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 33

올림픽공원 은행나무(2)

넓은 잔디밭과 하늘을 배경으로 덩그마니 자리 잡고 있는 나무다. 도심에서 만나는 색다른 풍경이다. 예전에는 여기에 마을이 있고, 다른 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말끔하게 공원으로 단장되었고, 이 은행나무만 살아남았다. 500년의 연륜을 존중해준 탓일까? 평범하지 않은 풍경에는 자꾸 눈이 가게 된다. 극진한 보호를 받는 이 은행나무는 사람들의 주목을 즐거워할까, 아니면 외로움을 느낄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보호구역의 인디언이 떠오른다. 모뉴먼트밸리에서 지프를 몰던 주름살 굵게 패인 그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천년의나무 2013.06.30

논어[37]

선생님 말씀하시다. "활쏘기 때는 과녁을 주장삼는 것이 아니다. 실력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니 옛날에는 그랬던 것이다." The Master said, "In archery it is not going the leather which is the principal thing, because people's strength is not equal. This was the old way."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 八佾 10 인생을 승부와 경쟁으로 보는 데 대한 경고가 아닐까? 인간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활쏘기에서도 사람마다 타고난 힘이 다르기 때문에 가죽 과녁을 뚫는 것을 주장삼는다면 옳지 않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몇십 m 앞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

삶의나침반 2013.06.28

도봉산을 넘다

도봉산은 나에게 각별한 산이다. 서울 올라와서 맨 처음 오른 산이 도봉산이었고,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추억이 많다. 가족과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먹기도 했고, 카메라를 처음 사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친구와 도봉산을 찾기도 했다. 포대능선을 지나던 아슬아슬한 순간이며, 겨울철에 눈에 미끄러져 죽을 뻔했던 기억도 있다. 서울을 둘러싼 산 중 제일 가까웠던 산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멀어졌다. 오랜만에 도봉산에 올랐다. 전철 도봉산역에서 내려 이번에는 계곡 대신 능선을 택했다. 반대편 송추로 내려갔는데 전 구간을 능선으로만 걸었다. 보문능선, 도봉주능선, 오봉능선, 송추북능선, 송추남능선을 지났다. 도봉산을 오르는 길 중 보문능선이 제일 수월한 것 같다. 힘든 깔딱고개 하나 없다. 뒷산 오르는 정도로 계속 걷다 보면..

사진속일상 2013.06.27

함석헌 읽기(13) - 우리 민족의 이상

함석헌 저작집 13권은 여러 군데서 한 강연문이 실려 있다. 선생은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지만 강연문을 읽어 보면 굉장한 달변가임을 알 수 있다. 원고 없이도 두세 시간은 너끈히 때울 수 있는 분이시다. 선생의 글과 말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를 준비하자는 내용이 많다. 고난과 비극의 역사를 털어내고 새 철학, 새 종교, 새 정치를 해보자는 것이다. 둘로 찢어진 걸 하나로 살리는 철학과 종교, 네 나라 내 나라 구분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중에서 1961년에 국토건설 요원에게 한 강연이 눈길을 끈다. 민족 정신의 각성과 의식 혁명을 젊은이들에게 요청하는 긴 내용이다. 강연 마지막은 이런 사자후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이제부터 할 국토개발에 대하여 한마디..

읽고본느낌 2013.06.25

우리나라 100대 명산

난 목표를 정하는 게 싫다. 그런 걸로 남이나 나를 다그치는 건 영 질색이다. 성인이 된 뒤로는 무엇이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사이 들어 등산 목표를 하나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 목록을 보고 나서부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100산 정도는 올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음이 100대 명산 목록이다. 좁은 국토인데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여럿 있다. 내가 정상을 찍었던 산은 붉은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수도권 15 감악산, 관악산, 도봉산, 마니산, 명성산, 명지산, 백운산, 북한산, 소요산, 용문산, 운악산, 유명산, 천마산, 축령산, 화악산 강원권 22 가리산, 가리왕산, 계방산..

