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면 정신이 튼튼해지지 못한다. 내면이 허약한 사람이 밖에서 위안을 찾는다. 전철에 타 보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심심한 걸 견디지 못한다. 아무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연다. 기갈에 시달리는 사람들 같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허전해서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을 빼앗아간다. 현대인이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안다. 외로워야 할 권리를 스스로 반납하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놀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되어 간다.
어른만 그런 게 아니다. 식당에 가 보면 어린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가 많다. 만화영화에 빠져서 얌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방지축이든가 대개 둘 중의 하나다. 아이들도 혼자 노는 법을 아예 모르고 자란다. 가만히 있질 않는다. 옛날에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제 혼자 생존해 나가는 법을 배웠다. 친구가 없을 때는 먼산바라기도 하면서 혼자서도 잘 놀았다.
좋고 나쁜 판단은 유보한다. 세상의 변화가 그만큼 빠르고 크다. 그에 따라 사람의 심성도 변하고 있다. 오래 참지 못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즉물적이다. 충동적인 범죄는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인간이 외로울 수 있는 권리마저 앗아가고 있다.
외로움은 인간을 성숙시킨다. 인류의 선각자들은 모두 고독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드넓은 우주의 변두리, 눈에 띄지도 않은 조그만 행성에서 외톨이로 존재하고 있다. 도망갈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외로움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아야 한다. 즐겁게 감내하는 데 외로움의 가치가 있다.
현대인에게는 홀로 있는 고요한 시간이 부족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스마트폰의 악영향도 여기에 있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동무하는 습관이 생기지를 못한다. 문명은 게으름과 외로움을 악덕 취급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충동한다. 정신이 부평초처럼 떠돈다.
외로움을 즐긴다는 건 자존감의 능력과 비례한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덜 소란스러울 것이다. 휴일이면 도로가 북새통 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외로움이 필요한 시대다. 너무 시끄러운 세상을 보며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