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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은 이문열 작가가 김삿갓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가정사를 안다면 김삿갓을 빌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김삿갓은 본명이 김병연(金炳然, 1807~1863))으로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가 난을 일으킬 때 항복하면서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의 나이 6세 때였다. 죄인의 집안 자식이라는 올가미를 쓴 채 숨어 살다가 스무 살 무렵부터 전국을 방랑하며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는 즉흥시를 남겼다. 초기에는 신분 상승의 꿈을 가졌으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는 체제의 일탈자로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이문열 작가의 부친은 서울농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가 터지자 월북했다. 그런 연유로 전쟁 뒤 ..

읽고본느낌 2023.10.11

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은 교육지옥이다." 이런 명제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생각하는 학생 비율이 우리나라는 80%에 달하는데, 중국은 41%, 미국은 40%, 일본은 13%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럽 학교와의 비교는 아예 되지 않는다. 한국만큼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한국 교육은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그렇다면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물음이 따른다. 사회학자인 김종영 선생이 쓴 는 여기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선생은 이런 교육지옥의 원인이 대학 서열 체제로 인한 병목 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SKY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여기에는 정부관료와 사교육 세력,..

읽고본느낌 2023.10.03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당신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닐봉지를 줄이려고 에코백을 샀는가?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구입하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갖고 다닐까?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했을까? 단언한다. 당신의 그런 선의만으로는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유해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온난화 대책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고 믿는 당신이 진정 필요한 더 대담한 활동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에코백과 텀블러 등을 구입하는 소비 행동은 양심의 가책을 벗게 해주며 현실의 위기에서 눈을 돌리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있다. 그런 소비 행동은 그린 워시(green wash), 즉 자본이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한 행동을 하면서도 환경을 위하는 척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너무도 간단히 이용되고 만다." 의..

읽고본느낌 2023.09.26

인간 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은 이렇게 시작한다.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공감되는 바가 더 있었을까, 사실 지금 나 같은 나에는 감정 이입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전후 일본의 방황하는 젊은이를 그려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태생이 인간 세상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사회공포증이다. 이들은 사람의 심리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인 접촉을 기피한다. 많은 경우 격리된 삶을 살지만 요조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면서 도리어 적극적으로 '익살'을 부리며 인기를 얻으려 한다. 이런 이중적인 자기모순이 결국 절망에 빠져들며 방황하게 된다. 1940년대 후반의..

읽고본느낌 2023.09.22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선생이 신문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신문 칼럼이 다루는 다양한 소재의 글감을 일상, 학교, 사회, 영화, 대화의 5부로 나누어 실었다. 선생의 세상을 보는 시니컬하면서 유머러스한 글맛을 느낄 수 있다. 5년 전 이맘때 경향신문에 실렸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세간의 화제를 끌었던 모양이다. 선생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추석에 만나는 친척들에게도 원용해보라고 충고한다.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한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

읽고본느낌 2023.09.16

다읽(19) - 싯다르타

대학생 때 한 친구는 좋아하는 여학생과 가까이하고 싶어 불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여학생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친구는 여학생한테서 수시로 불교 관련 서적을 빌려왔다. 나도 따라서 읽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친구보다 내가 더 열심이게 되었다. 이 도 그때 읽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당시 상황과 관계없는 나중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헤세는 인간의 문제, 그중에서도 인간 성장과 완성의 길을 다루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동양 사상도 짙게 배어 있다. 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헤세의 특징이 잘 나타난 소설이다. 바라문 계급의 싯다르타는 요사이 말로 하면 금수저로 태어났다. 더구나 잘 생기고 총명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제도 종교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는 없었다. 고뇌하던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

읽고본느낌 2023.09.09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의 허무에 대한 김영민 선생의 산문집이다.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많은 문학, 철학, 예술 작품을 소개된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줄기찬 노력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지은이의 진단을 보자. "현실은 복잡성과 딜레마와 역설로 가득하다. 외로워서 결혼을 했더니 더 외로워지는 역설. 배가 나와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역설. 포기했을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되더라는 역설. 미래를 예측한다며 약을 파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삶이 정녕 법칙과 예측대로 흘려가던가. 모르겠다. 대체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큰 흐름과 우발적 사건의 비빔밥 속에서 선택과 습관을 오가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지 않던가. 그러다가..

