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806

단양팔경휴게소 구절초

중앙고속도로 하행선에 있는 단양팔경휴게소에는 넓은 꽃밭이 있다. 무슨 꽃이 피어 있는지 휴게소에 들를 때면 꼭 찾아본다. 요사이는 관리를 잘 안 해서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긴 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씻어주는 반가운 꽃밭이다. 이번에는 화단의 소나무 밑에 구절초가 활짝 피어 있다. 식재한 구절초는 산에서 만나는 야생 상태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색다른 느낌으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맛보게 해 준다. 순백의 귀티 나는 꽃은 소박한 코스모스와 대비되며 가을을 장식한다. 코로나로 바깥 나들이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때에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특별한 구절초다.

꽃들의향기 2021.10.02

중앙공원 꽃무릇(2021)

분당 중앙공원 꽃무릇이 작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열흘 정도 빨라졌고 개체수도 많아져서 풍성해 보인다. 가까이서 꽃무릇 꽃밭을 구경할 수 있는 이런 장소가 있다니, 초가을이 주는 고마움 중의 하나다. 꽃무릇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본에서는 피안화(彼岸花)라고 부른다고 한다. 종교적인 느낌의 이름인데 그래선지 주로 사찰에서 길렀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운사와 불갑사 꽃무릇이 유명하다. 붉게 물든 꽃무릇 길을 거닐 때면 세상 시름 다 잊고 피안에라도 온 것처럼 탄성을 연신 터뜨리게 될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1.09.17

칸나

사람 이름을 닮아선지 '칸나(Canna)'라고 부르면 먼 이국의 고혹적인 여인이 윙크를 하며 바라볼 것 같다. 그리고는 넓은 치마폭을 흔들며 정열적인 춤을 출지 모른다. 칸나의 진홍색은 태양의 정수가 한데 모인 듯 손이라도 데면 타버릴 듯 뜨겁다. 가을 초입의 경안천변에서 칸나를 보았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심어져 있는 칸나 길이다. 칸나는 여름에서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꽃이다. 꽃만 아니라 파초처럼 넓은 잎이 특색이다. 많이는 말고 창가에 서너 송이 정도 심어둔다면 여름의 정취를 즐기는 데 적당할 것 같다. 특히 비 오는 날이라면 창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꽃들의향기 2021.09.05

8월의 애기장미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 중 하나는 장미를 만나는 일이다.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인 8월 하순, 그런데도 마을 골목길의 장미는 여전히 붉고 환하다. 줄기에서는 새로운 꽃봉오리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을이 되어도 이 붉은 장미를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리라. 무슨 품종인지 모르지만 자그마한 이 장미에 나는 '애기장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귀엽고 앙증스러워 뽀뽀라도 해 주고 싶다. 이 장미가 있는 집은 작고 아담한 농가다. 집 앞 세 평 정도 되는 마당에는 꽃밭이 있고, 집 둘레로 장미가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 주인 얼굴은 보지 못했다. 꽃처럼 마음씨가 고운 분이리라 믿는다. 나도 마당 있는 집을 갖게 된다면 애기장미를 키워보고 싶다. 그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가능할지 실험을 ..

꽃들의향기 2021.08.27

여름 불꽃, 배롱나무꽃

불꽃나무로 불러도 되겠다. 꽃이 활짝 핀 배롱나무는 나무 전체가 붉은 화염으로 불타 오르는 것 같다. 여름 한낮에 배롱나무 가까이 가니 불에 데일 듯 뜨겁다. 이열치열 꽃구경으로는 배롱만 한 나무가 없겠다. 손주 데리고 의왕에 갔다 오는 길, 갈미한글공원에서 정열의 붉은 배롱나무를 만났다. 아이에게 배롱나무를 설명해주다가 문득 이름의 연원이 궁금해졌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꽃이 핀다고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일홍'이 '배기롱'으로, 다시 '배롱'으로 발음의 편의상 변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꽃들의향기 2021.08.06

경안천 참나리

경안천을 걷는 도중에 길 옆에 핀 참나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줄기 아래쪽에 피었던 참나리는 다 졌고, 지금은 줄기 끝에서 마지막 참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참나리마저 지면 여름도 끝에 다다를 것이다. 지난 주말에 온 손주에게 빨강머리 앤 얘기를 해 줬는데 참나리를 보니 빨강머리 앤 생각이 절로 났다. 참나리도 얼굴에 생긴 주근깨 때문에 고민이 많을까. 그러나 겉모양은 절대 그런 것 같지 않다.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마음씨인가. 그런 점에서 참나리와 빨강머리 앤은 닮았다. 빨강머리 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참나리에게도 속삭인다. "고마워, 참나리!"

