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47. 나바위
전북 익산에 있는 나바위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가 1845년 페레올 주교 등과 함께 서해를 통해 귀국하여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상해를 출발한지 42일 만인 1845년 10월 12일에 이곳 나바위 기슭에 상륙했다. 이를 기념하여 나바위 성당이 세워졌다.
나바위 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베르모렐(요셉, 1860~1937) 신부가 1907년에 완공했는데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지붕은 한옥 구조로 만들었다. 국가 사적 3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는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남아 있다.
전통 한지로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가 특이하다.
성당 앞에는 '치유의 경당'이 있다. 원래는 성바오로 수녀님들이 진료소로 운영하였으나 2016년에 보수 작업을 거쳐 신자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당 내부 모습.
평화의 모후 상.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상.
1919년에 나바위 성당 주임신부를 지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소세덕(1877~1921) 신부의 묘.
나바위의 원래 명칭은 화산(華山)이다. 아주 야트막한 산이지만 너른 바위가 있어 주로 나바위로 불렸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에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물줄기가 바뀌어 평야 지대로 변했다.
화산 꼭대기에 1915년에 지은 망금정(望錦亭)이 서 있다.
망금정 옆에는 1955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을 본떠 비슷한 크기로 만들었다.
망금정 뒤 바위에는 마애삼존불 조각상이 있다.
십자바위와 예수 고난 상.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은 1845년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한양을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표착한다. 배를 수리해서 다시 한양을 향하지만 항해가 불가능해지고 인적이 드문 이곳 화산 언저리에 도착한다. 1845년 10월 12일 저녁 8시경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라파엘호를 같은 크기로 복원해 놓았다. 무동력 목선인 라파엘호의 규모는 길이 13.5m, 너비 4.8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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