길위의단상 2013.06.24

정란의 목각

옛날 얘기 하나 해 줄께. 옛날 후한(後漢) 대에 정란(丁蘭)이란 사람이 있었어. 부모를 일찍 여의어 봉양할 수 없는 걸 평생 슬프게 여겼지. 그래서 생각 끝에 나무를 아로새겨 사람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진짜 어머니로 알고 섬기기로 했지. 밤이면 목상한테 가서 정성으로 "어머님 안녕히 주무셔요" 하고, 아침이면 또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하고, 어디 갈 일이 있으면 들어가서 "저 어디 갔다 오겠습니다" 해서 허락하는 기색이 보여야 가고, 근처에서 무슨 물건을 빌리러 오면 "저 아무개가 무엇무엇을 빌리러 왔는데 주랍니까?" 하고 품(稟)해서 허락하는 안색이 나타나 뵈야 빌려주었대. 하루는 근처에 사는 장숙(張叔)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와서 정란의 아내 보고 무슨 물건을 좀 빌려달라 했대. 정란의 아내는 ..

참살이의꿈 2013.06.23

산성역에서 남한산성에 오르다

용두회 정기 산행으로 남한산성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성역을 들머리로 하는 코스였다. 이 코스는 남에서 북을 향해 가게 되어 있어 여름에 오르기에 적당하다. 나무도 우거져 거의 그늘 속 흙길이다. 성벽을 만난 뒤 오른쪽으로 꺾어져 남문으로 내려갔다. 수어장대 방향은 너무 길다고 모두가 반대했다. 산성리 오복손두부집에서 점심을 했다. 단주 두 주일째인데 내 결심을 밝히고 건배주 한 잔만 받았다. 일행은 버스편으로 하산했고, 나는 벌봉을 거쳐 위례둘레길을 따라 산곡초등학교까지 걸었다. 사미고개에서 산곡초등학교까지 구간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산곡초등학교는 검단산 등산의 입구이기도 하다. 체력만 된다면 이 길을 따라 검단산과 남한산성을 이어 걸어볼 수도 있겠다. * 산행 시간; 6시간(10:00 ~ 16:0..

사진속일상 2013.06.22

순간의 꽃 / 고은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봄비 촉촉 내리는 날 누가 오시나 한두 번 내다보았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 부들 끝에 앉은 새끼 잠자리 온 세상이 삥 둘러섰네 * 이 세상이란 여기 나비 노니는데 저기 거미집 있네 * 어린 토끼 주둥이 봐 개꼬리 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 위뜸 아래뜸 개가 짖는다 밤 손님의 성(姓) 김가인가 박가인가 * 내려갈 때 보았네 올가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한번 더 살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죽은 붕어의 뜬 눈 * 설날 늙은 거지 마을 한 바퀴 돌다 태평성대 별것이던가 *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

시읽는기쁨 2013.06.21

논어[36]

선생님이 태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물은즉, 어느 사람이 말했다. "누가 추 땅 시골뜨기더러 예법을 안다는 거야! 대묘에 들어가선 일일이 묻지 않나!" 선생님이 이 말을 듣고 대답하시다. "그것이 예의다!" 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추人之子 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 八佾 9 묻기를 좋아하는 공자의 모습이 보인다. 묻는다는 건 호학(好學)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은 물을 수도 없다. 공자가 대묘 제사에 참여하여 이것저것 물으며 확인했는가 보다. 주변 사람이 짜증을 낼 정도였다. 귀찮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간섭하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그때 공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그것이 예의다![是禮也]" 예의 정신은 정확한 법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말 선생님다운 한 마디다. 공..

삶의나침반 2013.06.20

이방인

카뮈의 이 소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니, 처음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은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책이다. 도 그런 류다. 읽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은데 응당 읽었을 것 같은 책이다. 역시 혼란스럽다. '낯선 세상'에 내던져진 것 같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 존재를 '피투(被投)'라는 말로 설명한 게 떠오른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던져진 존재다. 또 세상은 내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돌아간다. 뫼르소는 그런 상황을 극단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뫼르소가 보인 세상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피투된 존재의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은 세상과 삶의 본질을 까발린다. 눈부신 알제리의 햇빛 아래 가식으로 덮인 일반적인..

