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매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