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는 게 뭐라고

샌. 2016. 2. 17. 09:50

지난달에 <죽는 게 뭐라고>를 읽고 감동해서 다시 찾아 읽은 같은 작가의 책이다. 지은이가 60대에 쓴 일기 형식의 산문집으로 사노 요코 씨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인답지 않게 사고의 스케일이 크고 솔직 담백한 점이 좋다.

 

이 책에는 한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항암 치료를 받고 집에서 쉴 때 지은이는 욘사마의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다. 한쪽으로 누워 얼마나 열심히 봤는지 턱이 어긋나기도 했다. 친구와 남이섬에 찾아오기도 한 한류 팬이었다. 일본 아줌마가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궁금했는데 사노 요코 씨를 보며 약간이나마 이해가 된다. 지은이는 한류 열풍의 원인을 '허구의 화사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일 TV를 틀어놓고 사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대개는 TV나 오락 프로를 멀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노 요코 씨는 다르다. TV 앞에서 낄낄거리며 빠져든다. 여느 아줌마, 할머니와 다르지 않다. 이혼도 두 번이나 했다. 그러면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암 선고를 받고 돌아오며 재규어를 사 버린다.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을 하찮게 여기는 당당함이 상쾌하다.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모범이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따라 할 수는 없다. 헛된 기대감으로 오히려 훗날 좌절이 더 크다. 반면에 사노 요코 씨처럼 아프고, 건망증이 심하고,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는 가까운 친구의 따스함을 느낀다. 인생은 화사하지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지개 색깔로 꾸민다고 현실이 바뀔 수 없다. 사노 요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징징대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간다.

 

어느 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순여덟은 한가하다. 예순여덟은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 예순여덟의 할머니가 무얼 하든 말든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다. 외롭냐고? 농담 마시길. 살날이 얼마 없으니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을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은 풍채가 훌륭하다. 철학적이며 지적인 모습이 기품 있고 평온하게 느껴지며, 눈에 깊이가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증오하는 사람이긴 해도." 오사마 빈 라덴을 보며, 나쁜 놈이야, 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노 요코 씨가 마음에 든다.

 

나도 사노 요코 씨처럼 살아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를 받고는 바로 담배를 피우고, 당당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 많고, 근사한 남자에게 빠지고, 자기표현에 솔직하다. 일본인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 놀랐다. 이 세상을 멋있게 살다간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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