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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 이야기

는 꽃을 주제로 한 여느 책과는 다르다. 이분이 소개하는 꽃은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천덕꾸러기들이다. 꽃 자체는 볼 품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보잘것 없는 잡초에서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읽는다. 들꽃에서 배우는 지혜가 책 가득 담겨있다. 짓밟혀도 굴복하지 않는 잡초에서 민중의 저항과 생명력을 읽는다. 본인은 어줍지 않게 들꽃 이야기를 썼다고 했지만 글을 읽다보면 내공이 대단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함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 들꽃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추출해 내는 지은이의 혜안이 부럽다.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주변에서 흔하지만 하찮게 취급하는 풀과 나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삶을 본다. 귀화식물에서는 이주..

읽고본느낌 2011.10.19

영혼의 식사

, 로 만난 위화(余華)는 인생의 고통과 비극을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해 인상적이었다. 위화는 색깔이 분명한 매력적인 작가다. 문학의 위대한 점은 인간을 바라보는 동정과 연민의 마음에 있고, 이런 느낌을 철저하게 표출해내는데 있다고 했다. 위화는 인간의 내면을 따스한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볼 줄 안다. 는 위화의 산문집이다. 아들을 키우며 느낀 단상, 유년시절의 추억, 그리고 글쓰기와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생각을 모았다. 소설과는 다른 위화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위화의 색깔은 여기서도 온전히 드러난다. 작가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쓴 수필 중에서 두 편을 골라 보았다. 슬며시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글이다. 자..

읽고본느낌 2011.10.08

축의 시대

[The Great Transformation]에는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종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저작이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 부른 시기는 BC 900년에서 BC 200년 사이다. 이때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지혜가 태어났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역사상 지적, 심리적, 철학적, 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고,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성숙해진 창조의 시기였다. 우리는 영적 천재들이 살았던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저자는 ..

읽고본느낌 2011.09.26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내방송에서 몇 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그 얘기?”라고 반문한다. 현실적인 경제학자는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 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미 차례차례 빙산에 부딪치고 있는 중이다. 는 우리에게 저 위험한 바다를 보라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타이타닉호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발전 이데올로기는 1949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서 처음 제시되었다. 미개발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경제적 원조를 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정책이었다. ‘미개발 국가’라는 용어도 이때..

읽고본느낌 2011.09.15

흐르는 강물처럼

은 송기역 시인이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이상엽이 사진을 찍은 4대강 기행의 르포르타주다. 2010년 한 해 동안 4대강 공사현장을 답사하며 파괴되는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이 시대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의 고발서다. 책의 부제는 ‘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화를 내고 분노한들 이젠 대책이 없다. 4대강 사업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올 가을이면 강을 죽이는 속도전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4대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구경꾼이거나 방관자로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며 가끔은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부끄럽다. 이 책은 우리의 눈과 귀를 대신하여 처참한 상처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

읽고본느낌 2011.08.27

뒷산이 하하하

글 참 재미있게 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뒷산에 대한 얘기만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라는 책이다. 쓴 이는 건축가 이일훈 씨다. 얼마 전에는 라는 생태환경에 관한 책도 냈다. 서울 서쪽 변두리에 있는 지양산이 이야기의 무대다. 저자는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며 만나게 된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적었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이 저자를 통해 깨소금 같은 얘깃거리로 바뀌었다. 약수터의 안내문이나 현수막, 약수터에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물통, 지팡이에서 텃밭, 나무와 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야기의 소재다. 물론 약수터를 중심으로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 우리의 보통 이웃인 그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욕망,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뒷산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읽고본느낌 2011.08.21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1976년에 처음 나온 잡지 창간호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표지에는 쌀을 쥐고 있는 투박한 농부의 손 사진이 실려 있었다. 는 당시의 교양 월간지 관행으로 보면 파격적인 형식을 취했다. 아름다운 사진이 많았고 잡지 디자인도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나 시사 문제보다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비판도 받았다. 를 발행한 분이 당시 브리태니커 회사 대표였던 한창기 선생이다. 편집장은 윤구병 선생이 맡았는데 윤 선생 말에 의하면 이런 잡지를 출판하면 몇 달 못 가 망한다고 모두가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문화를 사랑하는 선생의 고집이 미국 본사를 설득해 결국 품격 높은 잡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는 잡지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

