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해서부터 신경을 쓰게 하는 게 윗집 소음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못 들게 되면 부처님이 아닌 한 울화가 치미는 걸 어찌할 수 없다. 그나마 이젠 많이 적응되었고, 윗집 아이들도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소음도 많이 줄어들었다. 몇 주간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잔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실감한다.
그런 어느 날 기뻐서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요사이는 윗집이 조용하지?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웬걸 바로 그날 밤에 천정에서는 전쟁이 터졌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내 가벼운 입방정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과학적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허투루 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돌아보면 자신 있는 말을 꺼냈다가 바로 되치기 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건강을 자신하다가 기침으로 콜록거린다든지, 잠 잘 잔다고 뻐기다가 며칠을 불면으로 보낼 때가 있었다. 자식을 너무 자랑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안 가 꼭 탈이 났다. 그러니 경망스럽게 말하는 건 조심스럽다. 살면서 터득한 경험칙이다.
젊었을 때 나는 꽤 건방을 떨었던 것 같다. 어머니로부터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조심해라! 누가 듣고 있으면 어떡할라고." 여기서 '누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신령스런 존재다.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성주신이나 조왕신, 아니면 조상신쯤 될 것이다. 서양식으로는 수호천사와 비슷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이 겸손하게 살라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삶의 매무새를 가다듬게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말을 하다가 아차, 싶은 때가 있다. 너무 까불면 안 되지, 라는 생각에 입을 다문다. 귀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 마음을 헤아려보는 어떤 미지의 존재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 같다. 아가야, 잘 나갈 때 조심하는 거야. 그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려워도 주눅들지 마. 불행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의 의미다.
이렇듯 조심스러워지면 주위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게 줄어든다. 윗집 소음에 열 내며 뛰어올라가는 횟수가 줄어든다. 좋은 일이 생겨도 덜 뻐기게 된다. 내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조심해라! 누가 듣고 있으면 어떡할라고." 선대로부터 전해져 왔을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