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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년의 여운

지난달 손주를 데리고 경주에 갔을 때 경주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발견하고 나 스스로 놀랐다. 손주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마주하고도 한 마디 해 주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은 역사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임찬웅 선생이 경주에 대해서 쓴 책이다. 경주에 대한 상식 수준의 지식이라고 얻고자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와 의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의 역사와 경주에 존재하는 고분, 사찰 등 유적지를 설명한다. 다시 경주에 간다면 손주에게 조금은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망록 겸해서 몇 가지 사실을 간추리면, - '천년 왕국'이라 불리는 신라는 정확히는 992년(BC 57 ~ AD 935)이다. - 거서간,..

읽고본느낌 2023.03.30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최근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각국 정부에 보내는 보고서를 채택했는데 내용이 사뭇 심각하다. 앞으로 10년 안에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에 나서 않으면 기후 위기 임계점을 넘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은 양동이에 물이 가득 차 한 방울의 물만 떨어져도 기후 위기라는 물이 넘쳐버리는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현재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은 10년 전보다 12% 증가했고,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지구 기온이 1.5℃ 상승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과거 100년 동안 1.1℃ 상승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이미 해수면 상승이나 극지의 빙상 붕괴, 생물 다양성의 손실 등 일부 변화는 불가피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는 기후..

읽고본느낌 2023.03.24

새와 사람

지은이인 최종수 선생은 생태사진가로 새 사진 촬영만 아니라 새와 사람이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분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 이야기와 새들과 친해지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다. 새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새들의 정원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실제로 지은이가 만든 정원에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한 기록이 책에 실려 있다. 넓을 필요가 없이 작은 버드 피딩이라도 괜찮다. 특히 겨울철에는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새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 만약 내가 정원이 있는 집에 산다면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버드 피딩이다. 선생은 전문 사진작가이니만치 에는 멋진 새 사진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500여 종의 새를 관찰할 수 있다는데 내가 직접 눈..

읽고본느낌 2023.03.16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지은이인 정규웅 작가는 1970년대에 중앙일보 문학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많은 문인들을 취재하고 교유를 가졌다. 이 책은 그 시절 문인들에 얽힌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혹독한 계절이었다. 그 시대는 1970년의 '정인숙 피살 사건'과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으로 시작되어 1979년 박정희 피살로 끝을 맺었다. 문학계도 민중문학,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반체제문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시대 현실을 외면하고 정권에 아부하거나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부류도 있었다. 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 기억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차지하려고 김동리와 조연현 간에 벌어진 볼썽사나운 싸움도 그중 하나다. 당시에는..

읽고본느낌 2023.03.08

사진기로 상상을 그리다

이젠 AI가 사진까지 창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AI가 만든 사진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인간이 찍은 것과 구별이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뛰어나다면 사진가의 영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AI의 사진 기술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발전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인공지능이 상상을 찍을 미래가 바로 코 앞에 닥쳐왔음을 예감한다. 책 내용은 AI나 미래와는 관계가 없다. 는 김석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가가 된 과정과 본인의 사진관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김 작가는 우리 고장에 거주하고 있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한 후 애니메이션 회사를 경영하다가 늦게 사진가의 길에 들어섰다. 미술에 대한 기본 소양과 재능이 있어선지 사진 분야에서도 금방 두각을 드러낸..

읽고본느낌 2023.03.07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빛 공해를 다룬 책이다. 빛 공해란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져서 생명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건물의 과도한 조명, 낮보다 더 환한 쇼윈도, 자동차 전조등, 마당과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 전등으로 도시를 말할 나위도 없고 농촌에서도 어둠을 몰아냈다. 문명은 환한 밤을 만들었다. 환한 밤은 동식물의 생태 변화로 나타났다. 철새들은 본래의 경로에서 이탈했고, 곤충 수십억 마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식물들은 계절 감각을 잃어버렸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빛은 전통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찰과 계몽, 순수의 표상이다. 반면에 어둠은 공포, 범죄, 무지와 연결된다. 하지만 빛의 과잉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이웃간의 분쟁의 소지도 된다. 내가 편리하기 위해 밝힌 빛이 다른..