꽃들의향기 2021.08.04

습지공원 연꽃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 있는 호수는 여름이면 연밭으로 변한다. 그런데 연꽃은 볼 품이 없다. 듬성듬성 필뿐 아니라 백련 일색이라 단조롭다. 이름난 연꽃 명소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올해는 다른 때보다 연꽃을 많이 볼 수 있다. 해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풍성해진다. 내년이면 더 나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공원 건너편 경안천 연꽃이 훨씬 더 화려하다. 그런데 저기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는 금개구리를 가끔 만난다. 금개구리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어 특별히 보호 관리하는 종이다. 초록색 몸체에 눈 뒤로 난 금빛 줄이 선명하다.

꽃들의향기 2021.07.22

동네 여름꽃

오후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갑자가 쏟아지는 소나기를 두 차례 만났다. 우산을 써도 잠깐 동안에 온 몸이 다 젖었다. 그렇더라도 여름 소나기는 반갑다. 후덥지근한 대기가 한순간에 청량한 기운으로 바뀐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 목말랐던 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범부채 △ 나무수국 △ 원추리 △ 참나리 △ 털여뀌 △ 자귀나무 △ 능소화 △ 해바라기 △ 메꽃 △ 장미 △ 채송화

꽃들의향기 2021.07.20

낮달맞이꽃

밤에 핀다고 달맞이꽃인데 이놈은 반대로 낮에 핀다. 자신의 정체성을 180도로 뒤바꿔 버렸다.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줘도 될까 싶지만, 낮에 나오는 달을 마중하는 꽃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는 이러쿵저러쿵 재단하는 것이 꽃 입장에서는 같잖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낮달맞이꽃보다 그냥 '분홍달맞이꽃'으로 부르면 어떨까 싶다. 꽃은 분홍 바탕에 빨간색 실핏줄 같은 줄이 선연하다. 무척 곱고 순결한 분홍색이다. 중남미 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꽃들의향기 2021.07.18

털여뀌

털여뀌는 여뀌 종류 중에서도 제일 체구가 크다. 키는 내 만하고, 잎은 내 손바닥 두 개를 겹친 만큼 넓다. 한마디로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줄기에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털여뀌인가 보다. 붉은색의 꽃이 여름에 총총하게 맺힌다. 이제 장마가 시들해지면서 무더위가 찾아왔다.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리지 말고 털여뀌처럼 건들건들 호탕하게 살아야겠다.

꽃들의향기 2021.07.13

풍선초

이웃에서 준 풍선초 씨앗을 베란다 화분에 심었더니 한 달여 전에 싹이 나왔다. 힘들게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그 뒤로는 쑥쑥 크기 시작했다. 바라볼 때마다 키가 달라졌고 순식간에 내 키를 넘어섰다. 풍선초는 덩굴식물이라 지지대를 세우고 실로 천정에 있는 빨래걸이와 연결해 줬다. 여름에 들어서는 이놈 바라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덩굴손으로 실을 움켜쥐는 솜씨가 놀라워 경탄한다. 지금은 꽃을 피우고 풍선 같은 열매집도 생겼다. 풍선초는 꽃이나 열매, 자라는 형태 등이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식물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기르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풍선초는 올해 나에게 생긴 새로운 친구다.

꽃들의향기 2021.07.12

고향의 여름꽃

고향 마을을 산책하다가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옛 친구지만 고향에 내려가도 오가다가 마을길에서 우연히 만나 얼굴을 본다. 서로 연락해서 식사 한 끼 할 기회가 별로 안 생긴다. 사람을 만나기보다 조용히 있다가 오고 싶은 내 성향 탓이 크다. 친구의 사과 농장 입구에 능소화가 환하게 피어 있다. 고향집에 어머니가 키운 접시꽃이다. 어머니는 집만 아니라 동네 골목에도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며 깨끗하게 만드신다. 부지런하기로 치면 어머니를 당할 사람은 없으리라.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그런데 아들인 나는 반대이니 이 역시 불가사의다. 이웃집 마당의 무궁화가 여느 해보다 더 풍성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꽃들의향기 2021.07.09

