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디 마이너스

샌. 2016. 2. 10. 10:32

1990년대 후반의 대학 생활을 그린 손아람의 장편소설이다. 90년대 학번은 대학에서 마지막 운동권 세대라 할 수 있다.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이어진 학생 운동 그룹은 NL과 PD 계열로 나누어지고 후반에는 연대회의와 전학협이 주도했다. 이 소설 <디 마이너스>는 연대회의에서 활동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상과 갈등, 사랑, 대학 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다.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서 점차 힘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내 대학 시절과 비교하면 학생들의 의식에서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90년대는 제도적으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그래서 투쟁의 내용도 우리와는 달랐다. 정치적 이슈보다는 경제 불평등의 개선에 비중이 커졌다. 학생 운동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 뒤로 대학은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포위당했다. 취업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경쟁터에서 젊음의 순수한 꿈과 이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불과 20년 전 이야기인데 세계화와 자유 경쟁의 물결은 캠퍼스의 풍경을 일변시켰다. 살아남느냐, 도태되느냐 앞에서 이념이 자리 잡을 곳은 없다.

 

<디 마이너스>는 세상의 벽에 맞섰던 치열한 청춘의 보고서다. 그러나 그들이 꿈꿨던 세상은 오지 않았고, 꿈은 좌절되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세상이 되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개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휩쓸려갔다. 소설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미쥬도 그렇다. 리더며 여장부였던 미쥬는 유학과 결혼 후 평범한 여자로 덤덤하게 돌아왔다. 미쥬가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한데 나와 있지는 않다. 쓸쓸한 결말이다.

 

1990년대는 시대의 전환기였다. 청년의 꿈과 이상은 소멸되고, 빈자리에 실리와 이기심이 자리 잡았다. 자신을 희생해서 대의를 실천하려는 젊은이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학의 낭만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어졌다. 밤새워 토론하고, 인생과 철학을 논하며 함께 어깨동무하던 그 시절이 그래도 행복했는지 모른다. '디 마이너스' 학점이 자랑스러운 훈장 같던 시절이었다.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불꽃의 시대를 그린 소설, <디 마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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