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성내리'라는 지명은 많다. 성이 있는 큰 고을이었다면, 성을 경계로 성 안 마을과 성 밖 마을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풍기도 조선 시대에는 풍기군이었으니 성내리라는 지명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성터의 흔적도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풍기군 옛 관아터에 수령이 7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는 무척 노쇠한 모습이다. 전체 조선 시대와 함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옛 건물은 전혀 찾을 길 없고, 오직 이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무상을 증언하고 있다. 나무 옆에는 풍기초등학교가 있다. 국민학교 3학년쯤에 여기로 전학 와서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는 학교다. 아마 1961년 경이었을 것이다. 촌놈에게는 전기가 들어왔던 풍기는 휘황한 도회지였다. 아버지가 정미소 사업을 하면서 풍기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