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 32

친구 따라 안면도에 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대로 비행기를 좋아하는 친구 따라 무인항공기 세미나가 열린 태안에 갔다. 이틀 동안 무인항공기 시연과 강연이 이어진 일정이었다. 그런데 전날 화분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온전히 걷기가 힘든 상태였지만, 공식적인 참가 신청이 되어 있어서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세미나가 끝난 뒤 하루를 더 안면도에서 놀다가 올라오기로 했는데 결국 그 계획도 틀어졌다. 첫째 날은 한서대학교 태안비행장에서 무인항공기 대회가 열렸다. 무인항공기는 UAV(Unmanned Aerial Vehicle)이라 불리는데 조종사 없이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대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말한다. 미래의 전쟁은 어쩔 수 없이 UAV가 대세가 될 것이다. 대학에서 여덟 팀이 나와서 경연을 벌였다. 친구도 무인항공기 ..

사진속일상 2013.03.31

논어[23]

자장이 벼슬 구하는 길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점은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그러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되 갈피를 못 잡겠거든 아예 해볼 생각을 마라. 그러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빈틈이 적고, 행동에 거침새가 적으면 벼슬이란 저절로 굴러들게 마련이다." 子張 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行寡悔 祿在其中矣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르게 됩니까?" 선생은 대답하기를 "곧은 사람을 골라 굽은 자 위에 두면 백성들이 따르고, 굽은 자를 골라 곧은 사람 위에 두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조諸枉 則民服 擧枉조諸直 則民不服 - 爲政 13 벼슬을 구하려는 제자와, 사람을 쓰려는 애공의 서..

삶의나침반 2013.03.28

분홍색 연기

지난 13일에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 전임 교황이 생존한 상태에서 사임한 것이 특이했는데 바티칸 내부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의 얘기라 어차피 추측성 기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새로 뽑힌 교황의 본명이 '프란치스코 1세'로 명명된 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프란치스코(1181~1226)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중세 시대의 성인이다. 철저한 무소유 정신으로 예수의 정신에 가장 일치하게 살았던 분이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와 생명의 영성은 가톨릭의 빛나는 자산 중 하나다. 가톨릭 신자는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라 자신의 본명을 짓는다. 교황도 마찬가지다.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옛 이름을 버리고 존경하는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본명을 새로 짓는다..

길위의단상 2013.03.27

함석헌 읽기(7) -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7권에 있는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는 1970년의 창간호와 2호에 연속으로 실렸던 글이다. 태어나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선생의 종교적, 사상적 변화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걸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운명적으로 걸어온 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에는 '인생은 갈대'라는 제목으로 1973년도에 썼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어림, 젊음, 일함, 찾음, 깨달음, 날아올라감의 여섯 토막으로 나누고 이를 갈대에 비유해서 읊은 시가 나온다. 선생이 50세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인생의 후반부를 찾음, 깨달음, 날아올라감의 단계로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선생의 종교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어림 인생은 연한 갈대 연한 순 날카론 맘 쓴 바다 노한 물결..

읽고본느낌 2013.03.26

광주 관산

넓은고을 광주에서 이태째 살고 있다. 처음 왔을 때 광주에 소재한 산을 모두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오늘은 열두 번째로 관산을 찾아간다. 관산(冠山, 555m)은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데 무갑산과 앵자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줄기에 있는 산이다. 생긴 모양이 갓을 닮아서 관산이라 불린다 한다. 이 산을 경계로 무갑리와 우산리가 나누어진다. 대개 무갑산과 관산을 연결하여 산행한다. 무갑리계곡을 타고 올라 웃고개에서 능선과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능선만 타고 가면 된다. 완만한 굴곡이 계속 이어지는 길이다. 출발 세 시간만에 관산 정상에 닿았다. 별로 높지 않은 산인데 은근히 힘들었다. 처음에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빨리 헤어나려고 서두른 게 오버페이스가 되었던 것 같다. 등산은 마라톤..

