈을 풀고 싶다. 어제는책장에서 오래된 소설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마침 손에 잡힌 것이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읽고본느낌 2009.12.30

열정의 습관

“섹스를 잘하는 남자와 하는 섹스죠. 여자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남자. 지식과 경험과 전술과 창조성이 풍부한 남자. 터부가 없는, 아주 자유롭고 성적 재능이 있고 대담하고 감각적인 남자와 하고 싶어요. 그에게도 성감대가 아주 풍부하다면 더욱 화려하겠죠.” “남자가 나를 함부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엉덩이를 때리고 몸을 묶은 뒤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체위를 구사하기를 바래요.” “한없이 오래 해보고 싶어요. 두 시간이나 세 시간쯤 계속. 어떤 상상의 힘도 빌리지 않고 완벽하고 감미로운 단계를 지나 오르가슴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그를 잊지 않고 의식하는 섹스. 그러니까 난 끝까지 사정하지 않는 남자를 기다려요.” “낯선 남자에게 반쯤, 거의 부드럽게 강간을 당하는 섹스를 원해요. ..

읽고본느낌 2009.12.28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인문학적 교양이란 문학, 철학, 역사, 문화, 예술 등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가리킨다.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인문학적 교양이란 한 인간이 온전한 인격체로 자라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물론 이것은 지식의 만물박사라는 뜻이 아니라 인본주의를 바탕에 둔 인문학적 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인문학에 비해 과학적 교양이라는 말은 별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교양이 없다면 창피하게 생각하지만 과학적 교양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일부러 교양과학서를 찾아서 읽는..

읽고본느낌 2009.12.24

고등어를 금하노라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좋은 책이란 차 한 잔 앞에 두고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같이 웃고, 울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도 그런 책이다. 저자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고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인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당당한 삶, 또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부러웠다. 책에는 부부관계, 자녀관계, 환경문제, 과거청산, 시대의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며 반성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표지에 실린 네 가족의 소개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인지 그려질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

읽고본느낌 2009.12.11

정상적인 삶의 목록

‘슈퍼클래스’는 위너 중의 위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함께 가지고 있다. 코엘료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결정하는 사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외모 따위엔 신경 쓸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만인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믿는 꼭두각시들의 줄을 당기는 사람, 그 줄을 어느 날 싹둑 잘라버려 꼭두각시들이 생명과 힘을 잃고 굴러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코엘료의 신작 소설 ‘승자는 혼자다’[The Winner Stands Alone]는 그런 슈퍼클래스들과 슈퍼클래스의 명성과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치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찾듯 그들은 오직 성공만을 위해..

읽고본느낌 2009.11.25

이외수의 감성사전

평화 전쟁 발발의 합리적 근거 주인공 작중 인물 중에서 가장 목숨이 끈질긴 존재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봇 엑스트라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시계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모래 주로 해변에 많이 산재해 있는 최소 단위의 금빛 혹성 식인종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하는 종족 총알택시 승객과 기사를 장약하여 죽음을 향해 발사되어진 지상용 교통미사일 명예박사 자신이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이나 학술단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 불만 불연소된 욕심의 찌꺼기 고성방가 소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불필요성을 타인에게 확실하게 알리는 행위 수면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

읽고본느낌 2009.11.13

촌놈의 행복론

사람은 왜 사나? 살라고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이것이 나의 인생철학의 전부다.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요리책을 보면 팔보채나 탕수육을 어떻게 만들라고 샅샅이 조리법을 말해준다. 행복을 만드는 요리책은 없을까? 러셀의'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이 내 머리에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때 퍽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하나다. 그 책에는 건전하고 쓸모 있는 충고가 담겨져 있다.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모든 행복론과 같이 너무도 일반적이다. 이 책들은 마치 팔보채가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팔보채를 만들려면 어떤 채소가 얼마쯤 들고, 어떤 조미료가 필요하고 언제 어떻게 얼마 동안 이것들을 지지고 볶고 데치라고 말해주지..

