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곳에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다. 밖은 거센 바람이 불고 건조하다. 종말적 상황이다. 둘은 집안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쪽 팔을 못 쓰는 아버지의 옷을 입혀 주고, 감자 한 알을 먹고, 남는 시간은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한 마디 대화도 없다. 관성적인 절망의 몸짓이다. 나는 이 영화를 인류 종말에 관한 보고서라 생각하며 보았다. 핵전쟁이든 기상이변이든 종말의 때가 닥쳤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물의 물마저 말라 버리자 짐을 싣고 다른 데로 옮기려 하지만 폭풍으로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철저히 고립되었다. 나중에는 램프도 켜지지 않는다. 기름이 있는데 불이 붙지 않는 건 산소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핵겨울이 닥치기 전 지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