읽고본느낌 2011.08.10

소금꽃나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 높은 곳에 50대의 여성노동자가 있다. 김진숙 씨다. 올 1월 6일에 올라갔으니 200일이 넘었다. 그는 해고 노동자의 복직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고 있다. 그동안 전국에서 세 차례나 희망버스가 다녀갔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관자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가 쓴 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울어본 것도 처음이다. 전에 그의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며 울컥한 적은 있었지만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책에는 그의 지난했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소위 공순이에서 버스 안내양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이 지내다가 1981년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읽고본느낌 2011.08.01

생활의 발견

임어당(林語堂)의 (The Importance of Living)을 다시 읽었다. 거의 40년 만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생 때였는데 당시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 친구 Y와도 독후감상을 나누며 저자가 쓴 삶의 태도에 같이 공감했다. 그러나 젊었던 그때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런 식의 삶이 멋있을 것 같다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유자적의 동양적 인생관을 찬양하는 이 책의 내용을 청춘이 실천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겠다고 다짐한 것 같은데 이제야 실천하게 되었다. 같은 책이라도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40년 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저자의 말이 내 속으로 스며든..

읽고본느낌 2011.07.08

신을 위한 변론

서구에서는 지금 무신론이 유행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저서들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나도 그중 몇 권을 읽어 보았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편파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깊이가 부족한 것도 흠이었다. 그런 면에서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은 객관성을 갖추고 있고 학문적 깊이도 상당하다. 원제는 이다. 저자는 수녀로 살다가 환속해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학자다. 그리고 종교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와 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와 사상사를 관통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읽고본느낌 2011.06.02

마교사전

문화대혁명 시기에 지식 청년 한소공(韓少功)은 산간오지인 마교로 하방되어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낯설고 물 선 그곳에서의 경험이 뒤에 (馬橋詞典)이라는 소설로 태어났다. 이 소설은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마교 사람들이 쓰던 115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마교는 현대문명과는 단절된 산골의 작은 촌락이다. 소설에는 문명으로 오염되기 이전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소설은 주된 줄거리가 있는 전통적인 형식을 떠나 모든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전개된다.우리 삶은 여러 개의 인과의 실마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꾸려지고 있다. 전통적인 소설의 방식은 주된 줄거리가 작자와 독자의 시야를 독점함으로써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하는 단점이 있다. 작가가 ..

읽고본느낌 2011.05.21

스님의 주례사

부부는 ( )으로 맺어진 관계다. ( )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사랑, 이라고 말하면 땡이다.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법륜 스님에 따르면 정답은 이기심이다. 사람들은 결혼하기 위해 상대를 고를 때부터 베풀기보다는 덕을 보려고 한다. 겉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계산과 거래다. ‘결혼할 때 여러분의 속마음은 어떻습니까?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에 대해, 여자는 남자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봅니다. 이때의 근본심보는 덕을 보자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떤가, 지위는 높은가, 외모는 아름다운가, 이렇게 따져가며 이러저리 고릅니다.’ 법륜 스님이 쓴 는 특히 부부관계에서의 인간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스님은 ‘사랑’의 허..

읽고본느낌 2011.05.06

꽃 피는 삶에 홀리다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했다. 집에서 걸어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시설도 좋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앞으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도서관에서 보낼 생각을 갖고 있다. 오랜만에 책 속에 묻히니 행복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김훈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과 를 빌렸다. 사람에 인품이 있다면 글에도 문품(文品)이 있을 법하다. 는 미술사학자인 손철주 선생의 에세이다. 주로 그림에 얽힌 얘기를 중심으로쓴 글인데고전적인 아취가 풍긴다. 마치 오래된 도자기를 완미하는 듯하다. 예술에 대한 지식도 놀랍지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깊은 품격이 느껴진다. 부러울 뿐이다. 책머리에 나오는 '글맡에서'라는 글도 귀하다. 눈이 나빠져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야가 좁으면 어떻게 ..

