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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김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 풀 / 김재진 '아름다움'은 '앓음'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예술 작품을 보라. 창작 과정의 고통과 아픔 없이 나오는 명작은 없다. 상처의 향기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풀은 자신의 전 생이 베어지는 때에 향기를 낸다. 원망과 한탄의 늪에 빠지거나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는다. 상처에서 나오는 악취는 썩는 신호다. 향기는 생명 의지의 표현이다. 상처의 향기가 아름다움이다.

시읽는기쁨 2019.08.30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씨감자로 배를 채운 저녁나절처럼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아려오는지 쥐오줌풀, 말똥가리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통발, 개차즈기, 개씀바귀, 구리때,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못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이름들뿐인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굴,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왜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낯뜨겁고 부끄러운 이름들뿐인지 쥐꼬리망초, 명주실풀, 며느리밥풀, 좁쌀풀, 속속이풀, 송장풀, 주름잎, 쐐기풀, 쑥부지깽이, 개밥풀, 겨우살..

시읽는기쁨 201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