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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바닐라

작년에 나온 정한아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술과 바닐라'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는데 이런 젊은 여성 작가의 글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인생의 스산한 면을 드러내어 쓸쓸하다. 특히 일과 육아의 무게에 짓눌린 결혼한 여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잘 그려낸다.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다. 거실에 걸린 화사한 가족사진은 빙산의 드러난 부분일 뿐, 수면 밑의 차가운 진짜 세계를 작가는 가차 없이 재현해 낸다. 일곱 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기진의 마음'이었다. 기진은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둔 유방암 투병을 하는 주부다. 이 세상에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암 환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남편이나 자식, 친구..

읽고본느낌 2022.03.18

인듀어런스

20세기 초반은 극점 탐험의 시대였다. 1911년의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은 유명하다. 둘의 명성에 가려진 또 다른 위대한 탐험가가 있다. 남극 대륙 횡단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영국의 어니스트 셰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이다. 셰클턴은 1909년에 남극점에 도전했다가 식량 부족 때문에 155km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만약 무리하게 전진했다면 스콧처럼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2년 뒤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하자 셰클턴은 목표를 바꾸어 남극 대륙 횡단에 나선다. 27명의 대원과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장도에 오른 것이다. 알렉산더가 쓴 는 이 탐험에 관한 기록이다. 동행한 사진사 헐리가 찍은 사진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며 우리를 현장으로 안내한다..

읽고본느낌 2022.03.08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신화화된 그리스도는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교회 쇼윈도에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지만 역사적 예수, 갈릴리 예수, 나사렛 예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한완상 선생이 한국 교회를 질타하는 목소리다. 교회가 예수를 앞세우지만 정작 예수의 정신은 없다. '믿습니다'의 열정에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의 크리스천이 예수의 삶은 '따름'에 있어서는 자국민의 경멸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믿음과 은총만 강조하다 보니 질문과 성찰은 소홀히 하고 값싼 기복신앙만 난무한다. 저자는 이를 '신앙의 치매'라고까지 표현한다. 선생은 먼저 역사적 예수의 매력을 되찾자고 한다.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살아 있는 예수의 역동성을 외면한다. 구속 드라마 속의 예수는 구속사에서 배우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읽고본느낌 2022.03.04

예수냐 바울이냐

"바울의 기독교 신학 안에 갈릴래아 청년 예수의 정신은 없다." 저자인 문동환 선생이 이 책에서 맺는 결론이다. 책의 '시작하는 말'의 서두 부분은 이렇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바울 신학을 추종해 왔다. 그리고 이것을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며 온 세계에 전파했다. 바울 신학은 예수를 유대 민족이 대망하던 메시아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가 창출한 '생명문화공동체운동'을 곁길로 오도하였다. 그리고 다윗 왕조가 섬기는 일개 민족의 신을 유일신이라며 앞으로 올 메시아 왕국이 온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메시아 왕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자처했다. 어처구니없는 민족주의다." 는 예수와 바울을 비교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힌다. 이 책은 바울이 예수의 정신을 왜곡했다고 보는 ..

읽고본느낌 2022.02.25

도올의 로마서 강해

내가 한때 회심을 하게 된 계기가 '로마서'였다. 수녀원의 조용한 방에서 로마서를 읽으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구절이 나를 찔렀다. -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로마서 1,17). -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로마서 3,21) -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로마서 3,22).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로마서 3,24). -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로..

읽고본느낌 2022.02.22

다읽(15) - 예수는 없다

세 번째 다시 읽는 책이다. 20년 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으면서 직설적이고 시원한 글에 가슴 한 편의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번민만 있을 뿐 한 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 신앙의 정체기에 찾아온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가 나오기 전의 어느 때였다. 이 책의 저자인 오강남 선생의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선생의 인기를 반영하듯 넓은 강의실은 청중으로 가득 찼다. 청중 중에는 선생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연 중에 그 사람들이 단체로 일어나 하나님과 성경을 모독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또, 선생의 친구라면서 조영남 씨가 나와서 자신의 신앙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 자..

읽고본느낌 2022.02.16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손주가 와서 내 방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얘기 중에도 내가 먼저 책 이야기를 꺼낸다. 초등학교 3학년이니 책보다는 다른 데 관심을 둘 나이지만 책상에 놓인 책들을 보고 손주가 먼저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 왔을 때는 마침 마종기 시인의 라는 책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책에 실린 시 한 편을 읽어 주었다. 손주가 반에서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내가 고른 것은 '우화의 강'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설명을 곁들여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주니..

