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몇 주일이나 학교도 못 나오게 되고 앓아 눕게 된다. 의사는 신경의 병이라지만 나 자신은 내가 `존재에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절실하고 긴박하게 생과 사만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불면 불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버린다.
가을은 토카이의 시 속에서처럼 저녁 노을에 박쥐가 퍼덕거리는 숲을 지나서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가다가 길목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어린 포도주와 파란 호두`를 먹고 죽음 속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버리기에 꼭 적합한 계절인 것만 같다.
괴로워하고 모든 것에서 공허와 권태와 몰락만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에의 항로의 유혹을 생생하게 받고 생의 의지가 거의 완전히 마비되어 버리는 몇 주일을 꼭 겪어야 하는 것이 나의 가을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싫어한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어둡고 무겁고 괴로운 몇 주일을 올해도 얼마 전에 보내고 났다.
매일 커튼을 검게 방 둘레에 치고 어스름한 박명 속에 누워 있었다. 아무 소리도 말 소리도 내지 못하게 집안 식구에게 이르고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이 조금이라도 짙은 날에는 두꺼운 검은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열흘쯤 이렇게 앓고 나니 다시 일어나서 사물을 예전과 같은 각도에서 볼 힘이 어디선가 솟아났고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
-- 전혜린 산문 `가을이면 앓는 병`에서
田惠麟(1934. 1. 1 ~ 1965. 1. 10)
이렇게 아픈 가을을 앓던 그녀는 32살 젊은 나이에 스스로 긴 여행을 떠났다.
가볍고 천박하고 물신주의에 귀신들린 이 광란의 시대에 그녀의 진지함과 존재에 대한 고뇌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할지라도 현실에 너무 매몰되지는 말자.
이제 얼마 남지않은 이 가을,
약간은 무거워지더라도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아 나서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