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산 꼭대기에 물매화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천 미터나 되는 십자봉 정상 억새밭 속이었다. 이름만 들었던 물매화를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엄청 힘들었던 산행이었는데 물매화 때문에 모든 게 덮어졌다. 왜 물매화를 가을꽃의 여왕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순결하고 고고한 자태에 감탄했다. 수술과 암술, 꽃잎과 함께 하트 모양의 잎도 예뻤다. 사진은 실제 본 아름다움의 십분의 일도 드러나지 않았다. 서두르느라 제대로 찍지를 못했다. 재촉하는 발걸음이 아니었다면 오래 머물고 싶었던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