읽고본느낌 2022.02.08

다읽(14) - 회상

얼마 전에 영화 '사일런스'를 5년 만에 다시 감명 깊게 봤다. 이 영화와 함께 원작 소설인 엔도 슈사쿠의 도 종교 분야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본질 및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토록 심도 있게 그린 작품도 드물다.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새롭게 느꼈다. 어쩌면 곁가지일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는 일본인의 잔혹성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과 '사일런스'는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이야기다. 붙잡힌 천주교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방법이 너무 악랄하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는 일본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서양인 신부는 죽이는 게 아니라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줘서 끝내 배교하게 만든다. 후미에를 한 페레이라와 로드리게스는 실존 인물이다. 우리나라..

읽고본느낌 2022.02.06

사랑 아니면 두려움

"사람에게는 중요한 이틀이 있는데, 첫 번째 하루는 모든 이에게 있지만 두 번째 하루는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첫 번째 하루는 '태어난 날'이고, 두 번째 하루는 '그 하루의 이유'를 깨친 날이랍니다." 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현주 선생이 쓴 이 책은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수행 안내서다.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마음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로 마음공부/수행에 들어가는 안내다. 2부 '동굴문답'은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통해 참에 접근해 가는 길을 보여준다. 3부 '꿈으로 나를 닦다'는 선생이 침묵 피정 중에 찾아왔던 꿈들을 소개한다. 선생은 마음공부를 '두텁고 무거운 무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마음공부에는..

읽고본느낌 2022.02.02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부제가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으로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상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에 등장한 대표 사상에는 사회의 진보를 위한 사색과 고뇌가 담겨 있다. 철학을 전공한 안광복 작가가 썼다. 은 정치, 철학 예술, 국가, 경제, 사회의 다섯 분야로 나누어 32가지 사상을 소개한다. - 정치 공화주의, 계몽주의, 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아나키즘, 포퓰리즘 - 철학 예술 낭만주의, 니힐리즘, 실존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 국가 제국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프런티어 정신, 대동아 공영권, 마오이즘, 주체사상 - 경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개발 독재, 신유교 윤리, 신자유주의, 기업가 정신 - 사회 오리엔탈리즘,..

읽고본느낌 2022.01.27

국수

김숨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국수'를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소설의 분위기는 무겁고 납덩이가 얹힌 듯 가슴을 짓누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 아니다. 하물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심정은 어떠할까. 표제작인 '국수'는 죽음을 앞둔 새어머니에게 따끈한 국수를 대접하기 위해 조리를 하면서 새어머니와 마음으로 대화하고 화해하는 소설이다.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난 여인이 새어머니로 들어오는데 첫날 새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국수를 끓여준다. 새어머니를 차갑게 대한 주인공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모성이 품고 지켜야 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공감한다. 냉혹한 현실을 그린 작가의 소설에서 그나마 이 소설이 따스한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한다. 제일 흥미롭게 읽은 소설은 '아..

읽고본느낌 2022.01.22

아인슈타인의 그림자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의 전기(傳記)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데 음양으로 헌신했지만 그녀에게는 빛이 아니라 도리어 우울하고 음습한 그늘이 되었다. 이 책의 부제가 '밀레바 마리치의 비극적 삶'이다.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공업전문학교에서 물리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 둘은 1903년에 결혼했고,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특수상대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때 밀레바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작품은 완성은커녕 시작도 되지 못했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뒤에 고백했다. 실제로 수학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보다 밀레바가 더 뛰어났다고 한다. 밀레바는 훌륭한 품성에다 지적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이었..

읽고본느낌 2022.01.10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20세기 물리학과 수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을 중심으로 과학과 철학의 여러 쟁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아인슈타인과 괴델은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에서 같이 출퇴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서로 상이한 성격의 두 천재가 함께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추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짐 홀트(Jim Holt)가 썼다. 에는 과학과 수학, 철학의 다양한 분야가 논의되고 있다. 시공간과 우주, 상대성과 양자론, 수학계의 여러 쟁점들, 인류의 미래와 인간의 삶 등 다양하다. 다만 지은이가 20년 간 쓴 글 모음이라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넉넉하다. 책에는 여러 수학자와 수학적 논쟁이 나오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리에서 사용하는 도구적 수학..

읽고본느낌 2022.01.04

에브리맨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한 줄이다. 작가가 인간의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병과 죽음을 자연의 순리라 여기는 동양의 사고방식과 다르다. 그것은 배척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현대 의료가 병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은 미국 작가인 필립 로스(Philip Roth)가 쓴 장편소설이다. 에브리맨(Everyman)은 '모든 사람', 또는 '보통 사람'이란 뜻이다. 소설 주인공은 이름 대신 '그'라는 호칭으로 쓰인다. '그'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그'라는 한 인간이 늙고 병들어서 죽는 이야기다. 중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삽입되지만 그것 또한 병이나 죽음과 연관..

