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키바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그의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터벅터벅 출발했다.
어떤 마을 근처에 다다랐는데,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밤 도둑이 습격하여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램프가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라면 개가 짖어 대어 도둑에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당나귀 역시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잃는 덕택으로 도둑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랍비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로 유대판 새옹지마의 교훈이다. 세상사를 오래 경험하다 보면 모든 것은 변해간다는 것을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나쁜 일은 좋은 일로 연결되고, 좋은 일은 나쁜 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낙담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결과 지금의 이스라엘이 세워졌는지도 모른다. 천 년 넘게 나라 없이 유랑하다가 홀로코스트의 비극마저 이겨낸 유대 정신 속에는 '희망'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가 세속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희망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성공을 위해 참고 기다리라는 처세훈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반대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유대인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가스실로 끌려간 행동을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거기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슬픔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현인은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며, 참된 희망은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찾아온다.
아키바(50~135)는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랍비며 유대교 지도자였다. <탈무드>도 아키바가 처음 편집했다. 그는 마흔 살이 되도록 문맹이었으나 아내 라헬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해 최고의 학자가 되었다. 아키바에게는 이런 얘기도 전한다. 아키바와 네 명의 현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성전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어 있었다. 네 명의 현자는 눈물을 흘렸으나 아키바는 오히려 기뻐했다. 성경에 말하기를 시온이 갈아엎은 밭으로 변하면 예루살렘 거리에 다시 사람들이 앉을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키바는 현실 너머를 볼 줄 알았다. 그러나 토라 공부를 금지한 로마법을 위반하고 유대인 반란과도 연관되어 로마로 끌려가 처형을 당했다. 마지막 순간에 새빨갛게 단 인두가 몸을 지지는 데도 태연히 아침 기도를 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아키바가 가슴과 영혼에 품었던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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