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길을 걷는 것을 나는 '풍요로운 고독'이라고 이름 붙인다. 외롭거나 허기진 고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떠난 대신 구름 친구, 바람 친구, 나무 친구, 꽃 친구, 새 친구가 나를 반겨준다. 유쾌한 벗들로 둘러싸인다. 평일에 산길을 걸으면 몇 시간 동안 한두 사람 스치는 게 고작이다. 그 여백이 무한 즐겁다. 정신 수양으로 한적한 산길 걷기만큼 좋은 건 없다. 때를 벗기려 목욕탕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는 퇴계의 시에 보면,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산길을 걷고 나면 좋은 책 한 권 읽은 것 같은 정신의 청량함을 맛본다. 산에 들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유는 욕심이 비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땀이 밸 듯 걷다 보면 세상의 근심과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