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응 / 문정희

샌. 2018. 1. 19. 11:24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화

"응"

 

- 응 / 문정희

 

 

"응"이라는 말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육감적인 생명의 언어다. 형상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시인의 시선이 놀랍다. 그러고 보니 "응"을 쓸 수 있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다. 카톡으로 대화할 때는 보통 "ㅇㅇ"이라 쓴다. 시인이 말하는 "응"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땅 위에서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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