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샌. 2013. 3. 20. 08:26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생태적으로 절름발이 숲이 되어 버린다. 늑대가 살아야 숲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다 존재 이유가 있다.

 
'일산백화(一山百花)'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산에는 온갖 꽃이 핀다. 내가 바라는 꽃만 바라는 건 편협한 욕심이다. 이를 마음으로 확장시켜 생각해 본다. 우리 마음속에도 늑대가 살고 있고, 원하지 않는 꽃도 핀다. 어두운 본성이라 이름해도 좋다. 그렇다고 늑대를 죽이고 꽃을 뽑으면 내 마음도 죽는다. 하나를 죽이고 다른 하나를 살릴 수 없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둘이 아니라 하나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불교에서 명상할 때는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잡념조차도 받아들인다. 다만 그런 생각이 일어나고 변화해 가는 걸 관찰하고 알아챌 뿐이다. 따뜻하게 바라볼 때 번뇌의 물결은 고요해진다. 보기 싫다고 쓰레기통을 치우면 집안은 더 지저분해진다. 사탄과 대적해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면 세상은 진즉 평화를 찾았을 것이다. 선과 악, 빛과 그림자를 일도양단하는 이분법으로는 진리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진리는 상대적인 모든 차별에서 초월하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마음 같지 않을 때 이 속담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그러면 타인이나 사물을 대하는 데 조금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은 없다. 단지 소용 닿는 데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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