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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의학사

인류가 지금과 같은 의학 지식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해악을 끼친 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현대 의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겠다. 는 '무서운 병', '무서운 사람들', '무서운 의사', '무서운 의료'의 네 파트로 되어 있으며 짧은 에피소드로 소개하는 이재담 작가가 쓴 서양 의학사다. 책에 소개된 몇 개를 골라본다. # 1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으로 유명한 왕이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아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왕은 의..

읽고본느낌 2021.06.28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김범석 선생이 쓴 책이다. 암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만난 여러 죽음과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게 한다. 부제가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Hodie Mihi, Cras Tibi" - 로마 시대 때 공동묘지 입구에 적혀 있었다는 글귀인데,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갈래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끝은 똑같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이 내일 나의 죽음이 된다. 타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며, 그래서 너무나 절절이 가슴을 울린다. 여러 사례 중에서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은 어느 할머니의..

읽고본느낌 2021.06.24

다읽(11) - 월든

이번에 수문출판사에서 안정효 선생의 번역본이 나왔다. 새로운 번역은 어떤 맛일까 싶어 책을 사서 읽었다. 책 제목은 소로우의 원제 그대로 써서 이다. 을 다시 읽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 책장에 있는 책 중에서 다섯 권을 남기라면 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했으며 지금도 역시 귀한 책이다. 내 내면의 북소리가 울릴 때 그 울림을 외면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책이 이다. 그리고 이 책에 스며 있는 '월든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월든 정신'은 소로우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 잘 나와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까닭은 인생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살아가고, 삶의 본질적인 면목들만 접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내가..

읽고본느낌 2021.06.19

<월든> 두 권이 오다

주문한 두 권이 왔다. 한 권은 은행나무에서 펴낸 책으로 50만 부 특별판이다. 1993년 초판이 나온 이래 그동안 50만 부가 출판되었다니 대단한 기록이다. 기념이 될까 해서 소장본으로 샀지만 근간에 만나게 될 책을 좋아하는 후배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다른 한 권은 안정효 선생이 새로 번역한 이다. 수문출판사에서 이번에 처음 나온 책이다. 새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 보고 싶어 구입했다. 은 내 사추기(思秋期) 때 살아갈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이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아련히 가슴이 저며온다. 한 권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이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은 소로우의 을 만났기 때문이다. 탓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정효 선생이 번역한 을 읽고 있다. 정말..

사진속일상 2021.06.09

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선생의 철학 산문집이다. 철학이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일진대, 제목처럼 이 책의 중심 주제는 '경계적 삶'이다.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은 탓에 산만하긴 하지만 선생이 말하려는 바는 명료하게 읽힌다. '경계, 비밀스러운 탄성'이라는 서문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계에 있을 때만 오롯이 '나'다. 경계에 서지 않는 한, 한쪽의 수호자일 뿐이다. 정해진 틀을 지키는 문지기 개다. 경계에 서야 비로소 변화와 함께 할 수 있다. 변화는 경계의 연속적 중첩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眞我)'는 상相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다. 이러면 부처가 되는 필요조건은 일단 채워진다. 동네 부처라도 될 요량이면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어야 한다.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지..

읽고본느낌 2021.06.06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작가가 북한에서의 시인 백석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본명인 백기행으로 나온다. 해방 뒤 북한에 남은 백석은 전쟁을 거치고 숙청의 파도에서 살아남아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일곱 해'란 백석이 동시를 쓰기 시작한 1956년부터 삼수에 있는 관평협동조합으로 추방되어 완전히 절필하게 된 1962년까지를 말한다. 백석의 북한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므로 은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져 있다. 전쟁 뒤 북쪽은 김일성의 유일사상만 통하던 통제된 사회였다. 문학도 혁명의 도구일 뿐이어서 백석 같이 감성이 풍부한 순수시를 썼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는 세상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백석은 옛 시를 잊고 혁명과 증오를 부추기는 동시를 써야 했다. 백석이 그때 쓴 동시를 보면 ..