읽고본느낌 2023.09.02

인생의 의의와 가치

아주 오래전, 20대 때 본 책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권이 있다. 대부분 내용은 잊었는데 책의 모양과 제목만은 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 책을 샀던 서점과 서가의 풍경까지 떠오른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다. 이 책을 가방 속에 애지중지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맛보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은 어두운 색의 하드 커버 표지에 두께는 얇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1966년에 신조문화사에서 출판된 책이다. 지은이는 오이켄이라는 독일 철학자였고, 제목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의미와 가치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이 책 역시 제목과 외형만 남아 있을 뿐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은 정신의 창조 행위를 통해 인생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논지를 펼치지 않았나 추측한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

참살이의꿈 2023.08.23

인류의 여정

인류의 여정이라고 하면 대략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해서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뒤 현재의 문명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뜻한다. 이 거대한 여정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책 은 오데드 갤로어(Oded Galor)가 경제학의 관점에서 인류의 여정을 풀이한다. 다루는 주요 주제는 부와 불평등의 기원이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급격한 전기를 맞았다. 지은이는 산업혁명을 인류의 여정의 임계점(critical point)으로 본다. 지은이가 그래프로 보여주는 건강이나 부, 교육 면에서의 변화는 이 시기에 와서 너무나 폭발적이다. 마치 빅뱅이 일어난 것 같다. 그전까지 인류의 삶은 질적인 면에서 수천 년에 걸쳐서 대동소이했다. 기술 혁신이 있었더라도 생활수준이 향상되..

읽고본느낌 2023.08.22

공산토월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문구 작가의 대표 중단편을 모은 책이다. 연작소설인 '관촌수필'에서 네 편, '우리동네'에서 두 편, '유자소전' 등 기타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대표작인 '관촌수필(冠村隨筆)'은 두 번째 읽어보는데 마음 밑바닥을 흔드는 감동은 처음과 같았다. 작가의 자전소설인만큼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그 시절의 현장에 함께 있는 듯했다. 이 책에는 네 편이 담겨있는데 '일락서산(日落西山)'에는 작가의 할아버지, '행운유수(行雲流水)'에는 옹점이, '녹수청산(綠水靑山)'에는 대복이, '공산토월(空山吐月)'에는 신석공이 나온다. 다시 읽어봐도 제일 끌리는 인물은 역시 '행운유수'의 옹점이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옹점이를 만났다. 작가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열 살 위의 소녀 옹점이는 ..

읽고본느낌 2023.08.17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프레임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진영이 여론을 이끌어 나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외친들 도리어 코끼리를 생각나게 해 줄 뿐이다. 반대하는 순간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어 있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쓴 이후 '프레임'이란 말은 유행어처럼 번졌다.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는 미국에서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이 참패한 때였다. 진보 진영이 왜 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프레임'이라는 핵심 단어로 풀고 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

읽고본느낌 2023.08.12

삼대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근자에는 국어 선생을 했던 후배가 추천하기도 해서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이 소설을 가르쳤지만 자기도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두꺼우면서 낯선 용어가 자주 나와 읽기에 부담이 될 거라고 주의도 줬다. 마침 출판사 지만지에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를 펴내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는 염상섭 작가가 1931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215회까지 이어졌다니 보통의 연재소설에 비해 두 배나 되는 분량이다. 현재의 책으로도 1천 페이지가 넘는다. 이 작품이 문학사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나로서는 특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1920년대의 경성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보는 재미는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1..

읽고본느낌 2023.08.05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

읽고본느낌 2023.07.30

다읽(18) - 데미안

20대 때 읽은 책을 지금 다시 읽으면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늘 궁금하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는데 아쉽게도 그때의 느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50년 전이니 기억한다는 게 도리어 이상할지 모른다. 하물며 데미안이 이 소설 주인공 이름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싱클레어이고 데미안은 그의 멘토며 구원자다. 또는 싱클레어 내면에 있는 영혼의 목소리로 볼 수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맞다. 은 자아를 깨뜨리고 새로운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소년의 구도기라 할 수 있다. 독립된 인간으로 서려는 청춘의 성장통..

읽고본느낌 2023.07.22

노화의 종말

"노화는 질병이다"라고 이 책의 지은이는 단언한다. 질병이므로 치료할 수 있다. 노화를 막을 수 있다면 죽음도 무기한 연기할 수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더 이상 인간의 숙명이 될 수 없다. 이 책 은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이자 노화와 장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D. A. Sinclair) 박사가 썼다. 지은이는 현재 과학자들이 찾아낸 노화 현상의 연구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지은이가 정의하는 노화란 세포의 상해와 손상에 대응하는 후성유전 신호 전달자들이 과로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생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의 생명체가 극한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착한 '생존 회로'가 노화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생존 회로는 DNA가 끊겼음을 알아차렸을 때 세포 분열과 번식을..

