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 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 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