읽고본느낌 2013.06.18

복숭아 봉지 씌우기

텃밭에 있는 우리 복숭아나무에 봉지 씌우는 작업을 했다. 노란색 봉지 130개가 들었다. 부모님께서 과수 농사는 하시지 않았기에 나도 봉지 씌우는 일은 처음 해봤다. 종이 끝에 핀이 달려 있어 마무리하기 쉽게 되어 있다. 일이 재미있고 신이 났다. 그러나 사다리가 없어 높은 곳은 손을 댈 수 없었다. 과일에는 왜 봉지를 씌울까? 자연스럽게 태양광을 받으면서 익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봉지를 씌워야 색깔이 예쁘게 나오고 껍질이 얇으면서 맛도 좋아진다고 한다. 주인장 얘기로는 봉지를 안 씌우면 아마 못 먹을 거란다. 그렇다면 옛날 복숭아는 다 시원찮았다는 말인가? 봉지를 씌우는 건 너무 겉모양과 상품성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나중에 가을이 되면 서로 비교해봐야겠다.

사진속일상 2013.06.17

전철을 기다리며

광주를 통과하는 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판교와 여주를 잇는 복선 전철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진작 개통되었어야 했는데 계속 공사가 지연되더니 2015년 말에야 길이 열린단다. 사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바로 전철을 이용할 줄 알았는데 앞으로도 2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여기 사는 게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단 하나 교통이 불편한 게 흠이다. 감내하지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가끔은 전철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 전철이 개통되면 분당까지 두 정거장, 강남역까지도 여섯 정거장만 거치면 된다. 서울 다니는 시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전철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 다른 것 같다. 산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들어보니 전철이 개통되면 광주 상권은 죽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광주시민은..

사진속일상 2013.06.16

솔고개 소나무

미송대회(美松大會)가 있다면 메달감으로 충분한 나무다. 심사기준이 자태만이 아니라 배경도 중요하다면, 이 소나무는 뒤로는 단풍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서 있어 더욱 가산점을 받을 것 같다.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의 솔고개에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2리다. 이곳은 송현동(松峴洞), 또는 산솔마을이라고도 불리는가 보다. 모두가 소나무와 연계된 이름이다. 그만큼 소나무가 많았다는 뜻이리라. 이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다.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솔고개를 넘어갈 때 이 소나무가 눈물을 흘리며 배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령은 270년 정도로 추산되니 아마 이 소나무의 할아버지 적 얘기였나 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가..

천년의나무 2013.06.15

그리운 나무 / 정희성

사람은 지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서성대기도 하지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누군가가 우주를 '색(色)과 욕(欲)'으로 정의한 걸 본 적 있다. '욕(欲)'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리움'으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모든 존재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무가 인간을 본다면 얼마나 수선스럽게 보일까?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쉼 없이 돌아..

시읽는기쁨 2013.06.14

논어[35]

선생님 말씀하시다. "주나라는 하, 은 두 나라를 본떠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으니, 나는 주의 문화를 따르겠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 文哉 吾從周 - 八佾 8 "나는 주의 문화를 따르겠다[吾從周]." 이런 말을 보면 공자는 마치 주나라의 문화를 회복하려는 역사적 사명이라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공자 일행이 광 땅에서 양호로 오해받고 여러 날 동안 포위된 일이 있었다. 이때 공자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문왕은 돌아가셨지만 문화는 여기 있다. 하늘이 아직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 사람인들 나를 어떻게 한까보냐?"라고 대답했다. 대단한 신념이고 자부심이다. 공자의 언행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나라를 존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의 관점에서 주나라는 왕권 중심의 봉건국가였을 뿐이다. 그..

삶의나침반 2013.06.13

징검다리

경안천을 산책할 때면 일부로라도 한 번은 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옆에 번듯한 다리가 있지만 돌아서라도 이 징검다리를 찾게 된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사이를 사뿐사뿐 건너뛰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앞 개울에도 이런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물에 잠겨 무릎 위까지 바지를 말아 올리고 건넜다. 심할 때는 아예 바지를 벗어 머리 위에 이고 건너기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넜던 기억도 난다. 여름에 홍수라도 나면 당연히 학교로 가는 길이 끊겼다. 시멘트 다리가 있는 읍으로 해서 돌아가자면 두 시간이나 더 걸렸다. 저학년 아이들은 등교하는 걸 포기했고 학교에서도 말렸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뒤..

