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뒤인 2011년에 나온 산문 선집이다. 선생이 어떤 분이시고 사상의 바탕은 무엇인지 이 책 한 권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의 인간적 면모가 진솔하게 드러난 글이 많다.
선생은 글을 쉽게 쓴다. 학자인 체하는 어려운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중학생만 되어도 이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오직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잠자는 민중을 깨우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게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선생이 존경하는 노신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의 선생은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했다고 한다. 단순히 지식을 상품으로 파는 것에 안주하는 교수나 문예인이 아니라,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하려는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 곧 우상에 도전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고통과 형벌이 따랐다. 선생이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형무소 생활 세 번, 언론기관과 대학에서도 네 번이나 쫓겨난 경력이 이를 잘 말해준다.
선생이 잘 인용하는 노신의 글이 있다.
'"강철로 된 큰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여간해서 부술 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많은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어. 오래잖아 괴로워하며 죽을 것이야. 그런데도 그들은 혼수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놓여 있으면서도 죽음의 비애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지. 이때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그들 중에서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워 일으킨다고 하세. 그러면 불행한 이 몇 사람에게 살아날 가망도 없는 임종의 고통만을 주게 될 것인데,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 몇 사람만이 정신을 차린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노신의 글에서 용기를 얻어,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반공주의에 마취되어 있는 사람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의식을 바로잡아주는 일이 선생 삶의 전부가 되었다. 쇠로 된 방이라는 우상을 부수는 희망을 노신의 글에서 발견한 것이다. 결국 선생의 투쟁은 많은 젊은이들의 의식을 깨우쳤고, 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민주와 자유라는 빛이 비친 것이다.
치열한 진실 추구 정신과 함께 본인의 삶 역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데 선생의 위대함이 있다. 어둠의 시대에 많은 지식인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침묵하거나 권력에 기생했다. 혹세무민의 나팔수가 된 사람도 있었다. 진실을 알고도 대부분은 못 본 척 외면했다. 그러나 선생은 일신의 안일 대신에 진실을 알리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10년쯤 전이었던가, 선생이 <대화>를 출간하고 가진 독자와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라 거동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그때 선생의 모습에서 사상과 삶이 일치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더욱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사람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본다. 지식 장사치들이 오직 세 치 혀로 잘난 체 나불대는 지금의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강연 끝의 질의응답 시간에 선생 삶의 좌우명을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Simple Life, High Thinking'이지요. '소박하게 살고, 높은 이상을 가지자'입니다. 나는 간단하고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물질이나 사치는 멀리 했습니다. 대신 독서와 글쓰기와 생각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