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전교조 미워하기

샌. 2008. 10. 2. 12:09

전교조를 미워하는 것이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교육을 논할 때면 먼저 전교조 욕부터 하고 본다. 마치 온갖 교육문제의 원인이 전교조에게 있는 것 같다. 중세 시대 때 마녀사냥을 통해서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체제의 모순을 감추려했던 것과 비슷하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현수막도 등장하고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는 후문이다. 전교조가 없어지면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들이 전교조를 미워하는 배경에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시기도 깔려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안정된 봉급을 받는 교사들이 국민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더구나 교사 노조인 전교조는 이기적 철밥통 집단으로 매도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특정 사례를 과장하여 빨갱이로 낙인찍어 놓았으니 행간을 읽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사시(斜視)로 보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교조의 위상이 추락하게 된 데 대하여 외부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거대해진 조직에 비해 자체 정화 노력이 부족했고, 신선한 정책 대안의 부재로 국민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국민들 눈에는 그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투쟁만 하는 집단으로 비쳐진 것이다. 사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교원평가제는 받아들이고 교장선출제는 관철시켰어야 했다. 그 정도면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전교조 조합원 개개인이 학부모나 학생들 또는 동료 교사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도 큰 원인이다. 참교육을 내세우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신자유주주의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서는 큰소리를 내지만 정작 자신의 수업이나 업무 분야의 각론은 소홀히 한다. 국민들이 실망하는 원인을 냉정히 파악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학부모의 유일한 목표는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교에 요구하는 것도 그렇고, 또 그런 교사가 담임을 맡기를 원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가 모두 우수한 학원 강사 스타일이라면 제일 좋아할지 모른다. 이런 현실적인 요구는 전교조 이념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교조의 교육운동이 본질적으로 현실의 교육 주체들과 갈등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비난을 두려워하거나 눈치 보기를 해서는 전교조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지금의 전교조는 전교조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전교조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행복한 교육환경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세를 키우기 위한 껍데기 조합원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조합원의 자질을 높이면서 자기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후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입시 위주의 기능적 교육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길러주는 교육 본연의 모습을 찾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자면 평준화나 교원 평가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전교조가 무기력한 때도 없었다. 광장에 나가 주먹을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신선한 제안으로 당국과 대결하길 당부한다. 앞으로 전교조 지도부는 정책 연구나 개발에 더욱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성을 하면서도 작금의 전교조 미워하기에 대해서는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조합원인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속상한 일이다. 과거에 전교조에서 촌지 거부 운동을 벌일 때 많은 국민들은 전교조에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그런 자기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내 의견으로는 교원평가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학생이 하는 평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교사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 외치는 주장은 이상적인데 자기 자식은 똑 같이 일류대학 보내는데 몰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는가. 그리고 교사 집단의 밥그릇 챙기기보다는 진실로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전교조는 일반적인 노조 운동의 차원을 넘어선 위상을 새로이 세워야 한다. 그럴 때 국민의 신뢰를 다시 받을 수 있으며, 교육운동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도 너무 전교조를 미워하지 말고 애정 어린 질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전교조가 죽으면 우리 교육에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암담한 교육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뜻을 함께 하는 조직이 필요하고, 현재로서 그런 정신을 소유한 조직은 전교조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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