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라는 정신이 온 나라를 휩쓸었던 시대가 있었다. 사회가 온통 군영 같았을 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구호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공격적인 언어였다. 군대에서 고문관 노릇을 아니 할 수 없었다.
'하면 된다' 정신이 이룬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한강의 기적도 이런 억척스러움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빨리빨리' 같은 조급증은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새겨져 있다. 김재규가 권총으로 박정희를 겨누며 내뱉은 말도 그랬다. "저도 한다면 합니다."
도전 정신을 나무랄 수는 없다. 특히 젊은 시기에는 바위를 뚫을 만한 기상이 있어야 한다. 해 보지도 않고 미리 주눅이 들거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 청춘이 아니다. 다만 물불을 가릴 필요는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건 다 이룰 것 같았지만 이만큼 나이가 들어보니 세상사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내 힘보다는 다른 존재의 손길이 더 컸다는 걸 깨닫는다. 그만큼 겸손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건강도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아프면 아파야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갈 때가 되면 가는 것이다.
체념은 어찌 보면 성숙의 징표다.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물결 따라 흐르는 태도다. 결코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해내려는 삶의 태도가 게으름, 외로움, 체념 같은 말을 백안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단계가 되면 이런 말을 자연스레 벗하게 된다. 과일이 익듯 달콤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우리 사회도 성숙해지자면 '하면 된다' 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70년대식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건 철이 덜 든 어른을 보는 것 같다. '하면 된다'보다는 거꾸로 '되면 한다'가 어떨까. '되면 한다'는 과거의 패러다임과 다르게 생각하기다. 경제 성장이 지상 최고의 목표인 때는 지났다. 국가의 부를 크게 하는 것보다는 골고루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이젠 좀 천천히 가도 되련만, 너무 달음박질만 하려다 오히려 큰 탈이 날까 두렵다. 잘 살고 많이 가져야겠다는 관성이 너무 크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다. IMF 전에 흥청망청했던 분위기가 떠오른다. 위기가 다시 코앞에 다가왔는지 모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욕심의 구렁텅이에 빠져 공멸할지 모른다.
앞선 사람은 보폭을 줄이고 뒤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꿈이 작을수록 소유도 작을수록,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실천하는 행동,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절제하며 조심스럽게 살기.
'하면 된다'보다 '되면 한다'의 정신을 되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일견 퇴보해 보이는 것이 실상은 진보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