사진속일상 2013.03.25

복숭아나무가 딸린 텃밭을 얻다

집 옆에 복숭아 과수원 농장이 있다. 여기서 복숭아나무와 텃밭을 분양한다. 올해는 텃밭 농사를 지어보기로 하고 복숭아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딸린 텃밭을 빌렸다. 비닐이 덮여 있는 곳이 채소류를 가꿀 내 땅이다. 여주 밤골 생활 이래 소규모지만 7년 만에 다시 손에 흙을 묻혀본다. 그때는 300평 되는 밭에 제대로 농사를 지었었다. 이제는 큰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는 방향으로 출입하려 한다. 덤으로 가을이면 복숭아도 생긴다. 이곳의 좋은 점은 집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근교 생활이 누리는 장점이다. 농장에 첫발을 들였을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이 팻말이었다. '똥 누는 곳'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화장실, 변소, 해우소 등은 다 가리고 꾸미는 말이 아니던가. 왠지 ..

사진속일상 2013.03.24

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손택수

자기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딱딱하게 이어지던 대화 끝에 여자후배의 입술 사이로 무심코 튀어나온 자기, 어 여자후배는 잠시 당황하다 들고 온 보험서류를 내밀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한순간 잔뜩 긴장하고 듣던 나를 맥없이 무장해제 시켜버린 자기,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무 때고 꽃잎에 이슬 매달리듯 혀끝에 자기라는 말이 촉촉이 매달려 있는가 주책이지 뭐야, 한번은 어머니하고 얘기할 때도 그랬어 꽃집 앞에 내다논 화분을 보고도 자기, 참 예쁘다 중얼거리다가 혼자서 얼마나 무안했게 나는 망설이던 보험을 들기로 한다 그것도 아주 종신보험으로 들기로 한다 자기, 사랑에 빠진 말 속에 - 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손택수 시가 전하는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무척 재미있다. 보험서류를 들고 옛날 여자후배가 찾..

시읽는기쁨 2013.03.24

논어[22]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야!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련?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爲政 12 학생들이 제일 스트레스 받는 게 시험일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시험이란 아주 단순하다. 자기가 아는 것은 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시험 결과에 따라 우열을 가르고, 상벌을 주고, 심지어는 앞날까지 결정되어 버리니까 심각해지는 것이다. 어떻게든 한 개라도 더 맞히기 위하여 커닝도 불사한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을 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 교육에서 평가란 학생을 성적순에 따라 줄세우기 하는 것이다. 원래 평가란 교육자의 교수 행위가 얼마나 피교육자에게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는 수단이다. 평..

삶의나침반 2013.03.23

구봉도 노루귀

경기도 안산에 구봉도(九峰島)라는 섬이 있다. 지형으로 볼 때 예전에는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통행로가 열렸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이맘 때면 구봉도 산기슭에는 노루귀가 환하게 피어난다. 개체수도 굉장히 많다. 내가 지금까지 본 노루귀 군락 중 최대다. 구봉도에서 노루귀를 원없이 만났다. 너무 많으면 무엇을 찍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면서도 안타까운 건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사진가의 발길과 손길에 산과 노루귀가 몸살을 앓고 있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걸까? 디카 시대가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 것 같다. 나도 자성해 본다. 이젠 이름난 데는 찾아가고 싶지 않다.

꽃들의향기 2013.03.22

해솔길과 구봉도

대부도에도 '해솔길'이라는 트레킹 길이 있다. 7개 코스에 전체 길이가 74km에 이른다. 그중에서 시화방조제가 끝나는 지점부터 해안을 따라 구봉도를 지나는 길이 1코스다. 오늘 1코스의 일부를 걸었다. 해솔길 맛보기였는데 산책하기에 참 좋은 길이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씨도 맑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바다는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따스한 평화가 대기에 가득했다. 구봉도 낙조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길은 산길과 해안길이 있다. 갈 때와 올 때를 다르게 택하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바다 풍경. 대부도 해안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이 서어나무다. 노루귀도 한창이다. 구봉도 선돌. 할매바위, 할아배바위로 불린다. 낙조전망대에 있는 조형물. 서해로 지는 태양을 형상화했다. 수도권에서 그런대로 가까이 있는 ..

