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를 나간 길에 여주 이포보에 들렀다. 이 며칠 마음이 울적했던 차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연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이기도 했다. 거기에 옛 밤골 생활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우울에 우울이 겹쳤다.
기어코 4대강 사업도 끝났고 보도 완성되었다. 공사 중일 때 몇 차례 이 옆을 지날 때는 눈길도 주기 싫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여기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공사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했다.
보 위에 건설된 다리를 따라 반대편까지 갔다 왔다. 이곳에 보가 왜 필요한 건지 현장에서 봐도 의문이 든다. 단순히 물을 막기 위해 이런 거대한 시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홍보 자료를 보면, 첫째, 물 부족과 홍수 예방. 둘째, 수질 개선. 셋째, 녹색산업 진흥으로 나와 있다. 여긴 물 부족이나 홍수와는 별 관계없는 지역이다. 그리고 보를 만들어서 수질 개선이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들어도 웃을 노릇이다. 세 번째의 녹색산업 진흥은 일리가 있다. 관광지대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논리다. 그것이 '녹색'이라는 가면을 쓴 게 가소로운 짓이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냇물을 끌어들이는 곳을 말한다. 내 고향에도 그런 보가 있다. 지금은 토사로 채워져 별 기능을 못 하지만 가뭄 때는 유용하게 쓰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포보가 앞으로 무슨 유용한 기능을 할지 내 머리로는 답이 안 나온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것 말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박원순 서울 시장은 한강에 설치된 보를 철거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보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크다면 고려해야 할 일이다. 4대강 전체에 대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이런 터무니 없는 공사를 강행한 이 정권에 대해서 화가 난다.
이포보의 외형상 특징은 타원형 모양의 구조물이다. 수문을 여는 장치가 저 안에 들어 있다. 백조의 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명을 품은 따스한 알의 이미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도리어 반생명적인 차갑고 무거운 인상이다. 내가 너무 삐딱한 건가?
이포보 주변에 조성한 공원 지대도 잘 활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휴가철인데도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녹지대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씁쓰레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오늘, 아내와 함께 양평과 여주를 한 바퀴 돌았다. 지나간 길이 마침 옛날 밤골 생활을 할 때 다닌 길이었다. 행복했던, 좌절하고 슬펐던 마음들이 깔린 길을 다시 달렸다. 옛 글로, 현장으로 마주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은 넉넉해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포보 이 자리 역시 여주에서 오갈 때 차를 세우고 강변에 나가 쉬던 곳이다. 도로 옆으로 넓은 모래와 자갈밭이 깔려 있어서 강변의 정취에 젖기에 좋았다. 지금은 괴물 같은 구조물이 옛 흔적을 다 지워 버렸다.
점심은 천서리에서 편육과 막국수로 했다. 역시 옛 맛에 젖었고, 우연찮게 오늘 나들이는 추억의 드라이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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