모감주나무꽃

이맘때면 노란 물감으로 칠한 듯 황금색으로 덮이는 나무가 있다. 모감주나무다. 나무 꽃이 노란색은 드문 편이라 더욱 눈에 잘 띈다. 자세히 보면 꽃잎에 빨간색이 섞여 있기도 하다. 가을에 맺히는 딱딱한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 색깔이 황금빛이어선지 모감주나무 꽃말이 '번영'이다. 지난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숙소인 백화원 뜰에 모감주나무를 심는 기념식수를 했다. 남북이 함께 화합하고 번영해 나가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비슷한 나무에 무환자나무가 있는데 둘을 헷갈려서 부르다가 '모감주'가 되지 않았나 싶다. 모감주나무의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다. 꽃이 떨어지는 모양에서 황금비가 내리는 것으로 연상했나 보다. 다른 나무와 달리 초여름에 샛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감..

꽃들의향기 2021.06.27

뒷산 털중나리

꽃이 귀한 뒷산에서는 무슨 꽃이든 반갑다. 그런데 여름 산길을 상징하는 털중나리가 뒷산에도 있다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나리, 털중나리, 말나리 등을 구분할 실력이 나에게는 없다. 각각의 특징을 설명할 걸 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제일 흔하게 볼 수 있으니 털중나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어쨌든 반가운 털중나리다. 당분간은 네가 산길을 걷는 또 하나의 기쁨이 되어 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1.06.14

물빛공원 장미

물빛공원에는 장미 터널이 있다. 때가 지나기는 했지만 장미 구경 겸 산책을 하기 위해 물빛공원에 나갔다. 꽃잎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장미가 볼 만했다. 장미가 진다는 것은 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야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봄에 느닷없이 닥친 일들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 공부지요!"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여유를 찾을 것도 같다. 그동안 '봄장마'라 할 정도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잦았다.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갠 화창한 날이다.

꽃들의향기 2021.06.04

동네 장미

블로그에 꽃 사진을 못 올린 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18년이 되는데 이렇게 뜸했던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지금은 봄으로 풍성한 꽃의 계절이 아닌가. 그만큼 꽃구경하기 위해 바깥출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활짝 핀 장미를 보았다. 매년 같은 곳에서 보는 장미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인사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다(see)'는 겉모습이 아니라 상대의 내면을 보고 만난다는 뜻이다. 동시에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네팔의 인사말인 '나마스떼'와 비슷하다. 내가 장미를 본다고 할 때, 과연 얼마나 제대로 '보는' 것일까? 눈 뜬 장님이 무엇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지 염치 없는 짓이 아닌..

꽃들의향기 2021.05.30

여의천 벚꽃

양재에 나가 볼 일을 마친 뒤 여의천에 들리다. 여의천은 청계산에서 시작하여 양재천으로 합류하는 지천이다. 양재시민의숲 전철역에서 내리니 바로 여의천 벚꽃이 보인다. 이곳 벚꽃도 지금이 만개다. 예년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둑방길에는 꽃구경 나온 사람이 많다. 입구에는 안내인이 있어 엉키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걷도록 유도한다. 30분 정도 둘러보고 돌아오다.

꽃들의향기 2021.04.03

처녀치마를 찾아간 천마산

처녀치마를 보러 아내와 천마산 팔현계곡을 찾아갔다. 10년쯤 전에 팔현계곡에서 처녀치마를 본 기억을 더듬으며 올라갔다. 차는 다래산장에 주차했는데 내려와서 비빔밥을 먹기로 한 조건이었다. 너무 시간이 흘러선지 그때 처녀치마 있던 곳을 찾지 못했다. 거의 포기하고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녀치마가 있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자면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순서가 왔지만 뒷사람 눈치가 보여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잠깐동안 사진 석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맘껏 바라볼 순 없었지만 처녀치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그때보다 개체수가 늘어나서 감사했다. 처녀치마 외에 팔현계곡에서 만난 봄꽃이다. 큰괭이밥, 꿩의바람꽃, 들바람꽃, 얼레지, 산자고, 미치광이풀, 족두리..