읽고본느낌 2023.07.17

더 브레인

몇 달 전에 읽은 의 여운이 남아 있다.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설명에 끌린다. 심리학자의 분석과는 방법이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은 같을 것이다. 아직 뇌에 관한 인간의 지식은 초보 수준이다. 외부 세계의 질서나 작동 원리의 지식에 비해 정작 자신 안에 들어있는 - 어쩌면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 1.4kg의 두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이 책 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이글먼이 썼다. 같은 제목의 TV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뇌과학의 입문서로 좋다고 해서 읽어 보았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한 친절한 설명과 사례가 돋보였다. 내용은 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았다. 에서도 인간 뇌의 특징으로 가소성(..

읽고본느낌 2023.07.08

산업사회와 그 미래

지난달에 '유나바머(UNABOMBER)'가 미국 교도소에서 81세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테어도르 카진스키(T. J. Kaczynski)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편물 폭탄 테러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도가 되며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난다.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 Airline + Bomber]란 그가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소포로 포장된 폭탄을 보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섯 차례에 걸친 폭탄 테로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유나바머는 IQ 167의 천재였다. 16세에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다. 어떤 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갑자기 교..

읽고본느낌 2023.07.01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선생이 쓴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다. 전기라기보다는 충무공이 치른 해상 전투를 중심으로 장군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 국뽕기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사실(史實)에 입각한 드라이한 설명이 좋았다. 또한 각 전투마다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조선 해군의 힘이었다. 천자총통 등의 함포로 무장한 판옥선은 일본 해군보다 뛰어났다. 충무공은 우리 해군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여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충무공의 기본 전술은 일본의 조총 사거리 밖 먼 거리에서 포로 일본 함선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지형이나 때를 이용한 충무공의 전술이 더해져서 23전 23승의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이 완전히 다른 ..

읽고본느낌 2023.06.28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석 달 전에 읽은 책인데 차일피일하다가 이제야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정리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고 흘려버리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내용을 재확인하는 작업만으로도 책을 두 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의 원제는 '뇌에 관한 7과 1/2의 강의[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이다. 심리학자며 뇌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L. P. Barrett)이 썼다. 구성은 제목처럼 7개의 주 강의와 한 개의 보충 강의로 되어 있다. 200페이지 남짓으로 분량이 작아도 내용은 알찬 책이다. 우선 뇌의 정의가 새로웠다.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이 아니다. 뇌의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

읽고본느낌 2023.06.21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김형석 선생은 1920년생이니 103세가 되신다. 여전히 저술과 강연 등의 활동을 하는 노익장이 대단하시다. 선생은 우리들 대화 자리에서 노년의 본보기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분이시다. 물론 이런 하늘이 내린 혜택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 선생이 행복을 소재로 발표한 글을 모은 책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사소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선생의 글은 평이하고 담백하다. 선생의 성격과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삶의 기본이 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초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에 담겨 있다. '약간 우울한 이야기'라는 글에서 선생은 늙는다는 것은 생활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나이가 들 수록 사회 공간은 없어지고, 활동 영역이 가정 공간으로..

읽고본느낌 2023.06.16

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2014년에서 2020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단편은 처음 읽어보는데 빨치산이었던 부모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는 생소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가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이리라. 장편소설인 과 를 떠나서는 작가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번 단편에서도 '검은 방'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자본주의의 적' 등은 작가의 부모님과 연관된 자전적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단편은 생경해서 전혀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 듯했다. 책의 표제작인 '자본주의의 적'은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한 자폐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먹으며 번성한다. 아예 소비와 ..

읽고본느낌 2023.06.09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역사학자 김영수 선생이 사마천의 삶을 재조명한 책으로 총 세 권 중 첫째 권이다. 제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읽히면서도 고증에 충실한 내용이 탄탄하다. 선생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문헌 속에서만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사마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일생에는 두 번의 변혁기가 있다. 첫 번째는 20세 때부터 시작한 역사 탐방 여행이다. 사마천은 20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역사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1차 여행은 2년 동안 12,000km를 이동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한다(讀萬券書 行萬里路)'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두 번째는 49세 때 이릉의 화로 당하게 된 궁형이다. 사마천은 BC 99년에 흉노족에 투항한 장군인 이릉을 변호했다가 한..