사진속일상 2013.03.21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참살이의꿈 2013.03.20

함석헌 읽기(6) -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저작집 6권에는 선생 개인의 인생 역정이 그려진 글이 여럿 실려 있다.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내가 맞은 8.15' '내가 겪은 신의주학생사건' 등과, 종교적 체험을 설명한 '이단자가 되기까지'가 대표적이다. '남강, 도산, 고당'에서는 세 분 스승과 만난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선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알 수 있는 글들이다. 신의주학생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생은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 일을 맡고 있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뒤 시내는 공포 분위기로 변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1945년 11월 23일에 학생들이 반소, 반공 시위를 할 때 학생들이 학살당하는 현장에 선생은 있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선생이 월남할 수밖..

읽고본느낌 2013.03.19

쓸쓸 / 문정희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 글씨로 써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 잔을 권할 때도 있네 이윽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

시읽는기쁨 2013.03.18

논어[21]

선생님 말씀하시다. "배우기만 하고 따지지 않으면 속히고, 따지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갈피를 못 잡는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爲政 11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 '학(學)'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思)'와는 거리가 먼 것은 확실하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점수 잘 받는 기계로 훈련시키는 게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늘 점수를 매기고 비교하고 줄 세우니 아이들은 배우는 데 질려버렸다. 아예 깊은 사고하기를 싫어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족집게로 요점을 짚어주는 교사가 유능한 선생님이다. 이런 교육 방식이 초중등까지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다. 국가간 성적 비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우리나라가 수학, ..

삶의나침반 2013.03.17

피겨 퀸 김연아

8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새해를 맞아 동료들과 직장 상사의 집에 세배를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상사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여자 피겨 연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동계 올림픽 중계였다. 나오는 선수들은 모두 미끈한 몸매의 서양인이었다. 그걸 보며 우리는 동양인이 과연 저 무대에 설 수 있을지에 대해 설왕설래했었다. 더구나 한국인이 세계 피겨 무대에 설 수 있을 때는 언제쯤 될 건지에 대해서도 말을 나누었다. 아마 대부분의 예상이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다시 우승했다. 총점 218.31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2위와는 무려 20점 넘는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연기였다. 실수나 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는데 다른 선..

길위의단상 2013.03.17

용두회에서 청계천을 걷다

용두회에서 청계천을 걸었다. 이번에는 산이 아니라 도시의 길을 택했다. 그래선지 일곱명이나 참석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는데 대개 서너명이 모이는 게 보통이다. 나이가 들어선지 산길에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점은 서울숲이었다. 서울숲을 지나 한강으로 나간 뒤에 중랑천을 따라 오르다가 청계천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이 이 길을 처음 걸었다. 서울숲이 춘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한강변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살곶이다리를 지나서.... 오늘 모인 친구들 가운데도 둘을 제외하곤 모두 퇴직했다. 퇴직 후의 취미 생활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어떤 친구는 색소폰을 불고, 어떤 친구는 기타에 빠졌다. 무려 일주일에 세 군데를 돌며 강습을 받는다 한다. 나는 무취미가 취미라 했더니, 넌 ..

사진속일상 2013.03.16

남한산성을 종주하다

페스탈로찌 K 형이 이번에 명퇴를 했다. 그리고는 곧 강릉으로 이사를 간다. 2년 전에 내가 명퇴를 하고 탈서울을 한 것과 비슷한 행보다. 얘기를 들어보니 K 형은 시골에 터를 구해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할 계획인 것 같다. 늦게 나왔지만 나보다 훨씬 걸음이 빠르다. 오랜만에 만난 S 형이랑 셋이서 남한산성에 올랐다. 지하철 마천역에서 만나 계곡을 타고 서문으로 향했다. 계곡을 택한 건 혹시나 복수초 같은 봄꽃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옛날 직장 생활 하던 때의 추억을 나누며 오르니 급경사 산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서문 전망대에서 보이는 서울 강동구 지역. 산 아래로 위례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이 보였다. 군부대와 골프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사진속일상 2013.03.15

멘토와 힐링의 시대

전에 현직에 있었을 때 신임 교사의 멘토가 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더니 그냥 형식상 보고만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경력 교사가 신임 교사와 멘토-멘티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교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라는 발상 같았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굳이 멘토라는 말을 써가며 드러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던 게 사실이다. 멘토와 힐링이 유행인 시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배로서의 스승이 필요하고, 상처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어느 시대인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사이 들어 멘토와 힐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멘토와 힐링의 대상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아프고 방황하고 있다는 증좌인지 모른다. 제대..