꽃들의향기 2021.04.01

뒷산 목련

뒷산에 우리 토종 목련이 있다. 산속이라 누가 심은 것 같지는 않고 야생 상태의 목련 같다. 그래서 사람이 가꾼 정원에서 보는 목련과는 느낌이 다르다. 목련은 백목련에 비해 단정하지는 않지만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가 느껴진다. 인공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호방한 멋이다. 뒷산을 산책하다가 목련을 만난 행운의 날이었다. 산을 내려와서 본 동네에 있는 백목련이다.

꽃들의향기 2021.03.30

삼지닥나무

길가에서 노란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나무를 보았다. 처음 보는 꽃나무였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일본닥나무라고 했다. 우리 전통 닥나무와 달리 일본에서 들여온 닥나무라는 것이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정식 이름이 삼지(三枝)닥나무다. 닥나무 껍질은 종이를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이 삼지닥나무도 마찬가지 용도였겠지만 지금은 정원수로 주로 심는 것 같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노란색 꽃이 특이하다. 한 송이에 많은 꽃이 달리는데 위에는 피면서 밑에서는 시든다. 재미있는 모양의 꽃을 가진 삼지닥나무다.

꽃들의향기 2021.03.21

화엄사 홍매

어머니와 고흥에서 올라오는 길에 화엄사에 들렀다. 홍매를 보기 위해서였다. 재작년 봄에 직장 동료들과 가서 처음 만난 화엄사 홍매가 워낙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주가 화엄사 홍매의 절정기다. 화엄사 홍매는 나무의 자태와 함께 꽃 색깔이 유난히 붉고 진하다. 오죽하면 흑매(黑梅)라는 별칭이 있을까. 누구나 이 나무 앞에서 한두 번의 감탄사로는 부족하리라.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셔서 나는 30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사진 찍느라 분주하기만 했다. 반면에 느릿느릿 걸으시며 지긋이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계셨다. 그 모습이 꽃만큼 아름다웠다. 사진을 왜 찍는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어딜 가면 카메라부터 챙기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중독된 모양이다.

꽃들의향기 2021.03.19

우리 동네에도 찾아온 봄

멀리서 전해오는 꽃소식만 들었는데 드디어 우리 동네에도 봄이 찾아왔다. 여기는 서울보다 위도가 낮지만 기온은 이삼 도 정도 낮은 지역이다. 봄이 늦게 찾아온다. 며칠 만에 밖에 나섰더니 집 주변은 꽃들로 환하다. 언제 이렇게 폭발하듯 나타났는지 신기하다. 봄까치꽃, 제비꽃, 산수유, 매화, 민들레를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만났다. 봄까치꽃의 원래 이름은 개불알풀이다. 이름이 민망하다고 봄까치꽃으로 부른다. 전해지는 이름에는 나름의 이유와 정서가 녹아 있는데 쉽게 바꾸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불알풀은 일본명을 직역한 것이라 변경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시냇가에 앉아서 다리도 쉬고 ..

꽃들의향기 2021.03.14

마지막 변산바람꽃

수리산에 핀 변산바람꽃을 처음 본 건 15년 전이었다. 병목안 계곡을 따라 작은 꽃밭이 펼쳐진 광경은 넋을 잃을 정도로 황홀했다.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가녀린 변산아씨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뒤로 3월 초순이면 수리산을 찾아 변산바람꽃과 만났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소문이 나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변산바람꽃은 사람의 발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눈을 부릅떠야 겨우 몇 송이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안타까워 더는 찾아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증이 일어 어제 수리산 그 장소를 찾아갔다. 찾는 사람 없이 입구가 조용한 걸 보니 예상대로 변산아씨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들어가 봤지만 역시 변산바람꽃은 없었다...

꽃들의향기 2021.03.04

낙산사 복수초

낙산사에서 처음 복수초를 본 게 화재 전이었으니 거의 20년 전이었다. 이른 2월에 강원도에서 복수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때에 맞춰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속초에 가는 길에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과연 보타전 뒷편 양지바른 비탈에 복수초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예전의 그 장소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복수초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낙산사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이곳은 모르는 듯 오직 아내와 둘이서 보물을 감상하듯 했다. "여기 꽃 보러 오세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면 이마저 훼손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복수초가 피는 한 이곳은 나의 비밀의 정원이 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