길위의단상 2013.06.12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얼마 전 KBS TV '아침마당'에 이근후 선생 부부가 출연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답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마침 선생이 펴낸 책이 있어 찾아 읽어 보았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이라는 부제가 붙은 라는 책이다. 선생은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이시다.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는 분이다. 이화여대 정신과 교수로 퇴직하신 뒤에도 네팔 의료봉사, 청소년 상담, 보육원 봉사, 석불 연구, 부모와 노인 교육, 연구 활동 등을 왕성하게 하신다. 특히,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 졸업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이나 당뇨, 고혈압, 통풍, 디스크 등 여러 가지 병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 선생의 장..

읽고본느낌 2013.06.12

일장춘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어렸을 때 집에 유성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들고 나는 태엽을 돌리며 유성기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도 그중의 하나다. 이제는 그 하얗던 할머니들도, 유성기도, 마당의 감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 내 입에서도 무심결에 이 노래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면 옛날의 그 호롱불이 희미하던 방 풍경이 떠오른다. 본 노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던, 북한 사람의 음성처럼 간드러지던 유성기 소리도 들린다. 인생 일장춘몽인데, 애면글면 헛된 마음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나 싶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져 주자..

참살이의꿈 2013.06.11

세간리 은행나무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의 곽재우 의병장 생가 옆에 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다. 아마 곽 장군도 이 은행나무 밑에서 뛰놀며 자랐을 것이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1m, 줄기 둘레는 10.3m나 된다. 천연기념물 302호다. 생가 안내문에는 장군의 일생이 이렇게 나와 있다. 곽재우(郭再祐) 의병장은 1552년 8월 28일 이곳 세간리에서 태어나 1585년 별시과거에 급제했으나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파방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책과 붓을 던지고 가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유격전과 기습공격에 능했던 장군은 연전연승하며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란이 끝나고는 성주목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나 극심한 당쟁에 실망..

천년의나무 2013.06.10

세간리 현고수

현고수(懸鼓樹)란 '북을 매단 나무'란 뜻으로 선조 25년(1592) 4월 13일에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41세 유생이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에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전해 온다. 나무는 북을 매달기 좋게 줄기가 꺾어져 있다. 이런 역사적 의미로 인하여 현고수는 2008년에 천연기념물 493호로 지정되었다. 이 느티나무의 나이는 500여 년으로 추산되며,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8.4m다. 생김새부터가 범상치 않은 느티나무다. 해마다 열리는 의병제전 행사를 위한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한다.

천년의나무 2013.06.10

광주 노고봉

노고봉(老姑峰, 578m)은 경기도 광주와 용인을 나누는 태화산 산줄기에서 가운데쯤에 있는 산이다. 이 산줄기를 10시간 정도 걸려 하루에 종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오르고 있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함 선배님과 함께 걸었다. 서울서 내려오신 선배님과 광주터미널에서 만나 버스를 갈아타면서 외대 용인캠퍼스 앞까지 갔다. 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을 오르는 게 허리 아프고 난 뒤 처음이니 거의 3개월 만이었다. 30도가 넘는 날씨까지 더해져 처음부터 무척 힘들었다. 나중에는 물까지 떨어져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여름 산행은 물만은 넉넉히 준비해야 하는데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선배님은 나보다 15살이나 연상인데 내가 따라가기가 벅찼다. 몸이 불편..

사진속일상 2013.06.09

백팔배를 올립니다 / 최상호

제 일 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생각하며 절합니다. 이 세상 처음 올 땐 인연 따라 온 것일뿐 산 속이든 물 속이든 돌고 도는 순리인즉 한 목숨 누리며 살 때 멈출 자리 봐 둘 일 제 사 배, 나의 진정한 얼은 어디에 있나 생각하며 절합니다. 하늘 뜻 새기는 일 먼 산보며 깨닫는다 땅의 뜻 다지는 일 길 가면서 되새긴다 늘 깨어 바라보는 일 쉬지 않는 이유다 제 십오 배, 하나의 사랑이 우주 전체에 흐르고 있음을 생각하며 절합니다. 달빛을 사랑한 별이 작은 눈을 끔벅이면 한 줄기 바람결이 풍경을 깨우도다 부처도 그윽한 웃음으로 달빛 별빛 모으신다 누구라 해탈한 듯 산속 절집 찾아오고 노스님 죽비 후려 새벽 군불 지피는데 선잠 깬 동자승 혼자 뒤척이며 찾는 엄마 제 십구 배, 생명의 샘물과 우..

