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은 함석헌 선생이 외국 여행을 하는 중에 쓴 글들이다. 선생은 세 번 외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마지막이 1979년이었으니 연세가 여든이었을 때였다. 수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교민을 만나고 강연을 했으니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혁명을 꿈꾸고, 지구의 미래를 사색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선생은 여든이라는 나이지만 정신은 청춘이었다.
외국에서 쓴 글에는 도리어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다. 그것은 선생의 여행 목적이 주로 퀘이커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에 서구와 비교하여 편협한 우리 국민성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의 가장 나쁜 버릇이 당파 싸움이요, 가장 결점이 생각이 좁은 것이라는 걸 외국에서 더욱 체험한다. 분열된 교민 사회를 보면서는 더욱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구한국이 망한 뒤에 많은 애국심 가진 사람들이 만주로, 시베리아로 망명했는데 동포들 손에 죽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반대파가 왔다 하면 여관에 들자마자 사람들이 가서 푸대 속에 잡아넣어 바다에 던졌다. 고생을 많이 하고도 해외에서 한 독립운동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런 당파 싸움 때문이었다. 임시정부가 실패한 것도, 해방 후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마찬가지다.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읽어 보면 중경 임시정부의 꼬락서니가 잘 나온다. 선생이 중국을 동서로 가로질러 몇 달에 걸쳐 임시정부를 찾아갔더니 각료들 하는 짓이 파를 가르고 싸움질하는 것밖에 없었다. 고작 백 명도 안 되면서 당은 열 몇 개가 있었다니 그 분파상이 짐작된다. 실망한 선생은 중경을 떠나 무장유격대에 들어간다.
함 선생이 보는 우리 민족은 내용은 없으면서 모양내기에는 아주 열심이다. 남의 걱정에 끼어들고 시비를 잘한다. 이런 건 다 자주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선생은 진단한다. 나를 깊이 파지 못하기 때문에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기 때문에 어디 가 붙으려 하고, 남에게 붙기 때문에 생각이 좁아져 남을 배척한다. 좁은 땅덩어리와 부족한 천연자원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생이 줄기차게 주장한 대로 한 가지밖에 없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남북이 갈라진 지 벌써 70년이 되어간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올봄에도 남과 북 사이에는 쉼없는 소모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을 떠나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이것도 우리 민족의 당파성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당쟁을 일본 학자들이 일부러 부각시켰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우물 안 개구리 식 싸움을 너무 많이 벌였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부정적 유산이다.
선생이 외국 여행을 한 6, 70년대는 서구와 우리의 격차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경제 규모가 거의 세계 10위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경제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다. 지난 3월에 미국과 캐나다에 다녀왔는데 외형적으로는 우리나 그들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도리어 우리가 앞서 있는 분야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국민의 의식 수준, 학문의 깊이, 인간에 대한 존중, 자연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아직도 멀었다는 걸 느꼈다. 같은 자본주의건만 우리는 너무 얕고 천박하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야 선진국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35%가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슬 (0) | 2013.05.01 |
---|---|
똥꽃 (2) | 2013.04.30 |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0) | 2013.04.24 |
함석헌 읽기(10) - 오늘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 (0) | 2013.04.18 |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0) | 2013.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