읽고본느낌 2011.04.22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는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가 젊은이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며 격려의 글이다. ‘서른 살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52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서른 살이면 인생의 전환기라고 할까, 그러나 젊다고도 할 수 없고 나이 들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나이다. 저자는 자신이 서른 살 무렵을 마치 숙제하듯 살았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사랑 받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조바심치느라 일을 즐기지 못했다고 한다. ‘~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짓눌려 사는 것이 현실을 사는 서른의 자화상일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즐겁게 살라고 저자는 인생 선배로서 충고한다. ‘~ 해야 한다’가 아닌 ‘~ 하고 싶다’ ‘~ 하니까 즐겁다’로 바꾸라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지금이라도 ..

읽고본느낌 2011.04.09

강남몽

박선녀,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났으나 여상에 다닐 때 예쁜 외모와 몸매로 우연히 모델로 발탁된다. 그녀는 룸살롱 종업원을 거쳐 마담이 되고 강남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번다. 그녀가 만났던 세도가들의 도움이 컸다. 나중에는 대기업 회장의 세컨드가 되어 최상류 계층으로 뛰어오르고, 강남의 백 평 빌라에서 딸과 함께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1995년 그날, 남편의 소유였던 삼풍백화점에 들렀던 그녀는 건물이 붕괴되면서 매몰된다. 임정아도 시멘트 더미 사이에 갇혔다. 그녀 역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삼풍백화점 지하 일층 아동복점 매장에서 근무했다. 그녀의 부모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구로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혼했고 도시 개발로 변두리로 밀려나며 가난하게 살았다. 동생은 다리를 못 쓰는 장애를 가졌다..

읽고본느낌 2011.03.08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는 남녀 사랑의 탐구생활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의 소설판 같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인 엘리스가 에릭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인데 일반적인 연애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사랑의 과정을 심리학적, 철학적 지식을 동원해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제목이 ‘The Romantic Movement’인데 결코 로맨틱하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독자에게는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저 달콤한 연애 이야기만 기대한다면 이 책은 보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 눈에 콩깍지가 낀다고 표현하듯 사랑은 환상에서 시작된다. 에릭이 구두끈 매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스는 이렇게 귀엽게 구두끈을 매는 사람을 찾아내다니, 꿈이 아닌가, 하고 황홀해 한다. 그러다가 달콤한 밀월기간..

읽고본느낌 2011.02.14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룬 작품은 수없이 나와 있다. 그동안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자서전, 르포 등 다양한 장르로 소개되어 그 내용이 익숙하다. 그런데 는 특이하게 만화로 된 작품이다. 1992년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주의자는 고양이로 그려저 있는 것이 도리어 일상의 친숙함 마저 앗아가 버리는 충격과 감동을 준다.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은 2차대전 후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가족과 친척, 이웃 대부분은 게토와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슈피겔만은 아버지로부터 구술 받은 고난의 여정을 만화로 표현했다. 다른 경험담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인간의 야만성에 대해 치를 떨게 되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

읽고본느낌 2011.02.10

살림의 경제학

은 강수돌 선생이 쓴 책으로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모든 인간이 노동력으로 평가되는 사회로 경쟁과 이윤, 출세와 성공이 체제의 핵심 논리다. 여기서는 삶의 주체들이 돈벌이의 도구로 대상화되고 만다. 사람들은 먼저 자본과 국가에 의한 '물리적 폭력'을 경험하는데 여기서는 학교와 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뒤에는 '물질적 보상'에 길들여지고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 수용'을 하면서 체제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런 체제 안의 인간은 자신의 내적 욕구를 억압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래서 남는 것은 결국 피폐한 자연과 병든 몸뚱이, 세상에 대한 원망, 두려움과 불안감뿐이다. 저자는 이런 인간파괴의 경제를 '죽임의 경제'라고 부른다. 이런 '죽임의..

읽고본느낌 2011.02.08

은퇴생활백서

며칠 전에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보내줄 책이 있으니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책인가 궁금했는데 다음 날 (어니. J. 젤린스키, 아이즈북)라는 책을 받았다. 이번에 명퇴를 한다고 했더니 마음에 새겨두었던 모양이다. 나는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은 삶의 기능적인 면만 강조해서 세상적으로 잘 사는 테크닉만 가르쳐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생을 경박하게 바라보는 그런 관점이 싫다.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은퇴에 대한 안내서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읽어봐야 뻔한 내용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이 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친구가 강권하지 않았다면 책상 한 켠에 밀어놓았을 것이다. 서론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예상외로 책 내용이 알차다는 것을 강..

