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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1)

노인: "훌륭한 젊은이란 게 뭐겠어. 어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일을 하라구, 일을!" 젊은이: "일을 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젊은이: "돈을 벌면 어찌 되나요?" 노인: "부자가 되지!" 젊은이: "부자가 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부자가 되면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젊은이: "저는 벌써 놀면서 지내는 걸요!" 쓰지 신이찌가 쓴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읽고 있습니다.위의 예화는 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의 일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이 슬로 라이프를 위한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성찰의 소재로도 적당할 것 같습니다. 본문의 중심 내용을 발췌해서옮겨 봅니다. -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읽고본느낌 2005.12.19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병원에 찾아가지만 그를 진료한 의사도 눈이 멀고,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백색실명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전 도시로 퍼져 나간다. 정부 당국은눈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장님들만으로 살아야 하는 수용소 안은 식량 약탈이나 강간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지옥으로 변한다. 힘 센 깡패 무리까지 생겨나 식량을 미끼로 금품을 착취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눈이 먼 것으로 위장하고들어와서 이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며 눈먼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는데 바깥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변해 있었다. 모든 사람..

읽고본느낌 2005.12.18

글 뒤에 숨은 글

‘글 뒤에 숨은 글’은 최근에 읽은 김병익 산문집이다. 평론가, 출판인으로 살아온 저자의 자서전적인 글모음인데 내용이 진솔하고 담백해 잔잔한 감동을 받으며 읽었다. 내용 중에서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독서 편력에 대한 고백인데 초등학생 시절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책밖에 없었고, 그래서 많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5남매의 막내였다 보니 집에는 형들이 읽던 책들이 많았고 여러 분야의 책들을 접하며 지적으로 조숙해졌고 고등학교 때는 ‘사상계’나 ‘현대문학’, 실존철학서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내 경우를 보면 저자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5남매의 장남으로 형이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집에는 교과서 외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것이 5, 60년대 농촌의..

읽고본느낌 2005.12.06

유토피아의 농업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발표한 인간의 이상향을 그린 공상소설입니다. 유토피아가 당시 영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바탕을두고 쓰여진오래 된 소설이지만, 지금도 이상적인 사회 모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치 권력이나 교회 같은 당시의 사회 지배층에게 억누리고 착취 당하던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서려 있는 작품으로사유재산이 없는 평등사회,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농업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유토피아에는 농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다 농민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는 54개의 도시로 되어 있는데 각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

읽고본느낌 2005.11.22

민중의 세계사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시저는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가? 수많은 찬양을 받은 비잔티움, 그곳에 있던 것은 궁전뿐이었는가? 전설의 아트란티스에서조차 대양이 도시를 삼켜버린 날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서도 자기 노예들한테 고함치고 있었다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는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

읽고본느낌 2005.10.31

소립자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미셀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소립자(Les Particules)'라는 책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물리적 내용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20세기 서구 사회의 변화와 그 와중에 희생된 개인의 일생과 문명의 전환을 다룬 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특이한 점은 포르노 수준의 적나라한 성 묘사가 가득해서 읽는 사람을 나른하고 어둡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소립자’라는 제목이 전혀 엉뚱한 것만도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은 마치 소립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외부의 물리적 장(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이 책..

읽고본느낌 2005.09.29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대화’는 말 그대로 대화 형식을 빌린 리영희 선생님의 인생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봄,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서 선생님의 강연회가 열렸을 때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은 것은 한참이 지나 최근이 되어서였다. 7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빨려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무지몽매했던 과거의 내 부끄러운 현실의식과 역사의식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또 진실대로 살기를 염원하는 한..

읽고본느낌 2005.09.20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남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 자기 자신 속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 모두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자유로운 의지인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재물을 거부했다.” 이것은 시몬느 베이유가 고등중학교 시절 철학 시간에 쓴 작문의 한 구절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유대인 의사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총명했으나 늘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시절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녀에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화두처럼 따라다녔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

읽고본느낌 2005.08.24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소로우의 향기를 다시 맡는다. 소로우의 글은 탁한 세상에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청량한 솔바람이다. 삶에 지치고 답답할 때 그의 글을 읽으면 새로운 생기가 돋는다. 그의 글은 살아있다. 내용을 떠나 아름다운 영혼의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행복하다. 1847년 소로우의 나이 30세 때 그는 월든 호수에서의 오두막 실험 생활을 마치고 콩코드로 돌아온다. 그 1년 뒤부터 블레이크라는 친구와 13 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소로우가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 이 책이다. 블레이크가 세속적인 삶에 환멸을 느끼고 영적으로 굶주려 있을 때 더 진실하고 더 순수한 삶의 방법을 묻는 편지를 소로우에게 부치면서 두 사람의 편지는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진리를..

