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6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

6세기에 인도에서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선(禪)의 시조로 꼽힌다. 달마에서 전해진 선의 불꽃은 육조 혜능에 이르러 활짝 타오르게 된다. 달마대사는 온종일 침묵을 지키며 벽만 바라보고 참선을 했다고 해서 면벽바라문(面璧婆羅門)이라 불리웠다. 그만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정진 수도했다는 뜻이리라. 달마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글이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다. 도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며, '지성에 의한 길'[理]과 '행위에 의한 길'[行]로 구분한다. 지성에 의한 길은 경전 공부를 통한 깨달음이고, 행위에 의한 길은 삶의 실천을 통한 깨달음이다. 마치 돈오와 점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뒷날 선사들은 도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이 글에서는 선의 정신이 보이지는..

참살이의꿈 2020.08.26

평상심

중국 바둑 기사 중에 스웨(時越) 9단이 있다. 1991년 생으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다. 지금은 랭킹이 좀 떨어졌지만, 전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 기사 킬러로 유명하다. 삼성화재배였던가 큰 번기 승부를 할 때 스웨 9단에게 기자가 물었다. 대국 사이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스웨 9단은 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기사가 스웨 9단이다. 스웨 9단이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 바둑의 본질은 무엇인가? "의 논리가 바둑과 비슷하다. '변화'가 의 초점이자 바둑의 핵심이다." - 마음에 남는 다른 책은? "와 이다." - 스스로를 '싸움꾼'으로 묘사한 적이 있..

참살이의꿈 2016.07.19

밥그릇 경전 /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 밥그릇 경전 / 이덕규 한 학승이 조주(趙州, 778~897) 선사를 찾아왔다. "저는 공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큰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십시요." 이에 선사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시읽는기쁨 2015.03.25

무사시의 작약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에게 이런 일화가 전한다. 무사시가 당시의 최고 검객이었던 세키슈샤이에게 진검승부를 신청했다. 그러나 세키슈샤이는 감기 때문에 도전을 못 받아주는 대신 작약꽃을 칼로 베어 무사시에게 전했다.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무사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나는 세키슈샤이 명인에게 이길 수 없다. 그야말로 내가 본 중에 최고의 검객이다." 그리고는 세키슈샤이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이 정도 되면 검술은 예술의 경지에 든 것이다. 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든가,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무사시도 고수다. 그는 검을 통해 선(禪)의 경지에 이르렀다. 무사시는 '칼로 싸우지만 마음으로 이긴다'라는 말도..

참살이의꿈 2013.09.24

논어[48]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리를 깨달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子曰 朝聞道 夕可死矣 - 里仁 8 번역이 깔끔하다. 직역하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지만, 괜히 아침, 저녁에 신경 쓸 필요 없다. 여기서 공자가 말한 '문도(聞道)'가 뭔지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단순하게 '진리를 깨달음'으로는 만족이 안 된다. 정신적, 영적 깨달음에 대한 간절한 바람으로 그치는 걸까? 공자는 세상에 도가 펼쳐지기를 바랐다. 그 목적을 위해 14년 동안이나 온갖 고생을 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문도(聞道)'를 개인적 깨달음으로 보다는 도(道)가 실천되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이렇게 해..

삶의나침반 2013.09.08

學道 / 李珥

學道卽無著 隨緣到處遊 暫辭靑鶴洞 來玩白鷗州 身世雲千里 乾坤海一頭 草堂聊寄宿 梅月是風流 - 學道 / 李珥 도를 배움은 곧 집착 없으매라 인연 따라 이른 곳에서 노닐 뿐이네 잠시 청학동을 하직하고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내 신세는 천리 구름 속에 있고 천지는 바다 한 모퉁이에 있네 초당에 하룻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다 유학자였지만 유가의 경계를 넘어선 인물 - 율곡 이이. 율곡은 당시에는 이단에 가까웠던 노장사상을 연구하고 도덕경을 주석했으며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해동공자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유학의 대가였지만 유, 불, 선이라는 벽에 걸림이 없이 도(道)를 따라 산 자유인이었다. 도의 세계는 종교의 구분이나 사상의 벽을 넘어서 있다. 이 시를 보면 율곡은 도의 비밀을 살짝 열어 ..

시읽는기쁨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