읽고본느낌 2023.03.04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를 먼저 보고 감동을 받아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가 일흔 살에 쓴 첫 소설로 30주 넘게 아마존 1위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다. 작가 자신의 야생 동물을 벗 삼아 평생을 보낸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로, 습지 소녀 카야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가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습지 지역이다. 카야는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습지에서 고립되어 혼자 살아간다. 고작 일곱 살인 소녀가 살기에는 거친 환경이지만 카야는 자연의 품 안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가정폭력..

읽고본느낌 2023.02.20

다읽(17) - 동물농장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물들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었다. 완전한 번역본이었다기보다 다이제스트 판이었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50여 년이 넘어 다시 읽어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냉소적인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반골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저지른 만행에 환멸을 느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필연으로 예견한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은 한 사람의 권력 야욕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졌다. 그는 부패하는 혁명의 과정을 똑바로 목격했다. 을 통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혁명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

읽고본느낌 2023.02.19

염세 철학자의 유쾌한 삶

쇼펜하우어를 염세 철학자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세상의 근본을 고통이라 봤지만 반면에 지혜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것은 동양 불교의 선(禪)이나 도가 사상과 닮은 데가 있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를 통해 그가 생을 부정하는 철학자가 아님을 확인했었다. 제목이 도발적인 은 그의 저작 중에서 유쾌하기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뽑아서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통해 지혜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고독해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통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고독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고슴도치 비유는 유명하다. "고슴도치 무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 않도록 서로 온기를 나누려고..

읽고본느낌 2023.02.16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가 25세 때인 1990년에 쓴 두 권으로 된 실록 장편소설이다.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책으로 나오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출판사 사장은 구속되기까지 했다. 작년에 작가가 쓴 가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출판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은 프롤로그, 1부, 2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는 빨치산의 딸로 자라난 작가의 성장기다. 빨갱이의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느낀 좌절과 분노,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반항심 등이 아프게 다가온다. 1부는 아버지, 2부는 어머니의 빨치산 활동이 독립적으로 그려져 있다. 해방이 되고 육이오 전쟁을 거친 1945년에서 1955년까지의 10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동..

읽고본느낌 2023.02.07

상처로 숨 쉬는 법

아도르노 철학을 풀이한 책이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아도르노의 를 강독하는 형식으로 설명한다. 아도르노(T. W. Adorno, 1903~1969)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연구 활동을 한 분이다. 아도르노는 사회,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인간 소외 및 물상화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부정의 변증법'이나 '계몽의 변증법' 등이 문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기조로 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아도르노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아직 살 만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 사회에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편안한 점도 있어, 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읽고본느낌 2023.02.01

절멸의 인류사

사헬란티로푸스 차덴시스, 오로린 투게넨시스,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오스타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에티오피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 약 700만 년 전에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조상에서 한 갈래가 나오고, 4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250만 년 전 호모속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렀다. 그동안 인류라 칭할 수 있는 25개가 넘는 종이 존재했지만 단 하나만 살아 남았다. 는 인류 진화의 긴 여정을 다..

읽고본느낌 2023.01.29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씨가 쓴 진보 비판서다. 문재인 정권 때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묶었다고 한다. 진중권 씨는 한때 진보 논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극우 논객'(?)으로 돌변해서 당황했었었고 지금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한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다.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인지 논리적인 짜임새는 좀 엉성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상황을 다룬 내용도 상당 부분 나온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과 진보 진영의 비판이 중심이다. 진중권 씨가 집중적으로 까는 것은 진보가 집권하면서 등장한 팬덤 정치다. 팬덤(fandom)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은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하기에 정치에서는 진..