읽고본느낌 2023.06.03

타인의 마음

내가 내 맘을 모르는데 타인의 마음을 어찌 알리요, 책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그러함에도 타인의 마음이 궁금하긴 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의아하게 여기게 되는 경우가 수시로 생긴다. 도무지 이해 못하는 반응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한다. 작은 궁금증이나마 풀 수 있을까 싶어 읽은 책이다. 은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선생이 썼다. 실생활에서 생기는 경험을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을 쉽게 풀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인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입만 열면 남과 비교하는 사람, SNS를 하면서 내 연락에는 답을 안 하는 사람,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비관적인 사람, 한..

읽고본느낌 2023.05.26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일장을 치르면서 조문객들을 통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아버지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아버지에 얽힌 사연이 가벼우면서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어 묵직한 주제인 이데올로기 문제가 깔려 있지만 부담 없이 읽힌다. 신안 여행을 할 때 책을 가져가서 이틀 저녁 동안에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의 전작인 이 부모의 구술을 받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정리한 것이라면, 이번 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결연한 비장미를 풍긴다면, 이 책은 경쾌한 댄스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미소와 함께 가슴 뭉클한 장면도 많다. 자신의 신조였던 사회주의와 평등사상을 삶으로 실천하신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심이 든다. 이념은..

읽고본느낌 2023.05.20

숨결이 바람 될 때

부제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이 책을 쓴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자 예일 의과대학원에 입학해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의사로서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던 중 암이 찾아왔다.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

읽고본느낌 2023.05.14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2021년에 나온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이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바람의 말' '우화의 강' '갈대' 같은 시를 좋아한다. 시인의 부친이 마해송 작가이신데 어렸을 때 작가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커서는 아들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마종기 시인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6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수련의 시절을 거쳐 전문의가 되었다. 평생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했으며 은퇴 뒤에는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왜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에 사연이 자세히 나온다. 의사와 시인으로서 성공한 삶을 사신 유복한 분이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글 곳곳에 묻어 있다. 시의 바탕도 이런 향수나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대표시인 '바람의 말'을 쓰게 된 배경 설명도 ..

읽고본느낌 2023.05.01

어금니 깨물기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인의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이 떠오른다. 시인의 사전에서 단어들이 영롱하게 꽃 피는 것을 감탄하며 바라봤었다. 그 뒤로 을 읽어봤으니 정작 시보다 산문을 더 많이 접한 셈이었다. 시인의 예민한 감성의 촉수가 내 무딘 마음을 간지리는 책들이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책 제목으로 쓰인 '어금니 깨물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 같다. 회복을 갈망해 온 울퉁불퉁한 시간들의 기록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책에는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타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씨가 요란하지 않으면서 따스하게 그려져 있는 글들이다. 책 표지에는 시인 소개가 이렇게 되어 있다. "시인. 수없이 반복해서 지겹기도 했던 일들을 새로운 ..

읽고본느낌 2023.04.24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동물의 왕국'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연계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아프리카 야생의 자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경쟁의 장으로 보인다.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개념도 잘못 받아들이면 자연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주변을 제압하고 최적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 책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해서 신선하다. '적자(適者)'란 강한 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는 것이다. 손 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가운데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다. 온갖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인간만큼 잔인한 종도 없다. 그러나 진실은 반대라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 같다가도 워낙 선입견이 강해선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지은이는 '자기가축화..

읽고본느낌 2023.04.16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기후변화의 현실과 심각성을 확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룹부터 기후변화의 위기가 과장되었으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그룹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이런 사람들 태도는 여섯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경각심, 우려, 신중, 무관심, 회의, 거부 등이다. 기후변화 메시지에 왜 이처럼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지 이해해야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인간 활동으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아무리 쏟아져도,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 벌어져도 많은 사람들은 기후 문제에 무관심하다. 기존의 기후 과학은 사람들을 설득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 논리적인 이 접근법은 설득 대상이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은 자주..

읽고본느낌 2023.04.10

동네에서 만난 새

일본 사람이 쓴 탐조 안내서다. 일본은 이웃 나라여서 살아가는 새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도감을 봐도 서식지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지은이인 이치니치 잇슈는 필명으로 '하루 한 종(一日一種)'이라는 뜻이 재미있다. 는 일상에서 새를 보며 느끼게 되는 궁금증을 풀어준다. 깔끔한 그림과 함께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적당하다. 새를 보는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새들의 동작이나 습성을 관찰하다 보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동네를 거닐다 만나는 새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새들의 노랫소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새들의 지저귐은 구애의 목적 외에도 영역 선언이나 적의 접근을 알리는 경고음도 다양하다. 새소리는 번식기의 지저귐과 평소에 내는 울음소리로 나눈다. 번식..

읽고본느낌 2023.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