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2 2

갑과 을

아내는 스마트폰이지만, 나는 아직 구식폰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치가 역전되는 게 자꾸 생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선생님이 '사람 인'[人]자를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게 생각난다. 지금은, 아내는 길고, 나는 짧다. ...................... 옛날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젠 만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온 원시인 같다.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쳐다보기 바쁘다. 뭘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순댓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마주 앉긴 했으나 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본 건 메뉴를 고를..

길위의단상 2013.06.02

서울의 울란바토르 / 최영미

어떤 신도 모시지 않았다 어떤 인간도 섬기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새처럼 나 홀로 집을 짓고 허무는데 능숙한 나는 유목민. 농경 사회에서 사느라 고생 좀 했지 짝이 맞는 옷장을 사지 않고 반듯한 책상도 없이 에어컨도 김치냉장고도 없이 차도 없이 살았다 그냥. 여기는 대한민국. 그가 들어가는 시멘트 벽의 크기로, 그가 굴리는 바퀴의 이름으로 평가받는 나라. 정착해야, 소유하고 축적하고 머물러야, 사랑하고 인정받는데 누구 밑에 들어가지 않고 누구 위에 올라타지도 않고 혼자 사느라 고생 좀 했지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갈까? 나의 누추한 천막으로 네가 올래? 나를 접으면, 아주 가벼울 거야 - 서울의 울란바토르 /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에 실린 시다. 최영미 시인하면 가 강렬하게 새겨져 있다. 약간은 당돌하..

시읽는기쁨 201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