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시골집 마당 수돗가에 나와 옷을 홀딱 벗고 멱을 감는데 수만 개 눈동자들이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다 날이 저물어 우리로 간 송아지와 염소와 노루와 풀잎과 나무에 깃들인 곤충과 새들이 물 끼얹는 소리에 깨어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를 들판과 나무 위를 깝죽깝죽 옮겨 다니면서 웬 낯선 짐승인가? 궁금해했던 것들이다 나는 저들의 잠을 깨운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삼겹살로 접히는 뱃살이 창피하여 몸에 수건을 감고 얼른 방으로 뛰어가는데 깔깔깔 웃음소리가 방 안까지 따라온다 "얘들아, 꼬리가 앞에 달린 털 뽑힌 돼지 봤지?" - 맑은 웃음 / 공광규 인간만이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치명적인 자뻑이다. 아무리 지력이 발달한들 우리는 그저 '털 없는 원숭이'일 뿐이다. 아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