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결혼문화 유감

샌. 2008. 9. 23. 09:44

지난 주말에 친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의 결혼문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최근에는 식을 재미있게 하고 추억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이벤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소란스러운 결혼식이 더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결혼을 축하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번 결혼식에서도 두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사회자가 신부가 제일 행복한 때가 신랑이 밖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올 때라고 하면서 그런 신랑의 능력을 보겠다며 신발 안에다 하객들로부터 돈을 모아오라고 시켰다. 순수한 사랑을 강조한 주례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돈이 행복이라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한쪽 구두를 벗어 손에 든 신랑은 1분 동안 뛰어다니면서 허겁지겁 돈을 모아 신부에게 가져갔다. 얼마가 담겨졌는지는 모르지만 신부는 미소를 지었다. 그걸 바라보는 나는 처참한 기분이 되었다. 이젠 신성한(?) 결혼식에서까지 돈타령을 지켜봐야 한다는 씁쓸함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벤트는 만세 부르기였는데 신랑 아버지와 신부를 나란히 세워놓고 함께 만세 부르기를 시켰다. 두 사람의 어색해하는 표정을 즐기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나친 가학취미가 아닌가 싶었다. 재미있는 이벤트를 개발하는 건 좋지만 제발 품위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결혼식이 언제부터 이렇게난장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일반 예식장에서는 시끄러워 주례사도 잘 들을 수 없다. 아예 결혼식장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혼주와 눈도장만 찍은 뒤 식당으로 직행하는 사람도 많다. 결혼식이 축하하고 즐기는 자리지만 거기에도 지켜야 할 품격이 있는 법이다. 재미를 쫓고 격식 파괴를 즐기다보니 결혼식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형식을 소홀히 할 때 내용마저 오염되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요사이 결혼식 풍경은 마음 편하게 지켜보기가 어렵다.


결혼비용이나 혼수문제 등 우리의 결혼문화에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고받기식의 부조 문화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청첩장이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세금고지서식의 부담을 주기도 한다. 초대할 사람의 숫자를 제한해서 소규모로 한다면 결혼식 분위기도 훨씬 조용하고 진지해질 것 같다. 허례허식을 타파한다고 한때는 가정의례준칙을 만들며 사회운동이 전개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관습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의 독재정권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는데 스스로의 도덕성에 결함이 있는 정권이 그런 운동을 벌인다는 자체가 모순이었다.


우리 집의 아이들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아이의 결혼식은 가족 중심의 간소한 결혼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양가가 그런 방향으로 합의를 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첫째 아이가 결혼식은 예식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기뻤는데 아이의 생각은 호텔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어서 실소를 한 적이 있었다. 남들보다 더 멋있고 화려하게보다는 자신들만의 의미 있는 결혼식을 시도해 보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 최근 유럽에서는 녹색결혼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새롭고도 신선한 결혼문화의 풍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를 답습할 게 아니라 세속의 가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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