시읽는기쁨 2013.06.07

논어[34]

왕손가가 물었다. "'방 구석 조상님보다 부엌 조상님이 낫다'는데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조차 없습니다." Wang-sun Chia asked , saying, "What is the meaning of the saying, 'It is better to pay court to the furnace than to the south-west corner?'" The Master said, "Not so. He who offends aganist Heaven has none to whom he can pray."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조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 八佾 7 당대 권력자와의 대화는 대개 이렇게 날이 서 있다. 위나라 ..

삶의나침반 2013.06.06

오도리 이팝나무

운 좋게 꽃이 활짝 핀 상태의 오도리 이팝나무를 만났다. 마침 황매산으로 철쭉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 오도리에 있다. 나무 앞에 있는 마을 표지석은 '황골마을'로 되어 있다.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에 걸맞게 엄청나게 큰 이팝나무다. 안내문에는 높이 15m, 줄기 둘레 2.8m로 되어 있는데 줄기 둘레는 그보다 훨씬 더 돼 보인다. 지나가던 어느 팀에서 나무를 두 팔로 에워쌌는데 여섯 사람이 맞잡아야 했다. 마을에서는 당연히 당산나무로 소중히 모신다.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나무의 꽃 피는 모양을 보고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한다.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시름시름 피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천년의나무 2013.06.05

안산 갈대습지공원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시화호로 유입되는 반월천의 수질 개선을 위해 갈대를 이용한 자연정화 처리 방식으로 조성된 대규모 인공습지다. 또한 자연속 생태계를 이루는 생물들이 어떻게 서식하는지를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조성된 생태학습장이기도 하다. 안산에 간 길에 잠시 들러 보았다. 물이 정화되는 원리는, 갈대 사이로 물이 지나가면서 물속의 찌꺼기가 가라앉는다. 그러면 갈대 줄기에 붙어 있는 미생물이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갈대는 물속의 오염물질을 먹고 산다. 자연적으로 오염물질이 사라지는 것이다. 갈대습지공원은 무척 넓다. 길이 잘 나 있어서 식물이나 동물을 관찰하기 쉽게 되어 있다. 특히 지금은 백로와 왜가리 종류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라니, 족제비, 너구리도 산다고 한다. 아쉬운 건 ..

사진속일상 2013.06.04

당신들의 기독교

이 책에는 10명의 개신교 신자(信者)가 등장한다. 통념적으로 믿음이 좋다고 부르는 사람들로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만나는 유형들이다. 는 교인들을 대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그중에 교회 재정 담당 장로인 G가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G는 기독교 신앙을 이데올로기의 알짬으로 삼는 부르주아로, 세계관이나 식견은 사뭇 보수적이다. 그의 부는 교회 내에서도 인정과 존경의 잣대이자 신의 축복에 대한 증거로 숭상된다. 그에게 벌이와 벌이의 체계를 성찰하는 의식은 전혀 없다. 그저 세속 속에서 열심히 돈을 축적하고, 교회 안에서 은혜롭게 살아간다. 부유한 크리스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은이 김영민 선생은 G 같은 신자들이 존경받는 모습을 통해 이미 우리 시대의 ..

읽고본느낌 2013.06.04

백곡리 감나무

일반적으로 과실나무의 수명은 짧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백 년이 넘는 과실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그 까닭은 과실을 영글게 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탓이 아닌가 싶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에 있는 이 감나무는 연세가 450살이나 되셨다. 과연 감나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하긴 상주에는 750살이나 되신 감나무도 있다. 그러나 크기로는 백곡리 감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긴 세월을 버티어 낸 기상과 위엄이 느껴진다. 감나무 줄기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아도 될 만한 공간이다. 줄기에서는 세 개의 큰 가지가 위로 뻗어 있다. 높이가 28m나 되니 키다리다. 지금도 감이 열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곡리가 자랑할 만한 대단한 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06.03

갑과 을

아내는 스마트폰이지만, 나는 아직 구식폰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치가 역전되는 게 자꾸 생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선생님이 '사람 인'[人]자를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게 생각난다. 지금은, 아내는 길고, 나는 짧다. ...................... 옛날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젠 만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온 원시인 같다.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쳐다보기 바쁘다. 뭘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순댓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마주 앉긴 했으나 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본 건 메뉴를 고를..

길위의단상 201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