읽고본느낌 2021.12.26

죽음을 배우는 시간

부제가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다. 지은이는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근무하는 김현아 선생이다. 의료 현장에서 여러 죽음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병원의 '죽음 비지니스'에 속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사실 죽음은 개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은 병과 죽음에서 예외인 듯 행동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사람들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화와 죽음을 병원의 일로 만들고,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거나 소비 생활로 삶을 즐기도록 선동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노화와 죽음은 개인을 ..

읽고본느낌 2021.12.18

육체 탐구 생활

김현진 작가의 산문집으로 제목에 낚이면 안 된다. 아니 낚여서 도리어 더 큰 만족을 느낄지 모른다. 오랜만에 시원하고 상쾌한 글을 읽었다. 답답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작가의 의지가 놀랍다. 본인 추스리기도 힘들 텐데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연대와 정의감이 불꽃처럼 뜨겁다. 또한 글에서 반짝이는 위트와 유머는 작가 내면의 깊이를 말해준다. 작가는 몸과 노동의 가치를 삶으로 실천한다. 2년 가까운 녹즙 배달원과 카페 아르바이트 생활이 글의 소재가 되고 있다. 방 안에서 머리만 굴려서 쓰는 글이 아니라, 육체로 부딪쳐 나간 싱싱한 이야기다. 화끈한 행동파의 살아 있는 글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비슷한 삐딱이로서 글 내용에 공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스트라이크 존을..

읽고본느낌 2021.12.03

작별 일기

노약한 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신 뒤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3년(2016~2018)의 기록이다.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가 부제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면서 구술생애사 작가면서 딸인 최현숙씨가 썼다. 에는 부모가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일반적이며/특수한 과정이 애틋하면서 또한 담담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점이 작가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그리고 작가를 포함한 남매들의 지극한 효도와 우애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집 남매들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정성은 각별하다. 지은이는 2008년부터 가난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맡아왔다. 그 경험이 본인 부모를 케어하는 과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

읽고본느낌 2021.11.19

다읽(13) - 의식 혁명

20여 년 전에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인간의 개인과 집단 의식의 중요성을 과학적 근거를 들며 갈파한다. 이 책에서 특이한 사항이 운동역학적 근육 테스트다. 수평으로 내민 팔에 힘을 가할 때 근육이 저항하는 정도로 인간계의 모든 현상에 대한 진위 구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이 책의 원제는 다. 'Force'는 지각할 수 있는 외적인 힘이고, 'Power'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력이다. 인간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는 엄청날 정도로 강력한 끌개의 에너지 패턴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의..

읽고본느낌 2021.11.02

푸르른 틈새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로 1996년에 발표한 작가의 데뷔작이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작가의 10대, 20대, 30대의 삶이 교차하며 그려진다. 어느 작가나 첫 작품은 이야기 전개나 구성이 미흡할지라도 풋풋한 느낌이 들어 좋다. 더구나 성장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작가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젊은 시절로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서 작가는 손미옥으로 나온다. 서른한 살의 미옥은 눅눅한 단칸 지하방에서 이사를 가려고 한다. 이사는 한 삶의 종착이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이사를 가기 일주일 전부터 짐을 정리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소녀와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가 교대로 나오면서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으며 커간다...

읽고본느낌 2021.10.29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모르는 영역' 등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 작가의 글을 읽으면 사람살이의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의 단편들도 모두 그런 범주에 들어 있다. 작가는 아프지만 세상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가련하고 쓸쓸한 존재들이다. 누구는 아빠 찬스로 50억을 받고 떵떵거리는데, 다른 누구는 노동 현장에서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이 세상은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그런 점이 이 단편집의 제목에 '아직 멀었다'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손톱'이라는 소설에 '아직 멀었다'라는 말이 스쳐가듯 나온다. 소희는 엄마와 언니가 집을 나가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처녀다. 손톱을 다쳐 빠지게 되었는데도 ..

읽고본느낌 2021.10.20

백세 일기

모임에 나가면 김형석 선생님이 자주 화제가 된다. 자기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자처하는 이도 있다. 선생님은 192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102살이다. 그런데도 한 해에 100회가 넘는 강연을 다니시고, 꾸준히 책도 내신다. 가 작년에 나왔으니 101살에 쓰신 책이다. 예로부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아무리 장수시대라지만 아흔을 넘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백세를 채우고도 여전히 정정하다니 부럽다 못해 질투가 생긴다. 평소에 몸 관리를 잘한다고 되는 일일까. 아무튼 대단한 복을 타고나신 분이다. 선생님은 쉼없는 공부와 일을 강조하신다. 삶의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공부와 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에게 노년기는 없다. 65세..

