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프로필에는 혁명가, 시인, 사진작가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진정한 혁명가는 시인이 되어야 하고, 진정한 시인 역시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민주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었고,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묵묵히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 사진전에 다녀왔다.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사진전을 찾아온 관람객이 매우 많았던 점이었다. 사람에 걸려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 대중적이지 않는 내용의 사진전인데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건 의외였다. 작년이었던가 같은 자리에서 리처드 기어가 티베트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었는데, 그때는 썰렁했다. 박노해 시인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 몰랐다.
다른 하나는 사진이 전하는 메시지가 강렬해서 놀랐다. 낡은 흑백 카메라에 단렌즈를 달고 찍었을 뿐이라는데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단순 소박한 화면에 사람살이의 진수가 드러나 있었다. 지구의 변방에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은 위대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박노해 작가는 티베트, 라오스,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 인디아 등에서 찍은 7만여 컷 중 120여 컷의 사진을 이번에 선보이고 있다. 사진 작품마다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는 것도 좋았다. 내용 하나하나가 삶의 화두가 될 경구들이었다. 묵상하며 천천히 음미해야 할 것이지만 너무 사람이 많았던 게 흠이었다. 그러나 관람객 중 젊은이들이 많아서 기뻤다. 사진과 글을 찬찬히 훑어보는 그들의 뒷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전 제목이 '다른 길'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길이나 문명의 길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이다.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으며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사람들에게서 구원의 빛을 본다. '어찌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찌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해가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