읽고본느낌 2021.06.01

빈곤을 보는 눈

며칠 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최근 3년간의 국가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OECD 37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35위였다. 우리 밑으로는 그리스와 터키만 있었다.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이었다. 우리나라의 빈곤율 수치도 행복지수와 마찬가지로 하위권이다. 빈곤율은 약 15% 정도 되는데 우리 아래로는 미국과 일본 정도가 있다. 특히 노인의 빈곤율은 40%가 넘어서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경제 규모만 그렇다 뿐이지 삶의 질은 형편 없다.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은 힘들게 살아간다. 자칭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이 정권에서도 빈부격차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읽고본느낌 2021.05.22

정약용의 여인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한 여인의 시중을 받았고 딸까지 낳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여인의 이름은 진솔이고 딸은 홍임이다. 다산이 18년 간의 유배를 마치고 마재로 돌아올 때 진솔과 홍임도 동행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다산에게 소실이 있었다고 해서 그분의 학문이나 인격에 흠이 되지는 않을 텐데, 후학들이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쉬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흥미를 느끼던 차에 찾아본 책이 최문희 작가의 소설 이다. 소설에는 다산의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부인인 혜완(惠婉), 그리고 유배지에서 만난 진솔과 홍임의 이야기가 얽혀서 나온다. 혜완은 명문가의 따님으로 다산보다 한 살 위였다. 혜완은 선비집 안방마님으로서의 위엄..

읽고본느낌 2021.05.09

다읽(10) - 좀머씨 이야기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좀머씨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무작정 걸어야 하는 좀머씨에 연민을 느끼면서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좀머씨의 외침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만큼 절박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 내 마음 상태가 좀머씨와 닮은 바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번에 다시 읽는 는 좀머씨 개인의 불행보다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서 더 비중 있게 읽힌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까, 따스하게 읽힌 이야기였다. 특히 화자와 관련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재미있고 공감이 되었다. 두 개의 에피소드는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카롤리나와, 미스 풍켈이라는 피아노 선생님에 관계된 일화다. 둘 다 어떤 상실감과 관련되어 있다. 잔뜩 기대했던 카롤리나와의 만남이 깨진 허전함, 그..

읽고본느낌 2021.05.05

내가 사랑한 지구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면서 아름다운 이론이라고 감탄한 것 중 하나가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은 지구 표면은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나 화산 등의 자연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잘 들어맞아도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한 이론이다. 이제 판구조론을 떠난 지질학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 는 판구조론이 등장하는 과정을 19세기 지질학의 초창기에서 시작하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테노, 허턴, 스미스, 라이엘 등의 초기 지질학자들의 노력이 쌓여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낳고, 치열한 논쟁과 검명을 거치며 판구조론이라는 이론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지질학자인 최덕근 선생이 썼다. 일반인이..

읽고본느낌 2021.04.29

문버드

몸무게가 100g 남짓하지만 평생 523,000km를 넘게 날았다.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다시 반쯤 돌아오는 거리다. 그래서 별명이 '문버드(Moon Bird)다. 이 새는 붉은가슴도요의 아종인 루파로 발에 찬 플랙에 적힌 이름은 'B95'다. B95는 산꼭대기만큼 높은 상공에서 먼 옛날부터 쓰였던 하늘길을 날아 번식지를 오간다. 매연 2월이면 B95는 남아메리카의 끝 파타고니아에서 캐나다 북극권으로 날아가 번식한 뒤 늦여름에 다시 남쪽으로 돌아온다. 는 20년을 살면서 50만 km를 넘게 비행한 B95라는 한 작은 새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생명이 어쩌면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절로 경외감이 인다. 얘들은 무엇 때문에 매년 지구의 끝에서 끝까지 긴 여행을 할까? ..

