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는
오래동안
뼈가 없이 살았네.
오징어는
뼈가 없어
힘 못 쓰고
힘 못 써서
일 못 하고,
일 못 하여
헐벗고 굶주리였네.
헐벗고 굶주린
오징어는 생각했네-
"남들에게 다 있는 뼈
내게는 왜 없을까?"
오징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로서는 그 까닭
알 수가 없어
이곳 저곳 찾아가
물어 보았네.
오징어는 맨 처음
농어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나?
어찌하면
뼈를 얻나?"
농어가 그 말에 대답했네-
"너는 세상 날 때부터
뼈가 없단다,
뼈 없이 그대로
살아가야지."
오징어는
농어의 말
믿기잖고 분하여,
그래서 이번에는
도미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나?
어찌하면
뼈를 얻나?"
도미가 그 말에 대답했네-
"너는 네가 못난 탓에
제 뼈까지 잃은 거지.
못난 것은 뼈 없이
살아가야지."
오징어는
도미의 말
믿기잖고 분하여,
그래서 이번에는
장대 보고 물었네
"내게는 왜
뼈가 없니?
어찌하면
뼈를 얻나?"
장대는 이 말에 대답했네-
"네게두 남과 같이
뼈가 있었지.
그러던 걸 욕심쟁이
검복이란 놈
감쪽같이 너를 속여
빼앗아갔지.
검복을 찾아가서
뼈를 도로 내라 해라."
장대가 하는 말을
옳게 여긴 오징어
검복에게 달려가서
빼앗을 뼈 내라 했네.
그러나 검복은
소문난 욕심쟁이
남의 뼈를 빼앗아다
제 뼈를 만드는 놈
오징어가 하는 말을
검복은 듣지 않고
그 굳은 이빨 벌려
오징어를 물려 했네.
오징어는 겁이 나서
뺏긴 뼈를 못 찾은 채
도망쳐 달아 가다
장대와 마주쳤네.
오징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난 장대
오징어께 이런 말
일러 주었네-
"제 것을 빼앗기고
도로 찾이 못하는 건
그것은 겁쟁이
그것은 못난이
검복이 힘 세다고
싸우지 않고
겁이 나 쫓긴다면
빼앗긴 뼌 못 찾지."
장대의 말을 듣고
오징어 마음 먹었네-
목숨 걸고 검복과
싸워내기로
오징어는 그 이튿날
검복을 또 찾아가
빼앗아 간 제 뼈를
도로 내라 하였네.
그러나 검복은
소문난 욕심쟁이
오징어의 옳은 말
들으려고 아니 했네.
그리고는 두 눈깔
뚝 부릅뜨고
그 굳은 이빨
떡 벌리고
찌르륵 소리
높닿게 치며
오징어를 물려고
달려들었네.
그러나 오징어는
어제와 달라
겁 먹고 달아날
그는 이미 아니였네.
무섭게 달려드는
검복에게로
오징어도 맞받아
달려들며
입을 쩍 벌리면서
먹물 토했네.
시커먼 먹물을
찍찍 토했네.
검복은 먹물 속에
눈 못 뜨고
숨 못 쉬고
갈팡질팡 야단났네.
이통에 오징어는
검복의 등을 타고
옆구리를 푹 찔러
갈비뼈 하나 빼내였네.
그런데 바로 이때
검복의 질러대는
죽어가는 소리 듣고
우루루 달려왔네-
농어가 달려왔네
도미가 달려왔네.
그것들은 달려와
검복과 한편 되여
오징어께 대들었네
오징어는 할 수 없이
달아나고 말았네
빼앗긴 뼈 중에서
하나만을 겨우 찾고
분한 마음 참으며
할 수 없이 돌아왔네.
잘 싸우고 돌아온
오징어를 찾아와서
장대는 말하였네-
"우리들이
도와줄게
빼앗긴 뼈
다 찾으라."
그러자 그 뒤 이어
칼치 달째 찾아와서
오징어께 말하였네-
"우리들이
도와줄게
빼앗긴 뼈
다 찾으라."
그러자 오징어는
마음 먹었네
못 다 찾은 제 뼈를
다 찾고야 말려고
굳게 굳게 이렇게
마음 먹은 오징어
검복과 싸우려고
먹물 물고 다닌다네.
검복과 한편 되어
검복을 도와주는
검복과 같은 원쑤-
농어와 도미와도
오징어는 싸우려고
먹물 물고 다닌다네.
뼈 없던 오징어께
뼈 하나가 생긴 것은
바로 그 때 일
그러나 빼앗긴 뼈
아직까지 다 못 찾아
오징어는 외뼈라네.
살결 곱던 검복이
얼룩덜룩해진 것은
바로 그 때 일
오징어가 토한 먹물
그 몸에 온통 묻어
씻어도 씻어도 얼룩덜룩.
- 오징어와 검복 / 백석
북에 남은 백석의 행적에 대해서는 확실한 게 없다. 그쪽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분의 시를 볼 때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발행된 백석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실려 있다. 북 생활 초기에 백석은 번역 일과 함께 동화를 주로 썼다. 시의 운율 형태로 표현한 것이 동화시인가 보다.
북 체제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써야만 했던 백석의 고뇌가 읽힌다. 짐작이지만 백석의 성향으로 볼 때 사상적으로 온전히 동화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원쑤'라는 단어는 백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백석이 남에 있었더라면 향토적이며 서정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으리라.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절절이 그려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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