읽고본느낌 2011.01.27

내 젊은 날의 숲

동료가 이 책을 선물했다. 김훈 얘기를 몇 차례 했더니 내가 김훈의 애독자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김훈의 문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수식이 배제된 건조한 단문이 그분 글의 매력이다. 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립수목원에 계약직으로 취직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민통선 안의 격리된 수목원에서 꽃과 나무의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그녀의 삶은 단조롭고 드라이하다. 격렬한 감정의 충돌도 없고 열정적인 사랑도 없다. 몇몇 등장인물들과 유해발굴단의 유골 묘사를 통해 인생의 쓸쓸함과 무의미성이 그려지고 있다. 김훈의 소설에 공통되는 산다는 것의 막막함이 조금 스타일을 달리 하지만 이번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은 6.25 때의 전사자 유골발굴단 작업에 참여한다. 발굴 현장의 유골을 세밀화로 그리..

읽고본느낌 2011.01.19

루쉰 단편

“가령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거기에는 창문도 없고 또 절대로 부숴버릴 수도 없는 그런 방이야.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지. 그러니 머지않아 모두 죽을 판이야. 하지만 혼수 상태에 빠져 곧장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치세. 그런데 자네가 마구 소리쳐 아직도 약간 의식이 남아 있던 몇 사람을 놀라 깨우게 함으로써 불행한 그 몇몇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면 과연 자네가 그들에게 잘 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겠나?” “그러나 다만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나?” 루쉰(魯迅)이 ‘자서(自序)’에서 든 비유이다. 루쉰은 의학을 공부하다가 중국 인민을 각성시키기 위해..

읽고본느낌 2010.12.17

인생의 선용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만큼 오래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잘 살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존재도 없다. 이렇게 시작되는 러보크(J. Lubbock)의 ‘인생의 선용(善用)’은 범우사에서 나온 같은 제목을 가진 작은 문고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전 직장에서 선물로 받았던 것인데 서랍 속에 있던 걸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글에는 노숙한 인생의 스승이 전하는 당부와 지혜의 말이 가득하다. 그러나 18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탓인지 고리타분한 느낌도 있다. 서양의 공자 왈 맹자 왈, 을 듣는 기분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경청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내면의 소리이기 때..

읽고본느낌 2010.11.30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65세가 되던 1993년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 프랑스 생장피도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 km에 이르는 길을 31일 동안 혼자 걸은 것이다. 이 길은 가톨릭의 순례길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따라 대서양까지 이어진다. 산티아고에 성 야고보의 시신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서기 1000년경부터 서쪽을 향해 순례 여행을 떠났다. 특히 중세 때는 순례 행렬이 대단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호이나키는 일리치의 추천으로 생애의 느지막이 이 길에 섰다. 은 한 달에 걸친 그의 순례 기록이며 신앙 고백이다. 호이나키는 에서 만났던 분이다. 젊었을 때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해서 중남미 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리치와 함께 ..

읽고본느낌 2010.11.05

백가기행

내 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내 먹을거리는 내 노동으로 기르며 사는 걸 이상으로 생각했다. 7년 전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다시 한 번 나에게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이젠 무척 두렵고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쓴 맛은 좋은 인생 경험이 되었다. (百家紀行)은 조용헌 씨가 쓴 집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전국을 돌아보며 만난 명가(名家)들이 소개되어 있다.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수 백 평 부자의 집까지 스물한 채의 집이 나온다. 한옥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지하에 지은 집도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말로는 집의 존재 의미는 ‘가내구원’(家內救援)에 있다. 구원은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집은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는 공간이다. 또한 사는 사람의 인생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 넓은 평..