읽고본느낌 2021.04.20

풍운아 채현국

사나이의 배짱과 스케일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분이 채현국 선생이다. 오척단구 거한, 당대의 기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가두의 철학자,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 파격의 인간,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 채현국 선생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 마디로 부귀를 초개 같이 여기고 거침없이 인생을 산 자유인이 채현국 선생이 아닌가 싶다. 이 책 은 2014년에 김주완 기자가 선생과 나눈 대화록이다. 선생의 말씀은 시원시원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김형석 교수를 멘토로 여기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이런 삐딱한 분에 끌린다. 선생의 언행은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킨다. 선생은 젊었을 때 여러 병으로 시달렸던 것 같다..

읽고본느낌 2021.04.16

새의 노래, 새의 눈물

새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새에 관한 책도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다. 이번에 본 책은 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연구관으로 일하는 박진영 선생이 썼다.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했고, 그래서 대학도 새를 공부할 수 있는 생물학과로 진학했다는 지은이는 평생을 새와 함께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길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지은이 같은 분이 부럽다. 책에는 지은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새를 찾아다니며 경험한 얘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실제 탐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갯벌에서 도요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만조 두세 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바닷물에 밀려서 점차 육지 쪽으로 다가오는 도요..

읽고본느낌 2021.04.11

다산, 행복의 기술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정사의 중심에 있었으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18년간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형제들도 죽거나 유배를 가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그야말로 폐족이 되었다. 이런 고난 속에서 다산은 자신의 내면적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만의 행복을 찾아나갔다. 은 다산의 삶과 고난을 따라가며 어떻게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다산은 갑작스러운 권력 상실의 트라우마, 배신감, 모욕감, 유배지에서의 고독, 부자유의 고통, 경제적 고통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남들 같으면 포기하고 좌절했을지 모르나 다산은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으며 행복으로 가꾸어 나갔다. 인간..

읽고본느낌 2021.04.08

다읽(9) -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 첫부분은 이같은 간디의 말로 시작한다. 에서 이 구절을 읽고 당신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H 스님의 무소유 논란이 일었고, 인기 스타였던 스님은 한 순간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수도자의 세속적인 소유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무소유란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대한 애착이 무(無)라는 얘기다." 공공연히 이런 생각을 밝히는 수도자도 있다. 잘못하면 ..

읽고본느낌 2021.03.25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프랑스의 조류학자인 뒤부아(P. J. Dubois)와 철학자인 루소(E. Rousseau)가 함께 썼다. 새는 1억 5천만 년 전에 공룡에서 생겨난 아주 오래된 생명체다. 저자들은 새를 '작은 철학자'라고 부른다. 가볍고 조용히 살아가는 새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철학을 발견한 것이다. 은 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서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오리를 비롯해 22종의 새가 등장한다. 사랑, 번식, 싸움, 절제, 열정 등 각각이 가진 특징이 재미있고 묘사되어 있다. 오리의 털갈이 이클립스(eclipse), 암탉이 모래 목욕을 할 때의 행복, 바위종다리 부부의 유별난 바람기, 새장 밖을 떠날 줄 모르는 카나리아, 거위의 정신적 젖떼기, 도요새의 신비한..

읽고본느낌 2021.03.14

새를 기다리는 사람

새를 사랑하는 김재환 화가의 이태 동안의 탐조 일기다. 책은 사진 대신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되어 있다. 같은 대상이지만 사진보다 그림은 훨씬 더 감성적이고 따스하다. 그래선지 새와 자연을 아끼는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올해 들어 경안천에서 황새를 보면서부터 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책 제목처럼 새를 보는 데는 무엇보다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종일 같은 장소를 지키기도 한다. 마치 낚시를 하듯 느긋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새를 관찰하는 데도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은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책이다. 되도록이면 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

읽고본느낌 2021.03.08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아 떠나는 과학 여행'이라는 부제대로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계의 현황과 전망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쓴 제프리 베넷은 생물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의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철저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여러 논쟁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평이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쓰여 있다. 태양계에서는 미생물 형태의 생명체가 곧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후보는 화성이고, 그다음으로 목성이나 토성의 위성에서 우리는 지구 밖 생명체를 볼 지 모른다. 지구에서도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미생물이 있으며, 지구의 첫 생명체도 심해 분화구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생명체를 찾는다면 ..