읽고본느낌 2009.10.13

한비야가 권하는 24 권의 책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한비야가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녀는 여고시절부터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30 년 이상 실천해 오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책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당당함, 그리고 유창한 언변이나 감칠 맛 나는 글은 이런 단단한 내공이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일견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는 외형적 모습만이 아니라, 이같이 치열한 자기수련의 모습도 사람들이 본받으려 했으면 좋겠다. 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기는 힘든 일이었다. 몇 해 전에는 도서관 대출 기록으로 통계를 내 봤더니 겨우 100 권을 넘기기도 했다. 1 년에 100 권의 책을 읽자..

길위의단상 2009.08.24

무탄트 메시지

호주에 ‘참사람’이라 불리는 원주민 부족이 있다. 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모든 생명체가 한 형제임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 같은 문명인들을 ‘무탄트’라고 부른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기본구조에 내적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라는 의미다. 문명의 이기를 내세워 자신의 욕망 추구를 위해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나무를 베어내는 행위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암세포와 같은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마취약에 취해 자신과 세상을 파멸시키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볼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혜를 말해주는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호주 원주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픽션..

읽고본느낌 2009.08.17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46년 7월에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면서 세금 납부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들어간다. 세급 납부를 거부한 이유는 자신이 낸 돈이 노예를 사는데 쓰이거나, 사람을 죽이는 총을 만드는데 쓰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척이 세금을 대납해서 그는 하루 만에 풀려났지만 이 일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에 관계된 그의 강연 내용을 후에 책으로 출판한 것이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시민의 불복종'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톨스토이나 간디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권의 폭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원류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소로우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이유는 현 정권의 폭력이 도를 지나친다는 느낌..

읽고본느낌 2009.07.08

착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돌프 페르로엔이 쓴 ‘2백 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14살 마리아의 일기 형식으로 된 작은 책이다.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지만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가 열네 살이 되자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준다. 마리아는 멋진 선물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제일 놀라운 선물은 어린 노예 소년 꼬꼬와 채찍이다. 꼬꼬는 접시에 담겨져 식탁에 올려진다.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9세기이고, 마리아는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령 가이아나에서 대규모 커피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의 외동딸이다. 천진난만한 소녀 마리아와 가족들이 노예를 경멸하고 인종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백인들에게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

읽고본느낌 2009.07.03

생명의 본능

‘21세기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은 새로운 여성의 세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동물세계에서는 암컷의 바람기가 보편적인 현상임을 보여주는 예들이 나온다. 새들 새끼의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반 이상이 자신의 짝이 아닌 다른 수컷과의 관계로 태어난 것이 밝혀졌다. 일부일처제를 지킨다고 알려진 원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다양하고 질 좋은 유전자를 확보하는 것이 생명의 목적일진대 평생을 한 파트너와 관계한다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훨씬 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할 확률이 높다. 인간세상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바람기가 쉽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여자의 바람기는 은폐되어 있고 또..

읽고본느낌 2009.06.29

아미엘의 일기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이 40여 년 동안 쓴 일기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한 개인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세속적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영혼의 평화를 얻고자 했다. 맑은 영혼을 가진 그의 일생은 소박했고 청빈했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우울한 측면도 있었는데 그것은 일기의 기본 색조로 나타나서 일기를 읽는 내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미엘에게 있어 일기는스스로 말한 대로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라고도 했다.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성찰하고 고뇌하는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밑줄을 치며 읽었던 '아미엘의 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아래에 옮겼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왠지 일본어로 중역된 느낌이 자..

읽고본느낌 2009.06.23

여자에 대하여

'아미엘의 일기'를 읽고 있다. 평생을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명상을 한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 그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바로 여자에 대한 관점이다. 아미엘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은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라기보다는 남자에 종속된 존재, 또는 정신적 미숙아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시대의 고정관념과 내적 싸움을 한아미엘의 여성관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볼 때 아마 성장 과정에서의어떤경험이 관계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미엘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일기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여자는 수수께끼다. 여자는 멀리 도망치기를 좋아하며,..

읽고본느낌 2009.06.06

인생

최근에 중국 소설 세 권을 읽었다. 다이호우잉의 , 그리고 위화(余華)의 와 이었다. 다이호이잉이 문화대혁명이 지식인에게 준 상처를 그렸다면, 위화는 역사에 짓밟힌 민중의 아픔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을 읽는 동안 여러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은 푸구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뱅이가 된다. 고난의 삶은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마저도 모두 앗아간다. 착하기만 한 아내 자전과 두 자녀 유칭과 펑샤, 사위인 얼시와 손자 쿠건이 각자 기막힌 사연들로 차례로 죽고 노인은 혼자 남는다. 푸구이의 삶은 국공내전과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을 거치며 거친 역사의 물..

