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비가 떠나가는 가을을 재촉한다. 지난밤의 차가운 비바람에 나무는 더욱 홀쭉해졌다. 성하(盛夏)의 계절을 장식하던 나뭇잎은 생명의 물기가 빠지고 바닥에 떨어져서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날린다. 제 역할을 다하고 나면 해체되고 소멸하는 것이 생명체의 숙명이다. 인간 역시 유전하는 만물의 흐름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다. 가을 끝자락 풍경을 보면 울적해진다. '울적(鬱寂)'은 사랑스러운 말이다. 사전에는 '쓸쓸하고 답답한 마음'이라고 나와 있지만, 나는 '우울한 적요(寂寥)'라고 해석한다. 즉, '우울과 함께 하는 고요/평화'다. 세상사의 덧없음을 비관하면서 동시에 긍정한다. '울적'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감정으로서의 우울을 넘어서는 깊은 울림이 있다. 가을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사람들이 자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