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2

여름밤 / 김용화

견우직녀 만난다는 칠석날 밤 감나무 아래 모깃불 올리고 떠꺼머리 총각들 모여 앉아 말미 받아 돌아온 머슴살이 성배 형 연애담을 듣노라면 별자리 돌아 밤은 깊어 산골짝 옹달샘 마을 처녀들 목욕하며 쫑알대는 소리 꺼벙이 노총각을 앞세워 조심조심 오리걸음으로 다가갈 때 자발없는 어느 놈, 킬킬대 판을 깨면 앙칼진 처녀들 목청은 밤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어 반짝이고 - 여름밤 / 김용화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식구가 저녁 밥상을 마주한다. 매캐하면서 구수하기도 한 모깃불 연기가 바람 따라 식구들을 순서대로 만나고 지나간다. 엄마는 큰 양푼이에 보리밥과 푸성귀를 섞은 비빔밥을 만든다. 상 가운데는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있다. 풀벌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노랫소리로 요란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남자들은 어디론가 흩..

시읽는기쁨 2022.07.03

가장의 밤 / 김용화

잠든 아내 이불 끌어다 미운 발 덮어주는 일 딸 자는 방 살짝 들어가 지폐 한 장 찔러주는 일 아들놈 우산 갖다주고 책가방 들어주는 일 창밖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 삼키는 일 - 가장의 밤 / 김용화 가장으로서의 남자에게는 두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내 울타리를 소중히 지키려는 마음과, 경계에 갇힌 답답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세 연과 끝 연은 서로 대립되는 관계로 나에게는 읽혔다. 나는 늘 뒤쪽이 승했다. 반면에 시인은 가족에 대한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엊저녁에 라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아나운서가 소개해 주어서 이 시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 이불 덮어주는 일도, 딸 지갑에 지폐 찔러주는 일도, 아들놈 우산 갖다주는..

시읽는기쁨 202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