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미친 교육

샌. 2008. 8. 29. 09:02

100 회를 넘긴 촛불집회에서 단골 구호로 등장하는 것이 ‘미친 교육’에 대한 반대다. 어떤 사람은 ‘미친’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그런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현재의 상황은 심각하다고 본다. 특히 현 정권 들어 경쟁 중심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차마 교육열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생존전쟁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엽기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본질적 의미에서의 교육의 장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어느 외국인의 표현대로 한국에서의 교육은 아이들을 짐승처럼 우리에 가두어놓고 사육하면서 어른들은 새디스트가 되어 즐기는 형국이다. 한국은 아동 학대 행위가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내 이웃은 초등학교 3 학년인 아들의 영어 과외 때문에 이번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 과외비를 벌기 위해 야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보도에 의하면 얼마 전 발표된 국제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벌써부터 영어면접에 대비한 초등학생들의 과외나 학원의 예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국제중학교가 여럿 생긴다면 중학교 입시가 다시 부활하는 셈이다. 이젠 인문계 고등학생이 겪던 입시전쟁이 초등학생들에게로까지 옮겨갔다. 이런 지식 위주의 엘리트 교육 강화는 과외를 더욱 번창시키고 일반 학교의 보편적인 공교육을 완전히 압사시킬 것이다. 교육은 이제 아이들 사이뿐만 아니라 가정 대 가정의 전쟁이 되었다. 골병드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살벌한 경쟁 체제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정신적 내상을 입는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미친 교육은 아이들을 미치게 하고, 미친 부모와 미친 선생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미친 교육은 곧 미친 나라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 정부의 책임이지만,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학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자식의 행복이 아니다. 겉으로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이런 체제에서 이런 방법의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세상이 이러니 어쩌랴 식으로, 그리고 잘못된 교육제도의 피해자인 것처럼 말은 하지만 십대들의 억압에 관한 한 그들은 공범자들이다. 뻔히 알고도 자기 자식을 죽음의 행진에 내몰고 있으니 어떤 점에서는 더욱 죄질이 나쁘다. 그들은 사실 체제를 개혁할 의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상이 주는 단물을 많이 빨아먹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여기에는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 도리어 고생을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더니 본인들이 나쁜 교육의 경험자였으면서도 더 심하게 자식들을 닦달한다. 소위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들의 힘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현 교육감을 재당선 시켰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를 리가 없다. 비록 비인간적인 제도일지라도 자신들의 기득권만 유지된다면 굳이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한 것을 어쩌겠는가.


미친 교육의 첫째 주범은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일부 극우파 보수 세력이다. 극좌파 진보가 위험하듯이 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득세하는 한 온건한 진보나 보수가 설 자리가 없다. 그들은 아이들이 총명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쉽게 다스려지고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바보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아무 비판도 의식도 없이 주어진 공부만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을 새벽 0교시부터 밤 12시까지 붙잡아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빨갱이 집단의 사주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겉으로는 창의성 등 미사여구의 교육목표를 제시하지만 기실 한국의 지배층들이 그리는 것은 미래의 충실한 병사들이다. 비판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상실한 노예들이다. 여기에 학교 선생들 또한 공범자가 되어 아이들을 다그친다. 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배층의 악랄하고 노회한 정책과 여기에 동조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이 시대 미친 교육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본다. 한때는 전교조에 의해 참교육이라는 구호도 등장하고 호응을 얻었지만 이제는 그런 구호조차 생경 맞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옆의 동료는 농담조로 유일하게 전두환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한다. 바로 과외금지 조치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는 어울리지 않게 교복이나 두발까지 자유화시키기도 했는데,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지금은 다시 그 이전으로 회귀했다. 교련 과목은 없어졌지만 학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영으로 변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잔인하고 무섭다. 총칼 대신에 자본과 탐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교육이 사라진 학교는 삭막하고 살벌하다. 교정은 번들거리는 욕망, 경쟁에 소외된 자들의 분노와 좌절감으로 가득하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별 생각 없이 해 오던 대로의 관성적인 삶을 사는 그룹이 있고, 생각은 많지만 무기력증에 젖어있는 그룹도 있다. 교사가 현장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 살아있는 교육이 될 수가 없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교사도 많지만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교사 역시 이 시대의 미친 교육에 대한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교육 방법이 별 문제가 없고, 따라서 아이들을 더 닦달해서라도 이런 체제에 적응시켜야 하는 생각이라면 해결책은 단순하다. 이번에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 정책이 제일 나은 것이고, 경쟁을 통한 수월성 교육을 강화해 나가면 된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 탓이며, 국가가 전력을 기울여 길러낸 소수의 인재가 나라를 지탱할 것이고 나머지를 먹여 살릴 것이다. 이런 교육이라면 자본이 중심이 되는 계급사회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국가경쟁력 또한 이런 방법으로 길러질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도대체 현 체제에서는 창의성 있는 인물을 키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투입하고도 이 정도의 효과라면 지금의 교육 현실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체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런 경쟁구도를 통해 피폐해지는 인간의 심성과 고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결코 이런 식으로는 행복한 나라를 꿈꿀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학부모 아닌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누구나 교육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마디씩은 할 줄 안다. 그러므로 백인백색의 교육관에 맞출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교육정책에 대해서 공감대를 얻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교육은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분야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이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만큼 문제점을 많이 느끼면서도 해결 방안이 안개 속 같이 모호한 곳도 없다. 그리고 교육 제도가 다른 사회적 구조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교육 문제만 건드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나쁜 방향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파국을 향해 밀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혁명이라도 일어나야 하는가? 물리적인 혁명은 아니라도 정신의 혁명은 일어나야 한다. 지배층이나 일반 국민이나 의식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식을 버리고 유럽, 특히 북유럽 쪽의 교육제도를 우리의 모델로 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도 혁명에 준하는 교육과정의 변화가 생겨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에만 매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에 맞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루의 수업 시간이 제한되고, 예체능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의무교육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교양인을 길러야 한다. 영어 수학 같은 주지과목의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서는 안 된다. 대학은 평준화 되고, 입학은 자유롭지만 졸업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기술만 있다면 기본생활이 보장되고, 학력 차이에 따른 임금 격차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학력 중심, 능력 중심 사회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 중심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 자식만이 뛰어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절제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것들이 추상적이긴 하지만 내가 꿈꾸는 대안이다. 무엇보다 우선 학벌 중심의 사회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사실 지도자가 결심만 하면 해결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먼저 혁명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국민 설득을 통한 의식 변화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아니면 장기적으로라도 그런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정책 방향만 옳다면 현실의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절망한다. 불행하게도 현 정부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만을 제일가는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며, 또 대통령 자신도 그런 예수님 말씀을 믿는 신자인데도 추구하는 길은 어째 정반대로 가고 있다. 평생을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에서 일 하신 분이지만 제발 나라만은 그런 식으로 이끌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과 세상에 대한 나의 견해가 잘못된 것이기를 바라고 싶다. 나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기를, 요사이 그들이 잘 쓰는 말대로 시대에 뒤쳐진 좌파의 넋두리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만의 하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은 암담하다. 어쩌면 이 시대 우리들의 행위가 미래에는 죄악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정말로 지금 같아서는 이 비극의 현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것이 나를 위하고 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을 위하는 길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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