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멘토와 힐링의 시대

샌. 2013. 3. 14. 18:27

전에 현직에 있었을 때 신임 교사의 멘토가 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더니 그냥 형식상 보고만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경력 교사가 신임 교사와 멘토-멘티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교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라는 발상 같았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굳이 멘토라는 말을 써가며 드러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던 게 사실이다.

 

멘토와 힐링이 유행인 시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배로서의 스승이 필요하고, 상처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어느 시대인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사이 들어 멘토와 힐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멘토와 힐링의 대상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아프고 방황하고 있다는 증좌인지 모른다.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라면 멘토와 힐링을 이렇게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위 멘토 역할을 자임하는 이들이 TV에 나와 강연하는 걸 본다. 방청석에는 젊은이들이 감동 받을 준비를 하고 앉아 있다. 멘토의 말은 청산유수다. 젊은이들의 고민과 희망을 다 아는 듯 정곡을 콕콕 찌른다. 일부 젊은이들은 눈물도 흘린다. 아,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아야지,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안방에 누워 시청하는 내 가슴도 찌르르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방송이 끝나면 뭔가 허탈해진다.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강연의 내용은 대개 두 종류다. A는 노력과 극기를 강조한다. 젊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리고는 성공한 선배의 예화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들의 고생담을 들으면 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치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더욱 노력해야지, 라는 결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B는 다독다독 위로해 준다. 누구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 우리는 모두 동병상련의 가련한 존재들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최면을 건다. 행복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아픔이 사라지고 어느새 힐링되는 것 같다.

 

내가 멘토와 힐링에 대해 유감스럽게 여기는 것은 멘토라고 하는 그들이 현상만 다루지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 청년 실업이 문제라면 취직을 못해 아파하는 마음을 위로하거나 견디라고 하기 이전에 실업을 야기하는 잘못된 경제 체제에 대해 먼저 비판하는 게 옳다. 청년을 현 체제에 순응하고 적응하도록 가르쳐서는 안 된다. 청년은 결코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아픔은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비판 정신을 상실한 청년은 청년이 아니다.

 

잘 나가는 멘토 중에는 스님도 있다. 불교가 위안과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세상을 편하게 살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가진 안락한 삶을 버리고 풍찬노숙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오직 진리를 구하려는 일념 때문이었다. 불교는 고독하고 험난한 길을 가라고 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따위는 불교에는 없다. 적어도 내가 보는 불교는 그렇다.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을 버릴 수도 있는 기개, 그것이 청춘이다.

 

젊은이를 환자 취급하는 멘토와 힐링이라는 말이 싫다. 어찌 보면 젊은이를 더욱 유약하게 만드는 연극처럼 느껴진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악어의 눈물이다. 젊은이를 저 광야에 그냥 내보내라. 시시콜콜 간섭하지 마라. 세상적 기준으로 젊은이를 재단하지 마라. 성공 신화를 강요하지 마라. 그대들에게는 못나 보여도 그대로 두어라. 못난 사람끼리도 신나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젊은이들이여, 저 멘토들의 달콤한 사탕을 이젠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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