읽고본느낌 2008.10.21

로드

대재앙을 겪은 지구는 종말을 맞았다.뜨거운 불길이 전 지구를 태웠고 세상은 잿빛이 되었다. 짙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기온은 내려갔다. 대부분의생물은 멸종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은 극한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간다. 파괴된 지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들이다. 그중에 한 남자와 아들이 있다. 그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따뜻한 남쪽을 향해 길을 나선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를 단번에 읽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지구의 종말을 그린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렇게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적도 드물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실이나 신념들이 산산조각난 상태, 신이나 진리라는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은 문명이나 인간의 본모습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

읽고본느낌 2008.10.05

사람 풍경

'사람 풍경'은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수 년간 정신분석을 받은 뒤, 자신을 찾기 위해집을 팔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사람들 얘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록이다. 이 책을 들면 저자의 여행 얘기를 들으면서 심리학 용어나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을 쉽게 익힐 수 있다.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배경에 대해 솔직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할 때는 거북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특히 유년 시절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성을 중요시하고, 그 시절의 억압이나 왜곡된 콤플렉스가 무의식의 세계를 만든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해석하는데 프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첵은 3 장으..

읽고본느낌 2008.09.17

인간 없는 세상

에는 인류가사라진 후 지구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상한 연대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며,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 역시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인간만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이 생태계에 가한 압박이 없어지면 지구는 어떻게 반응할까? 확실한 것은 인간이 사라져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잘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멸종을 슬퍼할 종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도리어 대부분의 생물 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간의 부재를 환영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문명의 구조물들도 오래지 않아 숲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인간이 오염시킨 땅과 대기도 정화될 것이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지구가 인간의 흔적을 지우는데 그리 오..

읽고본느낌 2008.09.03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 권

워낙 답답한 세상이니 웃기려고 한 짓이겠지, 지난 달에 국방부에서 발표한 불온서적 23 권 목록을 보며들었던 생각이다.아직도 불온서적이라는 용어를 쓰는 구태의연함도 놀랍지만, 골라 놓은 책이라는 게 엉뚱하기 그지없다.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은 내가 감명 깊게 읽었고 사람들에게도 권한 책인데, 글쎄, 불온서적 목록에 들어있다. 또 '나쁜 사마리아인'은 조중동 조차 올해의 책으로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놓았으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코미디 같은 국방부의 짓거리로 해당 책들은매출이 몇 배씩 껑충 뛰었다고 한다. 읽지 못하게 막은 게 도리어 책 선전을 한 꼴이 되어 버렸다. 저들이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한총련에서 추천한 책들이었기 때문이란다. 반정부, ..

길위의단상 2008.08.26

동무와 연인

김영민 씨의 글을 읽으면 이름 그대로 영민함이 번뜩인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신선하고 색다르다. 우리의 통속적인 관점을 가차 없이 또는 잔인할 정도로 조롱하고 가면을 벗긴다. 약간은 현학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의 글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이번에 이라는 책을 읽었다.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역사상에서 주목할 만한 동무나 연인, 사제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진실을 얘기한 책이다. 서문은 이렇다.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동무의 불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

읽고본느낌 2008.05.30

무서록

H의 자리에 찾아갔더니 책상 위에 이있다. 몇 해 전에 가보았던 '수연산방'의원 주인이었던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 쓴 수필집이라고 한다. 아직 다 읽지도 않은 H의 양해를 얻고 책을 빌린 뒤이번 주말에 집에서 읽었다. 이태준의 는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으나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것은 그가 월북작가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소개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1930 년대에는 '상허의 산문, 지용의 운문'이라 할 정도로 그는 이름난 문장가였다고 소개되고 있다. 은 말 그대로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니, 지금 말로는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감히 그의 글을 품평할 수는 없으나, 글이 담백하고 정갈하며 고전적인 아취를 풍긴다는 것은느낄 수가 있다. 다만 일말의 브루주아적인 고..

읽고본느낌 2008.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