읽고본느낌 2010.10.18

농부시인의 행복론

"아들아, 간디학교 졸업하면 대학 가지 말고 아버지랑 농사지으며 살면 좋겠구나." "아버지, 걱정 마세요. 사람이 제 먹을 곡식을 제 손으로 짓는 일말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친구들과 농부가 되자고 약속했어요. 젊었을 때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나서 말이에요. 그러니 학교 졸업하고 당장 농부가 되지 않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려 주세요. 아셨죠?" "여태껏 배웠으면 됐지, 무어 그리 배울 게 많나. 어쨌든 농부가 된다니 기다려야지. 그런데 농부가 된다는 말은 믿어도 되는 거지?" "아 참, 아버지는 아들 말을 못 믿으면 누구 말을 믿으세요?" "그렇지, 아들 말을 믿어야지. 믿고말고." 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내용이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는 사람은 무섭다. 보통의 먹물들은 말과..

읽고본느낌 2010.10.05

공무도하

간결한 문체 때문에 김훈의 글에 끌린다. 그분의 글은 짧고 건조하다. 살이 붙어있지 않은 생선 가시 같다. 감정의 낭비가 심한 글보다 이런 드라이한 글이 마음에 든다. 이런 문체는 삶의 비애를 드러내는데 알맞다. 그분은 늘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에 대해 말한다. 일상은 비루하고 치사하다. 부조리하고 희망 없는 세계를냉혹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세상의 치부는 숨을 데가 없다. 에서 가야의 순장 장면과 백제군의 집단 처형 장면은 나로서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극을 그릴 때 김훈 문체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번에 를 읽은 것은김훈 문체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다. 소설에는 비극적 인물 군상들이 병렬로 등장한다. 개에게 물려죽은 판잣집 아이, 누이를 강간하는 아비를 죽인 청년, 크레인에 깔려죽은 여고생, ..

읽고본느낌 2010.09.24

명리학

퇴직 후에 기회가 된다면 명리학(命理學) 공부를 해보고 싶다. 역술(易術)에 대해서는 미신이라고 이때껏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주팔자라고 하면 콧방귀부터 뀌었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호기심이 조금씩 생긴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고 이해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존중감도 생긴다. 우리 선조들의 사유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과학적이라고 내칠 것은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설날이 되면 어른들은 을 사와서 한 해의 운세를 보았다. 나는 안방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의 운세를 읽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월별로 사언절구로 된 한자가 적혀 있고 우리말 풀이가 달려 있었다. 은유적인 표현들..

읽고본느낌 2010.09.03

나를 부르는 숲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한여름 더위도 잊었다. 빌 브라이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칭송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은 친구와 함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이야기를 쓴 산행기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이라 무거워질 수도 있는데 가볍고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글 쓰는 솜씨가 정말 발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우리나라 백두대간 길과 비슷하지만 스케일은 엄청 크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는데 길이가 무려 3360 km다. 이 산길을 쉼 없이 걸어 대개 6개월 정도에 주파한다. 40대의 저자는 전 구간을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산길에서 만난 흥미로운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엄청난 모험에 대한 얘..

읽고본느낌 2010.08.03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조영남 씨를 가까이서 본 건 수 년 전 어느 종교 강연회장에서였다. 강연이 끝난 뒤 강사가 청중석에 있던 조영남 씨를 소개하며 소감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때 조영남 씨는 자신의 개신교 경력을 간단히 말한 뒤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당시 강연 주제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영남 씨가 자신은 기독교를 이미 졸업했다는 요지의 발언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 말이 당시에는 상당히 건방지게 들렸지만 지금은 자유주의자로서의 조영남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조영남 씨가 시인 이상의 시 해설서를 냈다. 제목이 이다. 아마 한자를 병기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 이상(以上)이었다. 조영남 씨는 책머리에서 왜 생뚱맞게 이상에 관한 책을 내는 이상한 일을 하..

읽고본느낌 2010.07.26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C. Hitchens)는 스스로를 물질주의자라 부른 대로 신과 종교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요사이 반종교적인, 구체적으로는 반기독교적인 책이 유행하는데 히친스가 쓴 도 그런 계열의 책이다. 내가 읽어본 중에서는 상당히 과격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도킨슨의 과 비슷하지만 종교를 비판하는 관점은 약간 다르다. 저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근거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책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의 광기와 악행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가 보기에 종교는 아편이며 독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과 죄악의 사례는 산더미보다 많다. 책을 읽다보면 인류는 종교라는 형식을 빌려 내면의 악을 배설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유물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편향된 시각이라는 ..

읽고본느낌 2010.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