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휘파람 부는 사람

샌. 2015. 12. 6. 10:29

메리 올리버는 미국의 생태 시인이다. 선입견 탓인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만큼 물질적이고 세속화된 나라를 대표하는 게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 책 <휘파람 부는 사람>은 올리버의 산문집이다. 산문 역시 시만큼이나 아름답다. 책에는 시도 몇 편 등장하고, 그런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도 있다. 올리버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올리버는 자신이 셸리, 파브르, 워즈워스, 바바라 워드, 블레이크, 바쇼, 마테를링크, 에머슨, 카슨, 알도 레오폴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분들과 사상적으로 같은 계보에 속한다. 여기에 소로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다. 산문을 읽으면서 올리버는 여자 소로우라 불러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초절주의 전통을 잇는 시인이다.

 

여든이 넘은 메리 올리버는 프로빈스타운에서 지금도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글에서도 세상이 모두 한 몸이라는 사상이 짙게 묻어난다.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이 영롱한 언어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책 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 아쉽다. 마치 학술 서적 번역하듯 해 놓았다. 올리버의 감수성을 옮기는 데는 너무 미흡하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그녀의 시 '휘파람 부는 사람'이다.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난 위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는 아래층에 있었지. 잡힌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든 새, 야생의 생기 넘치는 그 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지저귀고 미끄러지고 되돌아오고 희롱하고 솟구치는 소리였어.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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