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아배 생각 / 안상학
통지표를 들고 아버지 계신 사무실로 달려갔다. 일제 시대 때 지어진 건물 뒤편 독립된 방에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 찾아갈 때면 조그만 나도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 반에서 아버지가 넥타이 매고 번듯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공부 잘했다며 환하게 웃으셨을 것이다. 과자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시면 밖에서 기다리던 동무들과 문방구에서 '또뽑기'를 뽑으며 까르르 즐거워했다. 캬라멜의 맛만큼 달콤했던 시절이었다.
이 시를 접하니 문득 그 옛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 가신 지도 어느덧 36년이 되었다. 아배, 거기서는 편안하시지요?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악(望嶽) / 두보 (0) | 2015.03.30 |
---|---|
밥그릇 경전 / 이덕규 (0) | 2015.03.25 |
등대지기 / 진이정 (0) | 2015.03.13 |
은는이가 / 정끝별 (0) | 2015.03.08 |
봄밤 / 김수영 (0) | 2015.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