읽고본느낌 2021.02.19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최필조 선생의 사진 에세이로 부제가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이다. 124편의 작품이 우리 이웃의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진과 글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감동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뒷모습', '손', '밤골', '길 위에서' 등 4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작가는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지만 사진 한 장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겨 있을지를 생각한다. 다른 동네의 낯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친해지면서 카메라에 담기까지 발품은 또 얼마나 될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읽고본느낌 2021.02.11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꽃을 주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두 친구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공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같지 않으니 같은 꽃이라도 보는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을 쓴 사람은 이명희와 정영란 선생이다. 한 분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다른 분은 약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공통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함께 책을 만들면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분이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 만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다. 거기에 애정이 더해진다면 친구면서 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두 분에게 꽃과 나무는 그러한 존재일 것 같다. 부제가 ..

읽고본느낌 2021.02.09

나라 없는 나라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회로 소설은 시작한다. 둘의 속은 달라도 상대가 가지고 있는 명분이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에서부터 전봉준이 체포되던 마지막까지를 다룬다. 이광재 작가가 썼고, 혼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19세기 후반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불만과 요구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동시에 외세는 호시탐탐 조선반도를 노리고 있었다. 나라의 중심을 잡을 힘 있는 세력은 없었다. 도리어 일본이나 청나라에 의존함으로써 한 줌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전봉준과 대원군이 암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1894년 3월에 고부 백산에서 1차로 봉기할 때 동학농민군은 네 가지 강령을 만들었다. ..

읽고본느낌 2021.01.29

우주를 만지다

물리학자인 권재술 선생의 과학 에세이다. 통상의 과학책과 달리 물리학과 인문학의 따스한 만남을 시도해서 특이하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글의 갈피마다 직접 쓴 시가 실려 있어 딱딱한 과학 내용을 적절히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인 권 선생님은 대학 선배시다. 학부 때 조교이시던 선배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따스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후에는 대학 교수가 되시고 총장까지 하셨다. 대개 이과생은 세상을 보는 눈이 좁고 논리가 거친데 선배는 달랐다. 글을 잘 쓰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는 처음 만났다. 다만 당구 실력은 나와 비슷해서 재작년인가에는 하수끼리 같이 시합을 한 적도 있었다. 책에서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고 아차,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교단에서 ..

읽고본느낌 2021.01.24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20세기 말 미국의 대기업 엔론이 '등수 매겨 내쫓기'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직원의 성과를 경쟁의 잣대로 평가하여 상위 20%에게 보너스를 몽땅 몰아주고 하위 10%는 해고했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20/70/10 규칙'이 적용되는 사회를 '엔론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실적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문장에서는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의 사회'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등으로 표현한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는 신자유주의 가치의 지배를 받는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한..

읽고본느낌 2021.01.14

26일 동안의 광복

1945년 8월 15일부터 미군이 조선총독부에서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하는 9월 9일까지 26일 동안을 기록한 책이다. 부제가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한겨레신문의 길윤형 기자가 썼다. 1부는 8월 15일 광복 당일의 숨 가빴던 시간을 세 세력(여운형, 총독부, 송진우)의 입장에서 복원한다. 혼란한 때에 발빠르게 나선 쪽은 여운형이었다. 총독부는 치안 유지와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명망 있는 인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운형은 총독부의 방침에 협조하면서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든다. 광복을 전후한 시기의 중심인물은 여운형이었다. 그가 만든 건준은 안재홍 주도로 끝까지 좌우합작을 시도한다. 그러나 우익을 대표하는 송진우는 좌익에 이용당할 것을 두려워해 ..

