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머리맡이 있지요 기저귀 놓였던 자리 이웃과 일가의 무릎이 다소곳 모여 축복의 말씀을 내려놓던 자리에서 머리맡은 떠나지 않아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던 첫사랑 때나 온갖 문장을 불러들이던 짝사랑 때에도 함께 밤을 새웠지요 새벽녘의 머리맡은 구겨진 편지가 그득했지요 혁명시집과 입영통지서가 놓이고 때로는 어머니가 놓고 간 자리끼가 목마르게 앉아 있던 곳 나에게로 오는 차가운 샘 줄기와 잉크병처럼 엎질러지던 모든 한숨이 머리맡을 에돌아 들고났지요 성년이 된다는 것은 머리맡이 어지러워지는 것 식은땀 흘리는 생의 빈칸마다 머리맡은 차가운 물수건으로 나를 맞이했지요 때론 링거줄이 내려오고 2 지게질을 할 만하자 / 내 머리맡에서 온기를 거둬 가신 차가운 아버지 / 설암에 간경화로 원자력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