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바보 이반의 나라

샌. 2003. 12. 19. 15:07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단편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반은 바보이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다 바보라고 부를 만 하다.

그들은 권력도 모르고, 부자가 될 줄도 모른다. 그 나라는 군대도 없다.
그래서 외국 군대가 침략해 와도 대항할 줄을 모른다. 물건이 필요하면 누구에게나 다 가져가라고 한다.
자기 것이라고 모으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육체 노동이 가장 신성하게 대우받는다.
손에 굳은 살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일상으로서의 노동은 즐거움과 행복의 원천이 된다. 노동이 곧 삶이요, 오락이다.

이반이 그 나라의 임금님이지만 일상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이름만 임금이지 하는 일은 똑 같다. 임금으로서 특별하게 할 일이 있지도 않다. 사람들은 임금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악마가 모든 나라들을 자신의 수중에 넣었지만 바보 이반의 나라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금화를 뿌리며 유혹해 봤지만 그들은 돈이란 걸 모르니 금화를 노리갯감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한두 개로 만족하고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
권력으로 유혹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는 군대를 동원해서 집을 불태우고 약탈해도 그들은 분노를 몰랐다. 그래서 싸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악마는 손을 들고 물러났다.

아마 이 나라는 아주 작을 것 같다. 한 쪽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데 걸어서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땅 욕심이 없으니 국경을 넓히지도 않는다.

그들은 누구나 일을 하여 스스로 살아가고,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다.
대부분의 생활 용품은 자급자족으로 충당된다. 그래서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고, 작은 것으로, 적은 범위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니 자연 환경을 해치는 일도 없다. 그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삶과 죽음도 생명 순환의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나라는 사람들이 바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 나라를 떠나 버렸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보가 되어야 노자(老子)가 말하는 무지무욕(無知無欲)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가 보다.
그가 말하는 이상향이란 바로 이 바보들의 나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나라는 도(道)를 말하지 않고 진리를 설교하지 않지만,도와 진리가 몸으로 실천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이런 나라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상 속의 바보 나라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비추어본다.

요사이 세상이 워낙 어수선하다 보니 이런 바보들의 나라가 그리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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