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2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외할머니 일흔일곱에 들어갔다 한 해 뒤 어머니 마흔일곱에 들어갔다 두 사람 다 깊은 밤을 타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1년씩 1년 반씩 병고에 시달렸지만 들어갈 때는 병고도 씻은 듯이 놓았다 두 사람 들어간 문은 좁은 문은 아닌 것 같다 일흔일곱도 받고 마흔일곱도 받은 걸 보면 좁은 문은 아니나 옷보따리 하나 끼지 못하게 한 걸 보면 엄격한 문인 것 같다 두 사람 거기로 들어간 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거기 법이 그런가 보았다 하긴 외할머니 어머니 여기서도 법도 잘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들어왔으면 문 꼬옥 닫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이쪽에서 보면 들어갔지만, 저쪽에서 보면 들어왔다다. 이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가셨지만, 저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오셨다가 된다. 죽음이 별스러운 게..

시읽는기쁨 2015.05.13

내 귀는 어찌하여 이런 이야기를 듣는가 / 이진명

한 선방(禪房) 승(僧)의 아무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첫째 이야기를 듣는다 말도 없이 출가해 수년 후 정식 비구계를 받고 고향집 양친을 찾아 갔노라고 50줄 아버지가 오늘 나랑 함께 자자며 이부자리를 펴시는데 중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안 잡니다 쌀쌀맞게 내뱉고는 다른 방에서 잤노라고 한 선방 승의 찬 하늘 구만리를 가는 기러기라도 배웅하는 듯, 젖힌 고개의 둘째 이야기를 듣는다 누나가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공항에서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전갈온 적 있었노라고 절방 마루 끝에 서서 비행기 출발했겠구나 산문 밖이나 건너다 보았노라고 누나 아이가 둘이라는데 그 조카들 얼굴도 모르고 한 선방 승의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이번에는 아주 작은 웃음기가 입가에 짧게 머문 셋째 이야기를 ..

시읽는기쁨 20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