읽고본느낌 2021.10.12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

읽고본느낌 2021.10.09

다읽(12) -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수많은 세대의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받들어 왔지만, 그 예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적다. 더구나 예수가 뜻한 바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더욱 적다. 예수의 말은 별의별 뜻으로 왜곡되어 아무 뜻도 없게까지 되었다. 예수의 이름은 범죄를 정당화하고 어린이들에게 겁을 주며 필부들에게 어리석은 영웅심을 불어넣는 데에 이용, 아니 악용되어 왔다. 예수는 자기가 뜻한 것보다 뜻하지 아니한 것으로 더 자주 찬양과 숭배를 받아 왔다. 무엇보다 큰 역설은 예수가 세상에 살면서 가장 강력히 반대하던 바에 속하는 바로 그런 것들이 종종 되살아나서는 온 세상에 널리 설교,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는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기독교 교리라는 안개가 예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보..

읽고본느낌 2021.09.24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오랜만에 읽는 한수산 작가의 글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지만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에서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품이 떠올랐다. 벌써 40년 전으로 서커스단원들의 애환을 다룬 가 제일 기억난다. 은 이제 70대가 된 작가가 과거를 향해가는 추억 여행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들에 대한 추억, 잊지 못하는 장소 등의 이야기가 애조 띤 문장으로 펼쳐진다. 시간 속에서 덧없이 흘러가고 소멸하는 인간의 삶이지만, 돌아보면 노을이 아름다웠던 아침과 저녁도 있었다. 삶의 신산을 겪은 사람의 눈에 비친 노을은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한수산 작가 하면 먼저 '한수산 필화사건'이 생각난다. 1981년에 신문 연재소설에 쓰인 구절을 문제 삼아 작가와 관련자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사건이다. 그 일로 ..

읽고본느낌 2021.09.01

무심하게 산다

제목에 끌려 고른 책이다. 가쿠타 미쓰요(角田光代)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로, 제목을 봤을 때는 작가가 노년이 아닐까 싶었는데 1967생이다. 책에 실린 글은 대개 40대 중후반에 썼다. 무심하게 산다고 하기에는 젊은 나이다. 작가 자신의 몸에 대한 관찰이 주된 내용이다. 나이을 먹어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일본 여성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 여자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의 원제가 인데 '나란 사람을 담는 그릇' 쯤으로 해석되는가 보다. 그릇은 몸이지만 그 내용물은 성질이나 성격이어서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는, 또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읽고본느낌 2021.08.23

찌질한 위인전

인간에게는 누구나 찌질한 면이 있다. 소위 위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도 예외가 아니다. 보통의 위인전은 찌질한 면은 드러내지 않고 비범한 능력이나 업적만 자랑한다. 지나친 미화에 실상 왜곡이다. 어릴 때는 누구나 위인전을 보며 자란다. 훌륭한 사람을 본받으라지만 지금 돌아보면 위인전이 과연 아이들 인성에 선한 작용을 하는지 의문이 든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만 명을 죽인 놈도 위인에 들어가 있다. 은 그런 위인전에 딴지를 건다. 함현식 기자가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을 모았다. 책에는 아홉 명의 인물이 나온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듯, 그들 역시 완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적이고 오히려 빛나 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찌질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맞서 싸우면서 역사에 ..

읽고본느낌 2021.08.19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작년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빨강머리 앤을 만난 뒤 소녀 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오래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빨강머리 앤을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은 앤을 사랑하는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다. 책을 통해 앤이 주는 희망과 따스한 위로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나 역시 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책에는 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안녕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예쁜 장면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초록 지붕 집에 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이 책은 앤이 초록 지붕 집에 살기 전의 더 어릴 때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래서 인물의 이름이나 내용에서 모르는 것이 많았다. 어려도 앤의 천진한 낙천성이나 긍정 마인드는 마찬가지였다. 앤한테서는 어디서 그런 명랑함..

읽고본느낌 2021.08.07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 제목에 나오는 '좋은 국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봤을 때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국가'는 '선진국' '강국' '선도 국가'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나는 '좋은 국가'를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에 바탕을 둔 나라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구촌에서 찾는다면 부탄이 제일 비슷하지 않을까.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라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말았다. 는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스톡홀름 싱크 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연혁 선생이 쓴 책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던 여러 나라 -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 독..

읽고본느낌 2021.07.23

제법 안온한 날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이 책에서 건진 한 문장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글쓴이는 수많은 죽음과 불행을 지켜보며 인간은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이러하니까 타인이 불행하다고 재단하는 것은 나의 오만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은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인 남궁인 님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을 감성적인 필체로 보여주는 책이다.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연들이 많다. 저자는 살벌한 응급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여리고 따스한 분인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곁에서 접하며 그는 삶과 죽음에..

읽고본느낌 2021.07.11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선생이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에서 한 철학 강의를 묶은 책이다. 우리는 이때껏 남의 사상을 빌려서 살아왔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근대에 들어서는 서양의 생각을 수입해 종속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래서는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생각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종속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과제를 준다. 건명원은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활동성[明]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苑]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감행하고자 세워진[建] 인문-과학-예술 혁..

읽고본느낌 20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