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웨일즈가 쓴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1905~1938, 본명 張志樂)의 일대기다.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김산은 삼일운동의 영향을 받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 상하이에서 항일 급진주의 그룹과 접촉하며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1921년경에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 독립 투쟁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1927년의 광동 봉기에 참여하는 등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두 차례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김산은 1938년에 트로츠키 분파주의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김산의 생애는 1937년에 옌안에 잠입해서 김산과 면담을 한 님 웨일즈에 의해 알려졌다.
이 책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 때 조국 해방을 위해 헌신한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떠올렸다. 우연히 님 웨일즈를 만난 김산은 삶이 자세히 알려졌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김산이 이국에서 피를 흘리고 뼈를 묻었을 것이다. 그들의 열정과 고통이 김산이라는 개인으로 대표되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가 진보하는 데는 피의 제물로 필요하다. 죽음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 기독교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적 훈련을 받았던 김산이지만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의 자유와 해방을 향한 그의 신념은 강철보다 더 단단했다. 자신이 믿는 대의(大義)에 모든 것을 바치는 대장부의 모습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런 김산이지만 33세에 억울하게 숙청당했으니 혁명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간 한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이것이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 나 자신에 대해서 -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위대한 승리자라는 말은 김산에게도 해당된다.
얼마 전에 김산의 아들인 고영광(高永光)씨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김산의 아리랑' 공연을 주제로 한 대구 아리랑제 행사에 초청받은 것이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혁명가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겨주는 뜻깊은 행사라며 감사했다고 한다. 그의 중국인 어머니는 남편의 성 대신 '고려에서 왔다'는 뜻으로 아들 성을 '고'씨로 지었다.
김산의 신념과 죽음은 마치 종교의 순교자를 연상시킨다. 시대가 인물을 낳는다. 핍박이 닥치면 저항하는 인간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개가 불의에 눈 감고 일신의 안락을 추구했던 때에 보이지 않는 대의를 위해 투쟁한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스러져 간 수많은 넋들을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경외심으로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