읽고본느낌 2005.06.04

너는 누구니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열네 살짜리 소녀 소피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거기에는 단지 이렇게 적혀 있다. ‘너는 누구니?’ ‘소피의 세계’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너는 누구니?’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받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질문은 이 물음표 하나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온갖 지식 중에서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에 열병을 앓으면 천착했던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의문도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근원에 관한 질문들이다. 개인적으로는 40대 중반에 다시 한 번 이런 질문의 회오리에 말려 들어갔고, 그래서 인생관의 대전환이 생겼다. 옳다고 믿었던 것에 고개를 ..

읽고본느낌 2005.03.30

상실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 구도자가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갑니다. 그는 깨달음에 관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게지요.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며 그는 하나씩 무거운 짐을 버려가며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갑니다. 가진 것을 거의 다 버리고, 수십 만 번 가쁜 숨을 몰아쉰 다음 마침내 세속적 집착도 거의 다 놓아버렸습니다. 최후의 능선을 오른 그는 동굴에 다다라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엔 붓다처럼 보이는 도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구도자는 기쁨에 넘쳐 물었지요. “이 세상 최고의 진리를 알려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생애 최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구도자는 이제 막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쳐 성찰..

읽고본느낌 2005.03.10

청소부 베포

옛 수첩을 뒤적이다가 보니 ‘모모’에서 옮겨 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띈다. ‘한 걸음 - 한 숨 - 한 번 비질’ ‘모모’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다. 베포 할아버지는 원형경기장에서 살고 있는 열 살 소녀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작은 키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흰 머리칼에 안경을 쓰고 있는데 초라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그의 직업은 도로 청소부다.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뭐라고 물어봐도 대답 대신 웃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을 듣는데 어떤 때는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만큼 그는 생각이 깊다. 대답이 필요 없다고 여겨지면 침묵을 지킨다. 그런 그를 이해해 주는 ..

읽고본느낌 2005.02.16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꿈을 꾸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이상과의 괴리만 느끼며 부득이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며 만들어 갑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오늘 아침에는 김미순님이 쓴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손에 잡으면 맑은 솔바..

읽고본느낌 2005.01.25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는 파리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의 진료실은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마음의 병을 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는 자신 역시 불행해져 간 것이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다른 모든 지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였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여행..

읽고본느낌 2004.09.19

우울에 대한 변명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내용 중에서 우울증을 생물의 진화와 관련시켜 설명한 부분이 흥미가 있었다. 우울증이 진화의 단계에서 생식에 이롭게 작용한 메커니즘의 하나로 보는 특이한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우울은 제거되어야 할 정신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종족 보존이나 개체의 생명 유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중증의 우울증은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보통 멜랑콜리라고 부를 때 그 어감이 가지는 조금은 낭만적인 느낌처럼 우울은 도리어 인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첫째, 우울증이 과거에 이루어졌던 유익한 기능의 잔재라는 해석이 있다. 즉 어떤 유형의 우울증은 원시적 계급 사회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집단 생활에..

읽고본느낌 2004.08.10

조나단의 고독

조나단 곁을 모든 갈매기들이 떠나갔다. 아니 그 전에 별나게 행동할 때부터 조나단은 이미 외톨이가 되었다. 가족도, 가까웠던 동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했다. 조나단이 관심을 가진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멋지게 비행을 하느냐였다. 어부들이 던지는 썩은 고기 냄새에 길들여진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행동은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멋지게 날려고 하는 모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서 평범한 갈매기로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이 그를 높은 하늘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는다. 동료들의 몰이해와 비난 가운데 그는 혼자서 비..

읽고본느낌 200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