읽고본느낌 2021.01.09

문도선행록

김미루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과 도전 정신을 존경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사람되기를 배우기(Learning to be human)"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 인간의 길을 물으며 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라는 책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은 2012년부터 3년 동안 사하라 사막, 아라비아 사막, 타르 사막, 고비 사막을 헤매며 문명이 내팽개친 정신을 찾아 나선 고독한 모험의 발자취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누드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가는 여기서는 사막의 낙타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 및 상생의 길을 보여준다. 도시의 버려진 풍경이나 돼지, 애벌레를 소재로 한 작품과는 달리 낙타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손에 때 묻지 않은 원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마치 에덴동..

읽고본느낌 2021.01.08

부동산 약탈 국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화도 났다. 자극적인 책 제목대로 이 책의 지은이인 강준만 선생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규정한다. 집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더 악랄한 약탈이다. 부제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다. 집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약탈이 '코리안 드림'이 된 나라에서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계급 분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말했다. "우리 현 사회체제 속에 내재한 낭비 중에서도 가장 엄청난 낭비는 바로 정신적 능력의 낭비다." 불..

읽고본느낌 2020.12.30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문명과 야만의 충돌과 이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에 대해 썼다고 말했다. 소설의 무대는 대륙의 넓은 땅인데 동서로 흐르는 나하(奈河)를 경계로 북쪽의 초(草)와 남쪽의 단(旦) 두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초는 유목민족이고 단은 농경민족인데, 초가 단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두 나라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작가가 지어낸 것이다. 역사소설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때도 역사 기록 이전의 아득한 옛날이다. 사람과 나라의 흥망성쇠와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말이다. 야백(夜白)과 토하(吐霞)라는 두 말인데 전쟁터를 누비며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결국에는 야생 상태의 말의 길을 찾아간다. 야백이 스스로 이빨을 빼서 재갈을 벗는 장면은..

읽고본느낌 2020.12.22

사진 직설

사진에 젬병이지만 관심은 많다.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삼고 일가견을 이룬 사람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물론 직접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최건수 사진 평론가가 풀어놓는 사진 세상 이야기다. 따분한 사진 이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진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사진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직설(直說)이 따끔하다. 이 책 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예술 사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다. 나와는 관계가 없지만 사진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읽은 효과는 있다.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사진은 사물과 나와의 대화다. 선생은 사진을 배우려는 한 스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스님, 찍지 말고 관조(觀照)하세요. 그러면 보여요. 스님들이 왜 면벽을..

읽고본느낌 2020.12.16

철도원 삼대

삼대로 이어진 철도원의 삶을 그린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이 철도원 삼대이고, 그 아랫대인 굴뚝 농성을 하는 이진오 이야기가 현재 시제로 교차한다. 실제로는 사대에 걸친 노동자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는 노동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황석영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는 이진오의 농성 투쟁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작가의 현란한 글솜씨에 빨려 들어간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특히 주안댁과 신금이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안방에서 듣는 민담 같은 내용이라 정감이 간다. 이 소설..

읽고본느낌 2020.12.11

먼 바다

공지영 작가의 장편소설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여교수인 미호는 SNS를 통해 연락이 닿은 요셉을 미국 여행길에 뉴욕에서 만난다. 40년 전 그들은 여고생과 신학생으로 성당에서 만난 첫사랑이었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우여곡절을 겪으며 둘은 헤어진다. 그건 오해였을 거야, 라는 아쉬움과 함께 첫사랑은 오래 기억된다. 미호가 첫사랑을 만나려는 것은 가슴 속 응어리를 풀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지 모른다. 을 읽으면서 누구나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아픔도 있겠지만 추억하는 첫사랑은 아련하면서 달콤하다. 그러나 첫사랑과의 재회가 꼭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손에 들고 무수히 망설이다가 결국은 포기했던 적이 있다. 만약 지금 다시 기회가 주..

읽고본느낌 202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