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7 2

가늘고 길게

굵게 사는 삶은 꿈꿔 보지 않았다. 거창한 꿈은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초등학교 학적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래 희망은 내리 교사가 적혀 있었다. 부모 희망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그런대로 했으니 의사나 판사를 시켜볼 만도 했건만 아버지는 오로지 교사 되기를 바라셨다. 대학생 때 고시 공부하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도 나를 잘 파악하고 계셨다. 요사이는 교사 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사가 부족해서 단기 양성 과정도 있었다. 남자가 교사를 희망하면 졸장부 취급을 받던 때였다. 어릴 때부터 내 기본 마인드는 적게 먹고 적게 싸자 주의였다. 나는 햄릿형이다. 소심하다. 사상체질로는 소음인에 속한다. 가늘게 살 팔자다. 당연히 굵고 짧게 사는 걸 부러워하지 않는다. ..

참살이의꿈 2016.05.17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한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 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

시읽는기쁨 201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