읽고본느낌 2023.01.20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이 책을 쓴 와카타케 치사코는 1954년생으로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후 이 작품을 집필했고, 2018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는 74세인 모모코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노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모모코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면서 두 자식과도 관계가 소원하다. 이웃과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모모코는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고독을 즐긴다. 친구와 모임이 없어도 충분히 자족하며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모코의 행복은 과거의 따스했던 추억에서 나오지만, 현실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모모코는 진지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이 점이 그..

읽고본느낌 2023.01.11

엄마의 마지막 말들

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

읽고본느낌 2023.01.06

어느 독일인의 삶

이 책의 주인공은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은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독일 제국의 멸망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녀의 프로필이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 중 하나인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다.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였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비정치적이었고 그 당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장, 의무감, 소속감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나치 만해의 규모와 잔학성은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그저 평범한..

읽고본느낌 2023.01.02

엔드 오브 타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하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맹목성에서 오는 무의미함과 공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우주의 미래는 열역학적 죽음으로 귀결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암흑의 차가움 속에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냘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경이와 기쁨이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하찮은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능력은 우주의 태초부터 미래까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우주와 함께 인간 자체도 경외롭다. 은 부제가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초끈이론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면서 저서와 방송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물이..

읽고본느낌 2022.12.30

파친코

두 권으로 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민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인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야기는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자라는 여인이 있다. 선자는 아무리 밟혀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여인이다. 무너지지 않는 꿋꿋한 정신력은 한민족을 닮았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일가의 중심이 되어 시대의 풍파를 견뎌낸다. 인생은 ..

읽고본느낌 2022.12.20

불편한 편의점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 책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만 항상 대출 중이었다. 심지어는 예약까지 여러 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호연 작가가 쓴 은 올해의 가장 핫한 소설이다. 인기에 힘입어 얼마 전에 2권까지 나오고,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보도도 보았다. 마침 지인이 책을 빌려줘서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울컥해지는 장면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주면서 현실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경험을 소설에서 하게 된다. 이 소설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적으로는 구성이나 내용에서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올웨이즈'라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

읽고본느낌 2022.12.17

소설 무소유

소설 형식을 빌려 정찬주 작가가 쓴 법정스님의 일대기다. 초판이 2010년에 나왔으니 스님이 돌아가신 해에 출판한 책이다. 작가는 스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한 인물을 그릴 때 대체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생각과 삶이 사실 그대로 실려 있다. 법정스님 하면 누구나 무소유를 떠올린다. 스님이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때인 1976년에 쓴 는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고 무소유의 정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님 자신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에 울림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법정스님이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 시자로 있을 때 무소유의 가치를 깨닫는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효봉스님의 걸망을 빨려고 하다가 걸망 안에서 비누조각을 발견했..

읽고본느낌 2022.12.07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쓴 책이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으로 책 읽기의 혁명성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사사키 아타루라고 한다. 그는 1973년생으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은 서가에서 강렬한 제목에 끌려 꺼내 보았다. 제목은 어느 서양 시인의 시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책 내용과 상응하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책은 전체적으로 니체 톤의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시대를 두고 문학이나 예술이 끝났다고 쉽게 말하지만 지은이는 강하게 반박한다. 문학은 반정보며 변혁이다. 지은이가 정의하는 문학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어쨌든 문학이 살아남아야 혁명이 살아남고 인류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혁명으로 왔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읽고본느낌 2022.12.04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그리스도의 탄생

"인간 예수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해석을 담은 책이다. 어이없는 스승의 죽음을 본 제자들은 황망한 가운데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스승을 재인식하게 되고 삶이 변화되며 담대하게 되었는지를 성서를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추론해 간다. 엔도 슈사쿠는 제자들의 변화를 예수의 사랑에서 찾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미워하기는 커녕 십자가 상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지려 한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자책하면서 굴욕을 느끼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예수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다시 제자들 곁으로 올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독교의 핵심 교..