참살이의꿈 2013.03.14

클라우드 아틀라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는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큰 영화다. 대신 조금은 난해하다. 나도 두 번째 보고서야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을 달리 하는 여섯 개의 장면이 교차적으로 나오며 영화는 진행된다. 1. 1849년 남태평양 2. 1936년 스코틀랜드 3. 1973년 샌프란치스코 4. 2012년 영국 5. 2144년 서울 6. 2321년 지구 문명 멸망 후 이 여섯 개의 전혀 다른 배경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회를 반복하며 등장하는, 피부에 별 표시가 된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줄거리의 뼈대를 잡을 수 있다. 1849년의 어윙부터 프로비셔, 레이, 캐번디시(레이와 캐번디시의 연결은 의문), 손미를 거쳐 지구 멸망 후..

읽고본느낌 2013.03.14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소총으로 쏘아 진흙 밭에 빠뜨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퍽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들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네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남북한이 ..

시읽는기쁨 2013.03.13

스쳐 지나가는 풍경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남산 자락 후암동 친척집이었는데 결혼식이 있었는지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신기해서 내 또래 아이와 오리락내리락 하며 놀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외할머니를 놀라게도 했다. 그때는 시커먼 몸통을 가진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끌었다. 쉴새없이 연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끔씩 힘들다는 듯 목쉰 기적 소리를 토해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였는지, 나는 객차 유리창문을 위로 열어놓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는 우리를 끌고가는 철마를 구경했다. 옆으로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좋았다. 잠시만 그런 게 아니라 서울 가는 내내 바깥 구경에 넋을 잃었다고..

길위의단상 2013.03.12

무갑산 너도바람꽃

무갑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조심스레 너도바람꽃을 찍었다. 계곡에는 사진 동호회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생화 꽃밭이 많이 망가진 게 가슴 아팠다. 나도 거기에 일조를 하는 듯 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발길이 잦으면 이런 꽃은 견뎌내지를 못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개체수가 줄어든다. 사진보다 더 중요한 건 얘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것일 텐데....

꽃들의향기 2013.03.11

무갑산에 오르다

너도바람꽃을 보기 위해 무갑산을 찾았다. 계곡이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에 무갑사 주지 스님께서 직접 지으신 시를 걸어놓으셨다. 제목이 '너도바람꽃들의 아우성'인데, 앗 뜨거라, 얼굴이 화끈했다.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내 목이 부러졌어 내 허리가 꺾어졌어 조용히 피고 지고 했는데 왠 전쟁이야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꽃이 몸살을 앓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리어 꽃이 수난을 당한다. 땅은 패이고 무심한 발길에 짓밟히기도 한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진에만 관심이 있고 꽃이야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는 배경이 좋은 곳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면 꽃은 죽는다. 여기 무갑산도 너도바람꽃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엄청 몰리고 있다. 오늘은 평일인데..

사진속일상 2013.03.11

트레커 시산제

트레커 시산제 겸 보리산 산행을 했다. 트레커 회원 중 한 명만 빠진 14명이 참석했다. 보리산(627m)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산으로 산줄기를 따라 3개의 봉우리가 있다. 나산 1, 2, 3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걸로 보아 나산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산은 작지만 경사는 꽤 험한 편이다. 겨울동안 너무 걷지 않아선지 마냥 헉헉거렸다. 블루밸리 골프장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나산 3봉과 정상을 거쳐 원점회귀했다. 산길에는 잔설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아이젠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산제 포함하여 5시간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3.03.10

논어[2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간은 서로 친밀하되 패를 만들지 않고, 하찮은 인간은 패를 짓되 정이 통하지 않는다." 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 爲政 10 에는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을호 선생의 평설에 따르면 서로 무리를 이루려는 점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다를 바 없으나, 군자는 심교(心交)하고 소인은 세교(勢交)하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썼다. 심교(心交)와 세교(勢交), 정확한 지적이다. 한자 '周'는 마음의 친밀함을, '比'는 세력에 의한 편당(偏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자를 신처럼 떠받든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편당 짓기에 가장 앞장섰던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참고로 신정근 선생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자율적 인간은 보편적 입장에 서지 당파..

삶의나침반 2013.03.08

여행 후유증

캐나다와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시차로 인한 후유증이 크다. 낮에 찾아오는 두통과 잠이야 억지로 견딘다지만 한밤중에 깨어나 말똥말똥해지는 건 무척 기이한 경험이다. 어느덧 닷새 째다. 나 같은 잠보가 이러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다. 캐나다로 갔을 때는 몸살이 나서 계속 감기약과 수면제를 먹고 잤기 때문이었는지 시차를 거의 느끼지 않았다. 열흘 동안 그쪽 리듬에 적응했는데 다시 원대복귀 되었으니 몸이 놀랄 만도 하다. 이놈의 주인이 미쳤나, 하고 헷갈릴 것이다. 오늘도 2시에 깼는데 도저히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네 시간밖에 자지 않은 셈이다. 밤 2시는 LA에서는 아침 9시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이니 잠이 들 리가 없을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뒤척거리다가 결국은 불을 켜고 책..

길위의단상 2013.03.08

미주 여행 - 모뉴먼트 밸리와 파웰 호수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는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나바호(Navajo) 인디언의 성지다. 현재는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다. 백인에게 쫓겨난 인디언의 슬픈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장소다. 모뉴먼트 밸리는 철분이 포함된 붉은 바위산과 파란 하늘이 멋진 대조를 이룬다.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붉은 대평원에 치솟은 거대한 바위 기둥과 언덕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잘 보여준다. 이곳은 2,0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우리가 찾았을 때도 상당히 추었다. 겨울옷으로 무장해야 했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 영화들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주로 존 웨인이 주연한 영화가 많았는지 그의 이름이 붙은 포인트도 있다. 모뉴먼트 밸리를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에는 더 뷰(..

사진속일상 2013.03.07

미주 여행 - 브라이스 캐니언, 안텔로프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이번 여행에서는 그랜드 캐니언 외에 브라이스, 안텔로프, 자이언 등 3개의 캐니언을 더 들렀다. 이들 캐니언은 차로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Brice Canyon) - 오랜 시간 풍화작용에 의해 부드러운 흙은 사라지고 단단한 암석만 남아 지금은 수만 개의 분홍색, 크림색, 갈색의 돌 첨탑들이 도열하고 있다. 이곳에도 여러 개의 뷰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선셋 포인트(Sunset Point)도 있다. 석양을 받은 이곳 풍경은 불타듯 화려할 것 같다. 돌기둥 사이로는 걸을 수 있는 트레일 길도 나 있다.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넉넉하게 둘러보고 싶다. 안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 - 붉은색의 사암층을 수만 년 동안 물이 흐르며 이리저리 깎아낸 후 지금은 좁은..

사진속일상 2013.03.06

미주 여행 - 그랜드 캐니언

전날 밤 늦게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는데 그랜드 캐니언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캐나다와 달리 미국에 들어와서는 일정이 빡세졌다. 또, 다른 여행팀과 합류하게 되어 대형버스에 38명이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랜드 캐니언을 본다는 기대만으로도 온통 설레기만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바로 그랜드 캐니언을 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천관우 씨의 그랜드 캐년 기행문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글이 소년의 마음을 얼마나 들뜨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언젠가는 그랜드 캐니언에 가리라고 그때 다짐했었다. 그 바람이 40여년이 지나 이루어졌다. 라스베가스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가는 데는 5시간이 걸렸다. 길 옆으로는 단조로운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졌다...

사진속일상 201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