읽고본느낌 2022.11.23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인 로버트 판타노는 삼십대 중반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사색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기록했다. 이 문서는 그가 죽고난 뒤 그의 노트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제는 '모든 것들의 끝에서 남긴 메모(Notes from the End of Everything)'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쓴 글이라 책은 전체적으로 우울하면서 세상에 대한 비관이 담겨 있다. 그는 존재의 불안, 인생의 혼란과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두 가지 필연적인 경험을 대동하는데 바로 삶과 죽음이다. 실로 이 두 가지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러면서 세상의 끝에서 어떤 가치와 ..

읽고본느낌 2022.11.15

고백의 형식들

이성복 시인의 산문집이다. 1976년부터 2014년까지 씌어진 글이 모여 있다. 젊은 시절 시인의 고뇌가 오롯이 드러나 보이는 글들이다. 글 쓰는 작업이 마치 오체투지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여정 같다. 문학은 종교이며, 작가는 수행자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은 보여준다. 특히 2004년에서 2013년 사이에 쓴 '공부방 일기'는 치열한 수행 기록이다. 문학이 이토록 진지하고 엄숙한 것인지 두려움마저 인다. 글쓰기는 '사람 되기'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 역시 글쓰기는 - 비록 일기라 할지라도 - 자신과 만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는 하찮게 보여도 본인에게는 하나의 우주를 펼쳐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바깥에 드러내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인정욕구인지도 모른..

읽고본느낌 2022.11.08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의 글을 모은 책이다. 신경의학자인 저자가 경험한 여러 의학적 사례와 함께 말년에 쓴 글이 묶여 있다. 부제가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이다. 바로 전에 빌 헤이스의 책을 통해 올리버 색스의 성 정체성을 알았던 터라 그의 첫사랑 얘기가 궁금했다. 역시 여자는 아니었다. 올리버가 열두 살이었을 때 도서관에서 만난 조너선 밀러라는 소년이었는데, 함께 화학 실험이나 생물 탐사를 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이야기가 그의 첫사랑에 적혀 있다. 글 중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올리버 색스가 병원에서 근무하며 만난 환자들의 임상 사례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의 신비한 영역에 대해 뛰어난 필치로 책을 써서 일반인들에게 소개해줬다. 오래전에 를 읽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

읽고본느낌 2022.11.02

인섬니악 시티

책 내용이나 지은이인 빌 헤이스(Bill Hayes)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데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그나마 책의 뒷부분에 가서였다. '십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자는 남자하고 살았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 지은이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 남자를 남편이 아닌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으나 서양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책의 부제가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다. 파트너였던 스티브가 죽고 뉴욕으로 주거를 옮긴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는 - '불면의 도시'라는 뜻으로 뉴욕을 가리킨다 - 흥미로운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읽고본느낌 2022.10.27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은 자발적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어떤 부족은 즐거움과 구원의 원천이고 어떤 것은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증오 선동이 낳은 기괴한 산물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

읽고본느낌 2022.10.23

소년

"어른인 척하는, 늙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품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잘 간직한 채 성장하여,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고이 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선생이 쓴 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은 지은이가 자신의 소년 시절을 정신분석가답게 고스란히 드러내고 해석을 한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내 소년 시절이 겹쳐졌다.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최초의 기억인 원체험(原體驗)이다. 이 기억이 한 사람의 정서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냥 기억으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

읽고본느낌 2022.10.20

지적 행복론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돈이 많으면 정말 더 행복해지는지 알아보고자 데이터를 연구했고, 이 데이터는 행복과 소득의 역설을 보여줬다. 이스털린은 행복통계학을 연구한 최초의 경제학자다. 이 책 은 97세의 이스털린이 쓴 행복에 관한 보고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 내용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다. 다만 그의 이론은 과학적 조사에 의한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기 때문에 바탕이 탄탄하다.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우리가 행복에 접근하는데 유리한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인간 행복의 조건은 소득, 건강, 가정생활의 세..

읽고본느낌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